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S Jan 24. 2019

외국어는 자신감!: 업무에 외국어가 필요하다면

우리 같이 소통해요

"여러분들이 얼마나 다양한 나라에서 온 지 알아요? 72개 나라입니다!"

글로벌 정신을 강조하는 INSEAD MBA는 학생들의 다양성에 큰 무게를 둔다. 그래서 얼마나 국적이 다양한지를 하나의 세일즈 포인트이자 큰 자랑으로 삼곤 한다. 500명이 안 되는 MBA 클래스메이트의 국적이 무려 72개. 이렇게 많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하고 매일같이 부대끼고 지낼 일이 살면서 얼마나 있을까. 그만큼 학생들의 모국어는 한국어, 영어, 프랑스어, 독일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등 우리가 잘 아는 언어부터 남아공 일부 지역에서 쓰는 아프리칸(Afrikaans), 인도 남부의 타밀어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지만, 당연히 글로벌 스탠다드인 영어로 모든 수업 및 활동이 이루어진다. 다양한 언어적 배경에도 불구하고 학생 대다수가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매우 편하게 자유자재로 사용한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를 하면서도 불안해지는 양가감정을 느꼈다. 그들이 영어를 잘하니 의사소통에 문제가 없겠구나 안도를 하면서도, 내 영어가 제일 문제구나 하는 불안함이 부딪히는 아이러니. 클래스에서 나와 친했던 클로이라는 친구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나고 자란 토박이였다. 어느 날 그녀에게 영어가 편하지 않다는 고민을 털어놓자 내게 건넨 격려의 한마디.

"넌 지금 외국어로 토론을 하고, 발표를 하고, 또 면접을 보고 있잖아. 나더러 영어가 아닌 외국어로 그런 걸 하라고 한다면, 정말 끔찍하다. 난 절대 못할 것 같아. 그러니까 넌 이미 대단한 사람이야."


원어민 사이에서 치이며 하루하루 자신감을 잃어가던 그 시절의 내게, 클로이의 위로는 눈물이 날 정도로 의지가 되고 힘이 되었다.


72개국에서 온 493명의 친구들. (일일이 손가락으로 셌으니 정확할 거다.)




난 이 언어 말고도 한국어도 잘하는 사람이다


"일본어 할 줄 아세요?"

삼성전자에서 일본 시장을 담당하다 보니, 자연스레 일본어로 업무 할 일이 많았다. 그렇지만 제2외국어에 능통하면서도, 동시에 이 업무에 관심 있고 잘하는 직원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본적인 수준의 일본어를 쓰는 직원을 뽑은 뒤 일하면서 실력을 키우게 하자며, 채용 방향을 틀었다. 그렇게 뽑힌 동료 중에 인상적인 사람이 있었다. 일본어는 잘 못했는데, 일본 클라이언트와 이야기할 때 위축되지 않고 자기 의견을 당당하게 내는 것이었다. 하지만 언어가 서툰 만큼 이상한 표현이 많아서, 점잖은 클라이언트도 실소를 하기도 했다. 나 같으면 기분도 나쁘고 신경도 쓰여서 좀 위축되었을 법도 한데, 그는 오히려 더 큰 목소리로 자기가 한 말을 반복하며 설득했다. 회의를 나오면서 그가 내게 한마디를 던진다.

"내가 자기네들 말로 해주면 고마워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자기들은 한국말 한마디도 못하면서. 내 일본어가 훨씬 잘하는 거잖아요."


그래, 이거다. 우리는 남의 말을 그들을 위해 해주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신감으로 부딪치면 되는 거다. 그리고 그는 그런 자신감으로 일본어 실력도 금방 늘어났다.



말이 유창하다고 내용도 무조건 훌륭할까


"3 곱하기 5는 답이 뭐지?" 

"3 곱하기 5는 말이지, 3에 5를 곱하는 거야."

응? 이게 뭔가 싶은 황당한 답변. 한국어로 적어 놓고 보니 우습지만, 영어 원어민들과 토론을 하다 보면, 때때로 이것과 비슷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나름 내로라한다는 똘똘이들이 모여 있던 MBA에서 조차 일부 친구들의 토론을 들어 보면, 영어가 모국어다 보니 말은 유창하게 하는데, 실제 토론 내용은 알맹이가 없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 하지만 자기 언어로 이야기한다는 자신감이 있어선지 수업시간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여러분이 이 회사의 CEO라면 가격 인상 전략 말고 어떤 전략을 쓰는 게 좋을까?"라는 교수님의 질문에, 지명받은 원어민 친구는 살짝 당황한듯한 기색을 보이며, 

"만약 가격 인상이라는 전략을 못쓴다면, 나라면 새로운 전략을 생각해볼 것 같아요. 다들 어떻게 생각해요?"

또 응? 앞사람이 했던 이야기를 복붙 한 거 아닌가? 단순히 유창한 발음과 표현에 혹할 뻔했다. 이게 비단 MBA에서만 일어나는 일이겠는가. 직장에서도 사석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 원어민 친구들의 잘못이랄 것도 없고, 내가 만약 그런 상황이었어도 비슷했을 것이다. 무언가 말은 하고 싶은데 잘 모르겠으면, 아무 말 대잔치 할 수도 있겠지. 그래서 내가 배운 건, 외국어 원어민들과 업무로 이야기할 때, 자동차에서 목을 흔드는 강아지 인형마냥 끄덕끄덕하지만 말고, 그들이 하는 말들을 유심히 듣고 그 말의 가치를 판단하라는 것이다. 말이 더 유창하다고 생각까지 더 훌륭하란 법은 없지 않은가. 


얘처럼 계속 끄덕이면 목디스크 올 지도... (출처: www.ebay.com)



결국 말은 생각을 전하는 도구


'아, 이게 중국어야 영어야...'

구글에서 지금 나와 함께 일하는 상사는 중국인이다. 그의 영어에는 중국인 특유의 액센트가 강하게 있어서 처음엔 그의 말을 이해하는데 애를 좀 먹었다. 우리 팀의 일에서 워낙 영어가 중요하다 보니, 영어가 그의 발목을 잡지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걱정을 할 정도였으니. 하지만 이는 말 그대로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그는 회사 내에서 일 잘하기로 소문이 날 정도로 탁월한 업무 능력을 갖고 있었고, 어느 미팅을 들어가도, 그가 주도하지 않는 회의란 없었다. 수많은 원어민들과의 미팅에서 그의 발언은 사람들의 집중을 끌어 모았고, 동조하게 만들었다. 

"지금 제임스 의견이 정말 인상적이었어. 그런데 APAC 시장 상황과 제품 개발 타임라인을 생각하면, 이 부분과 이 부분을 수정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그리고 아까 데이빗이 지적한 그 부분에서 현장의 목소리를 감안해서 예측치를 이렇게 조정해야 될 것 같아."

회의를 주관하며 의견을 정리하는 그의 말에 모두들 고개를 끄덕인다. 이게 무슨 말인지 몰라도, 그냥 딱 느낌에 업무를 완벽하게 이해하고 전략을 세우는 것 같지 않은가. 실제로 그는 다양한 업무의 핵심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만의 통찰력과 추진력으로 동료들을 진두지휘한다. 비록 원어민보다는 덜 유창하고, 남다른 액센트를 갖고 있지만, 핵심을 놓치지 않고 간결하게 전달하는 그의 생각의 깊이와 무게는 다른 이들이 그의 말에 집중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가 나도 그의 영어가 무엇보다도 유창하게 들리는 마법에 빠지게 되었다. 결국 언어는 그 사람의 생각을 전달하는 도구일 뿐, 다른 이들이 그 말을 알아들을 정도만 된다면 더 중요한 것은 그 안에 담긴 생각일 것이다.


그의 생각은 이처럼 모두를 집중하게 만든다. (출처: NBC News / Cecilie_Arcurs / Getty Images)




네, 우린 일단 한국어를 할 줄 압니다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언어는?

영어, 중국어 등등 의견들이 많이 나오겠지만, 답은 Broken English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만큼 언어의 격식을 따지기보다 어떻게든 소통하기 위해 각기 자신들의 방식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 아닐까.

십수 년의 직장 생활을 매일매일 외국어와 싸우면서, 또 그 안에서 성과를 내면서 얻은 교훈이 있다. 

언어는 목적이 아닌 수단이라는 사실. 조금 더듬거려도, 조금 문법이 틀려도 괜찮다. 내 생각을 전달할 수만 있다면야. 상대방의 말을 못 알아들은 게 죄는 아니지 않은가. 알아들은 척하지 말고 정확하게 이해할 때까지 다시 물어봐라. 만약 그 상대가 짜증을 낸다면, 그 사람이 덜 성숙한 것이다. 우리가 한국어로 대화하다가 못 알아들을 때, 그저 어색하게 웃으면서 알아들은 척 넘어가나? 당당해지자. 우리는 그들을 위한 배려를 하고 있는 것이다.







표제 사진 출처: www.shutterstock.com/it/video/clip-14557609-caucasian-african-american-asian-chinese-multi-ethnic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