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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가 S Dec 20. 2018

꿈은 한순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삼성맨, 그렇게 구글러가 되어간다

"올해 발롱도르 수상자는 메시일까, 호날두일까?"


리오넬 메시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 2008년부터 10년간 세계 최고의 축구선수를 뽑는 발롱도르에 엎치락뒤치락 5번씩 사이좋게 수상한 이 둘의 이름은 축구를 잘 모르는 이들도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올해는 모드리치가 수상했지만...)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메시는 유소년팀부터 지금까지 FC바르셀로나 한 팀에서만 뛰며 전설을 만들어 가는 원팀 맨인데 반해, 호날두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레알 마드리드를 거쳐 유벤투스에서 뛰며, 새로운 리그에 빠르게 적응하여 빼어난 활약을 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나는 한때 메시를 꿈꿨는지 모른다. 그러나 세상을 경험하고 생각이 자라면서, 호날두가 나의 꿈속으로 들어왔다.


롤모델이 너래? 응, 나래. (출처: BBC. Getty Images)




"저는 대통령이 되고 싶습니다!"


요즘은 완전히 양상이 달라졌다지만, 대통령이 예전 초등학생들의 단골 장래희망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 아이들이 자라서 회사에 갔기 때문일까. "저는 삼성전자 사장이 되고 싶습니다!"가 삼성 신입 시절에 주변에 말하긴 부끄럽지만 속으로 살포시 가졌던 꿈이었던 것 같다. 함께 들어왔던 수많은 신입사원들 중 상당수가 비슷한 꿈을 꾸었을 거라 생각하면, 10여 년이 흐른 지금 그 미래의 사장들은 몇이나 여전히 같은 마음을 간직하고 있을까.

나도 한때 내 첫 직장에서 회사를 이끄는 위치에 올라 글로벌 비즈니스를 이끌어 가고 싶다는 바람을 가진 적이 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 사람이라 했던가. 이후, 업무로, 유학으로 많은 사람을 만나고, 넓은 세상을 만나면서 처음의 나의 바람은 새롭게 옷을 갈아입게 되었다.


사장님들이 좀 많으신 것 같습니다만... @ 삼성그룹 신입사원 연수


'구글을 알고 싶다.'

왜 구글이었을까. 사실 외부자의 시선으로 알 수 있는 게 얼마나 될까. 그저 오랜 기간 테크 회사에서 일하면서 IT업계에 대한 지대한 관심은 당연했고, 그중에서 글로벌 IT 기업의 대표 격인 구글에 대해 자연스레 관심이 생겨났다. 무엇보다도 구글은 내가 일하던 스마트폰 분야에서 삼성의 주요 파트너였기에, 동료들 사이에서 '구글은 오피스에 미끄럼틀이 있다더라. 텐트도 치고 일한다더라. 밥이 맛있다더라' 등 소소한 소재도 언제나 뜨거운 화제였다. 구글의 사내 문화가 파격적이라던데, 구글이 세계 시장을 휩쓴다던데, 구글이 유튜브랑 안드로이드도 갖고 있다던데...', 궁금해!' 관심은 행동으로 옮겨졌고, 뉴스, 도서 등 다양한 루트를 통해 나의 호기심을 채워갔다.


"구글은 보통 어떤 복장을 입나요?"

INSEAD에서 열린 구글 설명회에서 어떤 친구가 조금은 시시한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답하는 학교 출신 구글러.

"벗고 오지만 않으면 돼요."

'응? 내가 잘 못 들었나?' 내 리스닝 실력이 오락가락한 건가 의심하려는 찰나,

"업무와 관계없는 규제는 없을수록 좋죠."


그 한마디였다. 단지 한마디. 그저 우스갯소리로 넘길 수 있는 대답이었는데, 난 그 말에 마음이 꽂혀 버렸다. '이런 센스라니! 이런 자유로움이라니!' 그는 이런 깊은 의미를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지만, 그 별거 아닐 수도 있었던 한마디는 잘 짜여진 관리의 삼성에서 무럭무럭 자라오던 나에게 일종의 문화충격이었고, 내게 구글이라는 미지의 조직이 알고 싶은 대상에서 경험하고 싶은 대상으로 바뀌는 계기가 되었다.


시시한 질문해준 친구 고마워. 네 덕에 맘 굳혔어. @ 구글 설명회 in INSEAD




"나 완전 신입으로 되돌아 간 거 같아. 계속 어리바리대고..."

그 원하던 구글로 이직하고 나서 처음엔 한동안 자괴감의 바다에 빠져 허우적댔었다. 세상 너무 쉽게만 보았나 보다.

세상엔 다양한 기업들이 있고, 똑같은 문화와 환경을 가진 기업은 하나도 없다. 따라서 회사를 옮긴다는 것은 단순히 내가 속한 조직의 이름과 사무실의 위치가 바뀐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동안 당연하게 진리라고 생각해왔던 것들, 당연하게 존재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없어지고, 다시 처음부터 걸음마를 하는 것과 비슷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지금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 것은, 매우 다른 두 조직을 경험함으로써 내가 더 많은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사람들을 알아가는 방법과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의 깊이를 더 할 수 있게 되어서가 아닐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호날두를 꿈꾼다.








덧붙이며.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마음'

내가 삼성전자를 떠올릴 때, BGM으로 흘리고 싶은 노래다. 그만큼 학생의 때를 벗기고, 사회인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공간이었기에 애착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의 순전한 개인 경험을 쓰는 것이 '어디가 더 좋다더라.', '어디는 이런 게 문제더라.'라는 의견으로 비칠까 우려도 된다. 하지만 회사를, 조직을 옮긴다는 것이 내게 직장에 대한 개념이나 가치관이 바뀔 정도의 큰 변화였고, '현대 경쟁사회에서의 생존'을 위해 개인적으로 정말 중요한 이벤트였기에 조심스레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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