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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S Feb 07. 2019

나 스스로 만든 한계 안에 내 미래를 가두지말자

굴레를 벗어나

12분 동안 먹은 닭날개가 183개. 10분에 핫도그 45개. 5분에 굴 445개.


듣기만 해도 속이 더부룩해지는 느낌이다. 저만큼의 음식을 시간 관계없이 먹으라고 해도, 건장한 성인 남성도 엄두도 못 낼 양. 놀랍게도 이 숫자는 47킬로의 가녀린 아시아 여성이 세운 기록이다. 

미국에서 푸드파이터 챔피언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 기록의 주인공, 이선경(미국명: Sonya Thomas)씨는 28살에 미국으로 건너왔다. 어느 날 우연히 티비에서, 왜소한 동양인 푸드파이터 고바야시 타케루가 핫도그 먹기 챔피언이 되는 것을 본 그녀는 생각했다. '나도 한번 도전해볼까?' 선경 씨의 체구를 보면 다들 과연 가능한 도전일까 생각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녀는 그런 외적인 한계에 미리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1분 동안 핫도그 1개 먹기도 버거웠던 그녀는, 오기가 생겨 더 연습했다. 그리고 출전한 첫 대회에서 자신의 4,5배는 더 무거운 상대를 누르고 우승한다. 그 뒤로도 수많은 대회에서 그녀는, 작은 체구의 한계를 넘어서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했다. 어떻게 그런 큰 체구의 사람들과의 경쟁에서 이기냐는 사람들의 질문에 그녀는 답한다.

"체격 하고는 상관없어요. 이건 정신력 싸움이에요. 더 못 먹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진짜 못 먹게 되거든요."


한계를 이겨내고 있는 이선경 선수(가운데) [사진 1]




언어의 한계를 넘어서기


삼성 신입시절 일본 담당으로 배치를 받았다. 일본 교환학생 경험으로 인해 일본팀에 발령이 났지만, 나는 사실 일본어가 아닌 영어로 진행되는 교환학생 프로그램에 있었다. 일본어라고는 동네 선술집에서 닭튀김과 맥주 시키는 용도로나 썼던 나에게 업무를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일본어로 하라니? 처음부터 모르는 용어, 모르는 표현 투성이었다. 친구들끼리나 쓰던 일본어를 비즈니스 용으로(게다가 내 상대는 주로 나의 '갑'이라 할 수 있는 클라이언트였다.) 그 복잡한 높임말에 겸양어까지 써야 한다니. "내가 당신을 만나러 와주셨어요." 존댓말을 쓴다는 게 나를 높이고, 상대방은 한없이 낮추는 등의 끊임없는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10년 가까이 일본어를 갈고닦으며 일하자 그 업무와 환경이 이제는 무엇보다 편하고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리고 이렇게 내 커리어의 한계는 정해져 버린 것 같았다. 대부분의 동료들도 그렇게 생각했다. 일본 관련 업무가 우리가 앞으로도 계속 갈 길이라고.

"나 이대로 그저 흘러가는 대로 있으면, 내가 보는 이 작은 세상이 앞으로도 내 세상의 전부일 것 같아."


싫었다. 이대로 내 인생이 정해져서 그저 따라서 흘러가는 게. 다른 세상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려면 나의 근본적인 한계를 벗어나야 했다. 바로 언어. 10년 가까이 한 가지 언어에 특화돼서 업무를 해오고 나니, 그 익숙함의 달콤함은 생각보다 컸다. 그저 내가 잘 아는 방식으로 해오던 대로 하면 되는 편안함을 왜 굳이 걷어 차야 하는가. 내 강점을 버리고 다시 무한 경쟁의 시장으로 들어가는 기분이었다. 그렇지만, 내가 이 언어라는 한계를 벗어나지 않는다면, 내 미래는 그저 지금까지 흘러 왔던 것처럼 똑같이 흘러갈 것이다. 그래서 사회생활 10년 만에 일본어 능력과는 전혀 무관한, 모든 업무가 영어로 이루어지는 일에 도전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신입 때 겪었던 그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내 것으로 체화하는 고통을 다시 하루하루 겪게 되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사서 고생을 이제 와서 또 하고 있나...' 후회했다. 절대 앞으로는 새로운 것에 도전하지 않으리라. 매일매일 되뇌었지만, 이것이 내 미래의 삶의 선택지를 풍부하게 해 줄 것이라는 믿음 하나로 버텼다. 지금 돌아보면 내 선택으로 인한 그 과정은 힘들었지만 그 이상으로 나의 선택이 옳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만약 그대로 나 스스로 일본어라는 한계에 나를 가두었다면, 지금만큼 더 넓은 세상을 볼 수 있었을까.



직군/전공의 한계를 넘어서기


"엥? 너 엔지니어팀으로 갔어? 어떻게? 너 문과생이잖아??"


전 직장의 친한 동기 중에 약간 독특했던 친구가 있다. 성격도 서글서글하고 대인관계도 무난 무난한데, 뭔가 생각하는 게 남다른 그런 친구. 삼성은 당시 영업마케팅 업무를 하는 M직군과 개발/엔지니어링 업무를 하는 E직군, 제조라인의 P직군 등 전반적인 업무의 특성에 따라 직군이 나뉘어 있었다. 문과 출신인 나는 M직군으로 입사해서 주욱 M직군 업무를 해왔다. 학교 다닐 때를 돌아보면, 이과생들이 문과 전공을 오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문과생이 이과 전공을 가는 경우는 그렇게 흔하진 않았었다. 일반화를 하는 것은 조심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봤을 때, 아무래도 다양한 분야를 넓게 공부하는 제너럴리스트 스타일의 문과 공부와 특정분야를 전문분야로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스페셜리스트 스타일의 이과 공부의 차이에서 기인했던 것 같다. 회사도 마찬가지였다. 개발자들이 M직군 업무로 전배 와서 일을 하는 경우는 상당히 많았다. 영업/마케팅 스킬을 장착하게 된 그들에게 엔지니어 경력에서 오는 기술 관련 지식은 강점을 극대화할 수 있는 무기였다. 반면 계속 문과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회사의 경력까지 쌓아온 이들에게 하루아침에 엔지니어 수준의 기술을 습득하게 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쉽게 도전할 수 없는, 뭐랄까, 명동성당 같은 성역의 느낌이었다. 그래서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우스개 소리가 내게 결코 우습게 들리지만은 않았다.

"나는 사업할 거야. 그래서 이 회사에 있는 동안 가능한 다양한 일을 경험해보고 싶었어. 못할 일이 뭐가 있겠냐."

M직군에서 E직군으로 옮긴 희귀 케이스가 된 그 친구가 말했다. 아니 그래도, 엔지니어 백그라운드도 없는 그 친구가 거기 가려면 그 팀을 대체 어떻게 설득한 걸까.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친구도 참 노력 많이 했구나 싶었다. 코딩 등 해당 업무에 관련 지식은 틈틈이 공부하면서 자격증도 따고, 가고 싶어 했던 팀과 교류도 많이 하며, 임원들에게도 업무적으로 많이 어필을 했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마케터에서 엔지니어가 된 선구자가 되었고, 이후 정말로 퇴사하여 사업을 시작했다.

"처음에 엔지니어팀에 가서 진짜 어리바리했었는데, 그때 배운 개발 업무가 사업에 정말 도움이 많이 되더라."

멋있었다, 그 친구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상도 못 했던 도전이었다. 마음속 깊이 무의식 중에 자리 잡았던 '문과생은 엔지니어를 할 수 없다.'는 한계를 뚫고 도전한 그 친구는 지금 그가 꿈꿨던 더 넓은 세상으로 날아가고 있다.


이 어려운 걸 해내지 말입니다 [사진 2]



국경의 한계를 넘어서기


구글의 오피스는 전에도 언급한 것처럼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있다. 하지만 오피스마다 조금씩 각 팀의 업무분야가 다르기도 하고, 팀의 규도 다르다. 그래서 어떤 업무는 어떤 나라에 더 큰 조직이 있고, 어떤 업무는 또 어떤 나라에 더 다양한 기회가 있기도 하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있는 오피스에서 어떤 특정업무에 대해 어느 레벨까지 올라가면 더 높이 성장하기 어렵거나, 원하는 업무 분야의 채용이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자연스레 자신이 있는 오피스에 해당 포지션이 열리거나 더 높은 레벨의 자리가 생기기를 원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이런 전반적인 요구들에 대한 어느 윗분의 말씀은 그간 가져왔던 내 생각을 완전히 바꿔주었다.

"만약 네가 있는 이 오피스에서 혹은 이 나라에서, 원하는 포지션이 없거나 더 높이 올라갈 자리가 없다는 이유로 너의 한계가 여기까지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네 눈을 스스로 가리고 있는 셈이야. 네가 원하는 자리가 만약 이 오피스에 없으면 다른 오피스에는 있지 않겠어? 그 자리가 네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을 왜 못해. 네 스스로 보이지 않는 한계를 만들어버리면, 너는 그 자리에 멈출 수밖에 없는 거야."


한방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나도 모르게 나는 내게 수많은 굴레를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부터 '이건 안 되는 거야.'라는 식으로 지워왔던 선택지들. 국경은 단지 국경일뿐이다. 내가 원하는 일이 있는 곳이라면, 내가 올라가고자 하는 자리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내가 있을 곳이 아닐까. 그것이 나의 고향일 수도 있고, 앞으로의 고향이 될 곳일 수도 있고.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지도 미리 스스로 지우지 말자는 것.


천하장사하고 싶어서 한국서 일해요 [사진 3]




"진짜 내가 지금 이렇게 살 거라고 몇 년 전에는 상상도 못 했는데."


전 직장에 다닐 때, 내가 이렇게 일하고 있으리라고는 전혀 상상도 못 했다. 휴대폰 해외영업팀에서 매일 일본어로 일했던 그 직원은 IT 신사업 개발 BD팀에서 매일 영어로 고군분투하고 있다. 마음의 소리는 힘들 때마다 나를 유혹한다. '그건 내가 어쩔 도리가 없는 한계야. 그냥 살던 대로 지내자. 인생 어차피 다 비슷비슷하다.' 그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나의 꿈을 가두는 한계는 계속 생겨난다. '이건 이러니까 안 되는 거야. 이건 해보나 마나 야.' 그래서 지금까지 그 한계에 스스로 발을 멈춘 적도 있었지만, 무거워지는 발걸음을 어떻게든 앞을 향해 이끌고 갔을 때의 경험들을 돌아보면, 하나같이 해보길 잘했다는 생각이다. 그 결과가 좋았건, 좋지 않았건.

내 미래를 현재의 내가 전부 알 수는 없지 않은가. 그러니까 괜히 지레 겁을 먹어서 선택지를 줄이지 말자. 이왕이면 많은 선택지 중에서 가장 좋은 걸 골라야 하니까.







표제 사진 출처: pixabay.com/en/cliff-jump-high-rock-boy-2699812/


사진 1 출처: 

Getty Images. www.dailymail.co.uk/news/article-2066436/Poor-Sonya-Black-Widow-Her-turkey-eating-record-smashed-rival---day-later.html


사진 2 출처: 

business.facebook.com/search/str/%23문과생_그리고_이과생/stories-keyword/stories-public?esd=eyJlc2lkIjoiUzpfSTIwNTg0MDcyOTU0MjQzNzoxMjc3Nzc0NTUyMzQ5MDQ0IiwicHNpZCI6eyIyMDU4NDA3Mjk1NDI0Mzc6MTI3Nzc3NDU1MjM0OTA0NCI6IlV6cGZTVEl3TlRnME1EY3lPVFUwTWpRek56b3hNamMzTnpjME5UVXlNelE1TURRMCJ9LCJjcmN0IjoidGV4dCIsImNzaWQiOiIyYmMyYjJjZjIxOGM1MWQyMjgzMTVhYTE2NDgxNjk4YSJ9


사진 3 출처: 

ssireum.sports.or.kr/gnb/bbs/board.php?bo_table=sub03_2_2&wr_id=73&sst=wr_hit&sod=desc&sop=and&page=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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