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S Jan 30. 2019

중요한 건 '어느 장소'에서 일하냐가 아니다.

일을 잘 해내냐가 중요한 거지.

"토요일에 과장급 이상은 돌아가면서 한 명씩은 출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네? 이게 무슨 날벼락입니까... 

한 달에 한 번씩, 토요일이 되면 눈치껏 출근해서 적당히 밀려있던 일을 하다가 저녁 즈음에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 예전 직장에서 이랬던 적이 있다. 지금은 훨씬 유연한 근무제를 도입해서 이런 일은 이제 상상도 못 하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땐 그런 일도 있었다. 어느 토요일, 높은 분이 출근하셨다가 사무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본 뒤, 지나가면서 아쉬운 말씀을 한마디 던지셨나 보다. 직장인들이 별 수 있나. 그런 지시를 한 적은 당연히 없었겠지만, 눈치를 보다 보니 결국은 알아서 암묵적인 룰을 하나 만들게 되었다. 다행히 상사들도, 조직도 그렇게 꽉 막히진 않아서, 얼마 안가 이 일은 없던 일이 되었다. 일련의 사태에서 내 몸과 마음은 학습을 했다. 사무실에 앉아 있는 것이 일하는 것이고, 오래 앉아 있을수록, 인정을 받는다는 공식을.




집에서도 일할 수 있다.


"39도가 넘어?!"


예방접종을 맞고 와서 어젯밤부터 딸아이가 열이 펄펄 끓는다. 아내는 밤을 새우며 병간호를 하고는 앓아누웠다. 그런데 오늘 내가 주관해야 하는 업무 회의가 3건, 그리고 오늘까지 마무리 지어야 하는 계약 검토 건도 날 기다리고 있다. 예전 같았으면, 아기도 울고 나도 울었겠지. 예전엔 이런 일이 있으면, 연차를 내는 방법 말고는 달리 수가 없었다. 그런데 회사일은 어떻게 하고? 회사에 가면 손에 일이 잡혔을까. 계속 아기 걱정에 아무 일도 제대로 못했을지도 모른다. 아기는 아기대로 아프고,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고, 나는 나대로 괴롭고, 회사는 회사대로 손해고. 그런데 지금 우리는 인터넷 세상에 살고 있다. 업무도 이메일로 주고받고, 보고도 이메일로 하는 세상. 공상과학 영화에서나 보던 홀로그램 회의가 점점 눈앞에 다가오는 시대가 아닌가. 이렇듯 세상이 변해가는 덕분도 있고, 내가 IT회사에 다니는 덕분도 있어서, 다행히 집에서 아기 병간호를 하면서 일을 할 수 있었다. 아기 해열제를 먹인 뒤에 업무 협의를 하고, 분유를 먹인 뒤에 계약 검토도 진행하고. 어차피 사무실에 있었어도 똑같은 방식으로 했을 업무를 단지 집에서 처리한다는 차이만 있을 뿐. 하지만 그 덕분에 딸아이는 그날 저녁에 정상체온으로 돌아와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방긋방긋 웃었다. '집에서 일하면 무조건 좋겠네.'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사실 양날의 검일 수도 있다. 반대로 말하면, 내가 단순히 사무실에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다면, 그 누구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니까.


아버지, 제가 대신 자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출처: https://www.pinterest.co.uk/pin/230457705911128728/)



중요한 건 '어디에서 일하냐'가 아니라 '일을 잘 해내냐'다.


"막 아기 재우고 나와서 집의 불을 껐어. 화면이 어두운 것 좀 양해해줘."

어느 팀원의 회의 전 양해를 구하는 한마디.

다른 회사에서도 점점 더 많이 활용하지만, 화상회의는 구글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정말 중요한 업무 툴이다. 팀이 각국에 뿔뿔이 흩어져서, 한나라에 한 명만 있는 경우가 많은 우리 팀의 주간 화상회의는 팀원들 각자의 노트북으로 접속한 각각의 화면들로 가득하다. 시차도 제각각인 나라에서 회의를 참석하다 보니, 어디는 아침이고, 어디는 밤인 일도 비일 비재하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어디에서 회의에 접속했냐' 보다는, '회의에 접속했냐' 그 자체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다. 서로의 시차를 감안해서 최대한 서로를 배려하는 시간대로 회의를 잡으려 하지만, 다양한 지역에서 들어오다 보면, 부득이하게 어딘가는 불편한 시간에 회의에 참가해야 하는 경우도 종종 벌어지게 된다. 해외 팀과의 회의를 새벽부터 들어가야 되는 날은, 두 가지 선택지에서 고민을 하게 된다. 사무실에 가서 화상 회의에 들어가느냐, 집에서 바로 들어가느냐. 시간대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너무 이른 새벽에 잡히면, 머리 감고 어쩔 시간도 없이, 자다 일어나서 바로 침대에서 접속해서 진행하는 일도 있었다. 이렇듯 나부터가 반드시 사무실에서 일해야 한다는 개념이 점점 희미해지고, 일은 어디서나 할 수 있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팀 회의는 대략 이런 느낌 (출처: 9to5google.com/2016/03/16/google-hangouts-25-participant-video-call/)



이번 주는 시드니에서 다음 주는 샌프란시스코에서


"나 지금 시드니 오피스에서 일하고 있어." 


같은 오피스의 동료에게 점심 먹자고 메신저로 말을 걸었더니, 돌아온 대답.

구글의 오피스는 전 세계 곳곳에 있다. 구글 사원증만 있으면 어느 오피스든 들어갈 수 있는데, 그러다 보니 마치 도장 찍기처럼 전 세계 오피스를 이곳저곳 방문해보려는 직원들도 있는 듯하다. 구글 식당들도 도시별로 특징이 있어서, 어디 오피스의 식당은 뭐가 맛있다더라, 이런 류의 가십도 은근히 돈다. 그만큼 각 오피스 간의 왕래가 자유롭다 보니, 휴가지의 오피스에 가서 일하는 재미있는(?) 풍경도 볼 수 있다. 내가 점심을 먹으려 했던, 이 동료도 호주 여행을 갔다가, 휴가를 마치고 현지에서 업무를 하고 있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업무를 문제없이 해내는 것이다. 만약 자기 일에 펑크를 낸다면, 누가 이해를 해주겠는가. 원래 오피스에서 일하는 것과 차이를 전혀 느낄 수 없게, 업무를 완수해야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어디에서 일하든 똑같이 업무를 해낸다는 전제가 있기에,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데 와있다고 일 안 하고 놀면 아니 되오. (출처: pixabay.com/en/photos/sydney/)





아직 나한테 그런 세상이 오려면 한참 먼 것 같은데? 나랑 아무 상관없는 이야기구먼.


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세상이 바뀌는 건 정말 한순간이다. 내가 삼성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8시에 출근해서 5시에 퇴근(?)하는 8.5제라는 출근제도를 시행하고 있었다. 보통 회사가 9.6제를 하는 것과 달리 1시간 더 빨리 오고 1시간 더 빨리 퇴근하자는 좋은 취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전에는 7.4제였는데, 너무 힘들어서 한 시간을 미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이후엔 출근 시간을 8시, 9시, 10시 중에서 고르게 하는 제도가 생겼고, 그다음에는 오후 1시 전까지 출근해서, 출근 시간부터 8시간을 일하면 된다는 제도가 생겼고, 또 그 이후에는 일주일 단위로 근무시간을 40시간을 채우면 된다는 제도가 생겼다. 내가 다니던 근 10년 동안의 변화였다. 이처럼 세상은 점점 더 빨리 변하고 있고, 기술은 더 빨리 발전하고 있는데, 앞으로의 변화를 어떻게 예측할 수 있겠는가. 

오피스에 앉아 있는 시간으로 업무의 양과 능력을 측정하는 시대는 점점 멀어질 것이다. 이제는 어디에서 일하냐가 아니라, 어떤 성과를 내느냐가 중요한 시대로 변화하고 있다. 주말까지 야근하며 일주일 내내 사무실에 나왔다는 것이 면죄부가 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런 시대에 살아남기 위해, '일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볼 때가 온 것 아닐까.







표제 사진 출처: www.freepik.com/free-photos-vectors/business">Business photo created by freepi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