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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S Apr 19. 2019

정리하면서 일하는 게 결국 빨리 일하는 방법

좀 치우고 삽시다

나, 이제 좀 겁나...


예전 회사 근처 원룸에서 혼자 자취하던 시절의 이야기. 처음에는 별 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이, 나중에 하지 뭐.' 그렇게 조금씩 설거지 거리는 내 싱크대에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회사에서 업무에 절어 집에 오면 집안 청소를 신경 쓸 겨를 없이 기절하곤 했다. 그리고 다가온 주말. 전날의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뜬 내게 제일 먼저 인사하는 것은 그동안 몸을 불려 온 설거지 거리들. 왠지 저 산더미 같은 그릇들 안에서 '생명의 신비'를 볼 것만 같은 생각에 덜컥 겁이 났다. 그리고 나는 또다시 과거의 나를 애타게 찾았다. '설거지를 그 녀석한테 시킬 수만 있으면 좋겠어..' 그때그때 했으면 정리했으면 별것 아니었는데, 왜 난 이리 일을 어렵게 키워왔을까. 자책과 망설임의 반복 속에 나의 주말은 조금씩 지나가고 있었다.

 



너의 이름은 할 일은 - 미시적 업무 관리


월요일. 그 이름은 참 언제 들어도 마음이 불편해진다. 끔찍한 월요병은 새로운 한주 동안, 수많은 해결되지 않은 일들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오는 경우가 많을 텐데, 막상 내가 뭘 해야 하는지 나열하고 나면, '생각해보니 이번 주 할만하겠는데?' 하며 그 증세가 완화될 수도 있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나의 경우는 일요일 저녁에 30분 정도 새로운 한주에 내가 해야 할 일을 간단히 리스트업 한다. 사실 이건 월요일 아침에 해도 되니, 굳이 주말을 희생시킬 필요는 없다. 지난주에 해결 안 되고 펜딩(Pending)된 일과 이번 주에 새로 시작해야 되는 일을 나눠서 주룩 나열해둔다. 작심 3일이라고들 하지만 새해에 금연이나 다이어트 이런 목표를 세워두면, 그래도 3일은 해보는 거 아닌가. 이렇게 한 주 동안 내가 뭘 해야 하는지가 목표가 정해진 것이다. 그리고는 주중에 하루 일과를 끝낼 즈음에, 나는 그날 한일을 복기하고, 다음날 할 일을 주의 업무 목표를 베이스로 리스트업을 해둔다. 이렇게 일단위로 한일과 할 일을 정리하면 작심 3일일 수 있는 계획이 최소한 머리에서 더 맴돌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다들 비슷하겠지만, 내가 생각지도 않았던 사고도 터지고, 업무도 떨어져서 원래 내가 하려 했던 업무는 계속 밀리는 상황이 자주 벌어진다. 이렇게 정신없이 소나기를 맞다 보면, 내가 하려던 일은 방치되다 못해, 내가 다시 떠올릴 그날까지 어디 어두운 구석에서 훌쩍이고 있을지 모른다. 그때는 그럼 나도 같이 울겠지... 그래서 나는 주간, 일간 업무를 어떻게든 정리하고 체크하면서 중요한 것만이라도 조금씩 진전을 시키려 한다. 굉장히 귀찮기도 했지만, 설거지가 쌓여 날벌레가 꼬이지 않게 하기 위해, 지저분한 그릇을 씻어야 한다는 사실을 계속 알려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마음이 편해졌다.


아, 이런 꿀팁이. 나만 몰랐잖아요 >. < [사진 1]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 거시적 업무 관리


지금 정신없이 하고는 있는데, 이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잘 모르겠어.


일하다 보면, 내가 왜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어딘가 길 잃은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주기적으로 내가 이번 분기 혹은 연도에 해야 될 성과 목표를 점검하는 시간을 통해. 내가 하는 일들이 과연 내가 이뤄야 할 성과 목표인가를 돌아보는 것은 어찌 보면 가장 중요한 기본일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내가 이번 분기에 달성해야 되는 목표는 영어로 원어민과 대화하기인데, 일본어 공부를 하고 있으면 내 성과 달성과는 무관한 노력을 들이고 있는 꼴이 되는 게 아닌가. 이런 때, 내가 이번 분기 목표과 지금 하는 일을 비교, 점검을 하지 않으면, "아, 오늘 뭐든 간에 공부는 했잖아. 뿌듯해."라는 마음을 가질 수는 있지만, 성과 달성으로부터는 멀어지는 슬픈 하루가 될 수밖에 없다. 주간업무 리스트를 정리할 때, 함께 나의 연간/분기별 성과목표들을 비교하면서 내가 무엇을 해야 되는지 정하고 상기를 꾸준히 시켜주기만 해도, 최소한 서점에서 영어 책 대신에 일본어 책을 집는 일은 줄어들 것이다. 업무가 끊임없이 쏟아져와 복잡해질수록 내가 갈 길을 알려주는 나침반이 필요하다. 나는 이를 위해 매 분기마다 각 분기의 OKR(Objectives and Key Results )을 설정하고, 매주 그 진척사항을 관리하곤 한다. 물론 그 자체가 스트레스이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설정한 목표를 한 가지씩 달성할 때마다 게임을 한판 한판 이기는 기분이 들어 어떤 때는 재미있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 시간대별 스케줄 관리


나는 구글 캘린더를 적극 활용해서 내 스케줄을 30분 단위로 정리를 해둔다. 이게 반드시 잠시도 쉬지 않고 일을 하자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다만 내가 시간의 제한을 두고 업무를 할당을 해두지 않으면, 아예 내가 해야 될 일은 긴급으로 내게 떨어지는 스팟성 업무들에 밀려 존재조차 잊게 될지 모른다.

구글에서는 이 구글 캘린더를 보고 서로의 업무와 스케줄을 파악하다 보니, 보다 꼼꼼하게 활용하게 되었는데, 나는 하루에 꼭 개인 업무 정리/처리 시간을 확보해둔다. 예를 들면 매일 9시부터 9시 반은 'DNS(Do not schedule)' 표시를 해두고 이때는 다른 미팅이나 업무를 잠시 미뤄두고, 분기초, 주초, 또는 전날 미리 계획한 일을 처리하려 한다.

"XX님, 긴급으로 확인 좀 부탁해요." "이것 좀 먼저 확인해주세요."

이런 류의 요청이 좀비 떼처럼 몰려오면, 나는 패닉에 빠진다. 그런 때 문제는 해결 못하면서 고민, 걱정만 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은 시간대별 스케줄 정리이다. '으아 바빠, 큰일이야. 빨리 해야 돼.'라고 생각만 하고, 업무 진행은 제자리에서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나는 종종 있었다. 대개 나의 경험은 시간의 문제가 아니고, 효율의 문제가 더 컸다. 복잡하게 엉킨 실타래를 풀고, 문제를 하나씩 해결하기 위해서는 온전히 어떤 일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며, 어떤 일을 우선 처리해야 하는지에 대해 스스로 생각하고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기에 더더욱 가능한 잠시라도 내 시간을 확보해서 일을 정리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일을 더 빨리 하는 방법이 되곤 했다.


제 요청부터 긴급으로 확인 좀 부탁해요~ [사진 2]




그리고 왕자님과 공주님은 영원히 행복하게 살았답니다.


동화책의 결말은 항상 아름답다. 내 직장 생활에서도 일이 한 번에 싹 다 해결되고 아름답게 마무리되는 그런 해피엔딩이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현실은 녹록지 않다. 일은 계속 꼬이라고 있는 것 같고, 하나를 해결하기도 전에 두 개의 문제가 새로 생긴다. 일이 내가 감당하기 힘들게 몰려올 때, 무작정 쏟아지는 업무비에 얻어맞다 보면, 결국은 지쳐 쓰러져, 펑크를 낼 수밖에 없다. 이때, 만약 내가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를 알고 있다면, 최소한 우박은 피하고 가랑비를 맞는 선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귀찮지만 치우면서 살아야 한다. 직장 들어가기 전에 누구보다 정리, 계획하는 것을 귀찮아했다고 자부(?)하는 내가, 이 것이 결국은 나를 편하게 하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고 나니, 스스로 정리를 하게 되는 마법을 보게 된 것처럼.







표제 사진 출처: Photo by Adli Wahid on Unsplash. unsplash.com/photos/MC124FE4Qj4


사진 1 출처: www.clien.net/service/board/park/5206177


사진 2 출처: 영화 '부산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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