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는 날의 일기
원래 재킷을 입었는데 너무 더워서 얇은 니트로 갈아입었다.
2018.10.9
기타큐슈 여행기 1
인생 처음으로 혼자 항공권을 끊고, 숙소를 잡고 해외로 떠나보았다. 나의 첫 번째 독립 여행을 축하하며 캐리어도 새로 장만하고 이제 나는 어엿한 진짜 레알 성인이야! (성인 된 지 오래) 하면서 들떠있었지만 사실 멀리 갈 용기는 없어서 여자 혼자서도 많이들 간다는 기타큐슈로 여행지를 선정했다. 새벽 4시에 공항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뒤 바로 체크인을 하기 위해 줄을 섰다. 겉으로는 이미 해외여행을 한 10번은 혼자 간 사람처럼 태연한 척, 난 이 공항이 매우 익숙 한 척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덜덜덜 떨었다. 혹시나 내 여권 조회를 했는데 예매한 항공권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줄이 내가 예매한 항공기 줄이 아니라면? 실제로 티켓을 끊을 때 여권정보를 입력하지 않아서 상당히 불안한 상태였다. ( 지식인에 여권정보를 제공 안 해도 되나요 등등 백 번 검색함.) 해외여행을 가는 건 처음이 아니지만 나는 집안 막내여서 항상 언니들이 무언가를 케어해주는 혜택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매우 긴장을 했다. 시간이 흘러서 무사히 발권을 하고 비행기를 타고 눈떠보니 기타큐슈 공항이었다. 기타큐슈 공항은 워낙 좁고 사람들도 별로 없어서 금방 금방 입국심사를 마치고 나갈 수 있었는데 나는 다시 한번 보안 검색대를 통과해야 했다. 내가 수상해 보였던 걸까? 하지만 정말 수상하게도 내가 지나갈 때마다 삐-삐-삐 소리가 나서 재킷을 벗고 다시 한 번 지났는데도 소리가 나서 결국 의자에 앉아 대기하다가, 굽이 있었던 내 신발을 벗어보라는 보안직원의 말에 신발을 벗었다. 그런데 양쪽 양말 엄지발가락 부분이 다 구멍 나있었다. 보안직원분도 웃었고 나도 웃었다. 그러고 나서야 무사히 기타큐슈 공항을 벗어날 수 있었고 한국어를 하시는 직원분들이 상주해있었기에 쉽게 버스를 타고 호텔까지 갈 수 있었다.
호텔에 짐을 맡기고 유명한 이치란 라멘을 먹으러 왔는데 공항에서의 사태 때문인지 배가 아파서 한 그릇을 다 못 먹고 국물을 남기고야 말았다. 이치란 라멘은 국물이 생명인데…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스타벅스로 가서 커피를 시켰는데 아르바이트생이 너무 잘생기고 친절했던 탓이었을까? 아니면 내가 긴장해서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까? 배 아픈 와중에도 그란데 사이즈를 시켰다. 어쩔 수 없지만 그란데 사이즈를 시켰으니 느긋하게 앉아서 쉬자! 하는 생각으로 정말 가만히 앉아서 사람 구경을 했다. 날씨도 풍경도 좋았고 혼자 일본에 있는 설레는 그 느낌이 매우 좋았기에 모든 나의 행동이 용서가 되었다(자신에게 매우 관대한 타입). 커피를 다 마신 뒤 고쿠라성과 정원을 둘러봤는데, 정원 안에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건축물이 있었다. 마침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구멍 난 나의 양말을 아무도 못 보겠지 하는 생각으로 여유롭게 돌아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직원분이 통로에 나와서 곤니찌와 하고 인사를 건네셨다. 지금도 간절히 바라고 있다 나의 발을 안 보셨기를. 그러고 난 후 일본인 관광객 두 명이 이 곳 정말 멋있다! 하면서 들어왔고 난 빠르게 신발을 갈아신으러 나갔지만 마침 한국인 가족들이 신발을 벗으려 하고 있었다. 분명 내 발을 보셨겠지. 정말 행복한 추억이 아닐 수 없다.
그렇게 고쿠라성을 나와서 리버워크라는 쇼핑몰까지 돌아보니 발이 너무 아파서 그만 숙소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래서 시계를 보니 체크인 시간인 3시까지는 아직 한참 남은 시간이어서 혼자 셀카도 찍어보고 풍경도 찍어보고 호텔이 있는 고쿠라 역으로 돌아와서 역에 전시되어있는 은하철도 999 주인공들이랑 사진도 찍어보았지만 (기타큐슈가 은하철도 999 작가의 출생지라 주인공들 전시품이 많다.) 시간이 가질 않아서 한국에 있는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공항에서부터의 얘기를 듣고 나를 한껏 비웃었다. 나도 내가 웃겼다 양말의 구멍 난 걸 알았는데 왜 신었을까. 오늘 일기는 아무리 써도 기승전 구멍이 될 것 같기에, 그리고 이 이후에는 숙소 체크인을 하고 저녁을 먹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정말 매우 일찍 들어와서 잔 얘기기에 이만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