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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S Dec 14. 2018

브랜드 스토리텔링: 내 경험의 숨겨진 가치 찾기

Isn't she lovely?

"일본 가지? 이번에 너한테 하나만 부탁하자."

"응, 뭔데?"

"도쿄 시부야에 슈프림 매장에 가서 액세서리 같은 거 아무거나 하나만 사다 주라. 돈 줄게."

"아무거나면 돼?"

"응, 아무거나. 브랜드 로고만 달려 있으면 돼"

아무거나래서 매장에 있던 성냥 어떠냐 물었더니, 그것도 좋단다. 허허...

핫한 미국의 스트리트 패션 브랜드 '슈프림(Supreme)' 이야기이다. 그 빨간 로고만 붙으면 쓰레기도 팔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니. 대체 브랜드라는 게 뭐길래... (라고 말하지만, 사실 나도 슈프림 좋아한다. 돈이 없을 뿐...)


바로 그 '슈프림 성냥'. 이베이에선 40불도 넘는 가격에 팔리고 있다. (출처: www.ebay.com)




인류학이라고 들어 보셨나요?

"전공이 인류학이네요? 흠, 인류학은 해외 영업하고 별 상관이 없어 보이는데?"


첫 직장 면접에서 임원분이 내게 던지신 돌직구. 아, 다행히 기다린 질문이다. 진중한 느낌 살려서 차분하게 속으로 셋을 세고, 자신 있어 보이지만 건방져 보이지는 않는 부드러운 미소와 함께,

"네, 인류학은 사람과 문화를 공부하는 학문입니다. 해외 영업 마케팅 업무는 우리 제품을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에게 그들의 입장에 서서 이해시키는 업무인만큼, 제 전공과도 매우 잘 맞는다고 생각합니다."

면접관님 표정이 나쁘지 않다. 휴. 미리 생각해두지 않았으면, 분명 엄청 당황해서 버벅댔겠지.


사실 전공이 비교적 생소했기에 대학에 들어간 순간부터 많이 이런 류의 질문을 받아왔다.

"거기가 뭐하는 데냐? 밥은 먹고살 수 있는 거냐? 그거 배워서 뭐에 쓰냐?" 라임이 살아 있는 피곤한 질문 3콤보. 소위 돈벌이가 되는 전공이 아니라며 한 마디씩 해주는 분들 덕분에 내 전공을 선택한 이유나, 이 공부가 어떻게 나를 성장시키고 도움이 될지 고민할 기회를 충분히 가질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는 '긍정을 바탕으로 한 브랜드 스토리텔링'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게 되었다. 다시 말해, 인류학 공부가 내게 준 좋은 영향들을 생각하고, 이것을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듣는 이의 입장에서 쉽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문화를 배우고 사람을 배우는데 무슨 일인들 못할까. 이렇듯 긍정의 힘이 솟아나자, 나라는 브랜드는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의미 있는 이야기를 갖게 되었다.


솟아라 긍정의 힘 (출처: MBC '무한도전')



작은 팀에 있다고 맡은 업무까지 작은 것은 아니에요

"일본팀 같은 작은 팀은 아무래도 경험의 폭이 좁지 않아?"


삼성전자 해외영업 마케팅팀에서 나는 일본 시장을 담당했었다. 일본은 전통적인 전자제품 강자들의 고향이자 세계 3위 규모의 큰 시장이지만, 삼성에게는 다른 국가에 비해서 큰 재미를 못 보는 시장이었다. 더 큰 규모의 비즈니스를 하는 북미, 유럽, 중국 등의 팀은 규모도 크고, 본사와 법인, 유관 부서 간 업무의 분업화 등, 매우 체계적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던 반면, 내가 있던 일본팀은 처음에 들어갔을 땐, 상무님 포함 5명 정도 되는, 그때 막 독립한 신생 팀이었다. 무선사업부 업무를 담당하는 현지 법인도 없었고, 개발팀도 일본은 규모가 작았다. 이런 이유로, 업무에 어려움이 많을 것이라 생각하는 주변으로부터 많은 위로 내지 동정도 받았지만, 오히려 나는 그게 좋았다. 그래서 앞선 질문에 이렇게 답할 수 있었다.

"아직 신생팀이고 작다 보니, 실무직원이 할 수 있는 업무 범위가 다른 팀보다 큰 것 같아요. 제품 론칭을 직접 메인으로 담당해서 일도 하고, 현지 법인 업무도 우리가 다 하는 데다가, 개발팀과도 더 긴밀하게 일할 수 있고요."

그리고 나는 이 경력을 A부터 Z까지 경험한 신입사원이라는, 흥미로운 나만의 브랜드 스토리로 만들어, 두고두고 사골처럼(!) 우려먹었다.


법인이 없어 현지서 업무 중인, 일당백(이라고 믿고 싶었던) 사원 시절



내가 보낸 시간 중에 헛 된 시간은 없다

"물건을 파는 세일즈랑 사업을 제휴하는 파트너십은 업무가 많이 다를 텐데,
잘 해낼 수 있겠어요?"


구글 내부에서 팀을 옮기려 했을 때의 이야기다. 구글은 내부 전배도 상당히 많은 인터뷰와 검증 과정을 거치는데, 옮기려는 부서의 팀장으로부터 조금은 까다로운 질문을 받았다. 그래, 사실 세일즈 업무를 하던 사람이 파트너십 업무를 하는 건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당연할 수 있다. 하지만 고객 케어부터 전략 제안까지, 업무의 범위가 굉장히 넓은 세일즈 경력을 단순히 물건 팔았던 경험으로 치부되게 할 수 없었다.

"저는 세일즈 업무를 할 때, 클라이언트의 임원들을 설득하며 장기적인 파트너십을 가져갈 수 있도록 관계를 다져왔습니다. 일회성으로 끝날 거래를 전략적 파트너십 구축을 통해 비즈니스를 발전시킬 수 있었던 세일즈팀에서의 경험이, 파트너십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새로운 접근 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다행히 이 답변으로 결국 그 인터뷰어와 한 팀이 되었다. 그리고 팀장은 나의 답변을 사골처럼 우려먹으며 성과를 압박하는 용도로 잘 활용하고 있다.


나도 팀장도 사랑하는 사골국




'아 다르고, 어 다르다.'


같은 이야기도 어떻게 해석하고 표현하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이의 감흥이 완전히 다르다는 걸, 이렇듯 경험의 축적으로 더 절감하게 되었다. 똑같은 벽돌이라도, '슈프림'이라는 이름이 덧씌워진 벽돌은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가는 것처럼, (농담 같지만, 정말 벽돌도 판다.) '스토리'가 있다는 것은 정말 큰 차이이다. 만약 내가 한 경험들을 그저 그렇게 방치해 놓았다면, '업무와 그다지 관계없어 보이는 전공을 한 친구가 체계 없는 마이너 부서에서 그저 그런 뻔한 경험을 했구나' 정도의 시시한 이야기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되었다면, 나 자신에게 스스로 얼마나 미안했을까. 내 경험은 오로지 내 것이기에, 나만의 독특한 브랜드 스토리로 만들어 나갈 수 있는 것도 바로 나 자신 뿐이고, 나의 경험들을 사랑스럽게 만드는 것도 바로 나 자신일 것이다.





표제 사진 출처: NBC/Getty Images 'Stevie Wonder' https://www.bankrate.com/lifestyle/celebrity-money/stevie-wonder-net-wor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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