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태어난 일
생일날 아침. 방문 너머로 들리는 달그락 소리. 엄마가 부엌에서 내 생일상을 준비하시는 게 분명하다. 다시 이불속으로 파고든다. 오늘도 분명 어제 같을 것이다. 어제 저녁. 부모님의 사소한 싸움에 난 또다시 무너졌다. 난 왜. 내가 잘못하지 않은 일에 가슴을 졸여야 하는가. 행복해지고 싶은 날 왜 불행해야 하는가. 하필이면, 평소보다 조금 더 행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날. 내가 바라는 생일 전야이자 크리스마스이브는 저녁을 먹고, 부모님과 같이 평화방송에서 생중계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미사를 보고, 미스트롯을 보면서 크리스마스를 맞이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모든 건 산산조각 나버렸던 것이다.
크리스마스 아침. 밖이 조용하다. 꿈인가. 아, 사라지고 싶은 날이 왔구나. 이불 밖 세상으로 나가지 말아야지. 생각하고 싶은 것만 생각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눈을 뜬다. 영원한 내편, 스마트폰을 켜고 나중에 읽으려고 스크랩해둔 브런치 글 [92세 아버지의 행복 심리학]을 읽는다. 마음이 가는 챕터를 읽다 마음에 박힌 문장을 읽고 읽고 또 읽는다.
4화 '포기도 잘해야 좋다' 중
포기함으로 얻어질 수 있는 것에 대한
믿음과 낙관주의가 필요
그때는 손해를 보았는데,
나중에 가서는 손해 본 것으로 인해
얻는 것이 생기고, 종종 덤이 얹어진다
포기란 항상 당신이 약하다는 뜻이 아니라,
때로 내려놓고 보내 버릴 수 있을 만큼
강하다는 뜻
19화 '아픔에는 둔감, 즐거움에는 민감' 중
무엇이든 복으로 생각하기
유쾌한 감정에 매우 민감하기
긍정적 둔화감 기술 익히기
당연하고 소소한 것들에
백배의 감탄과 의미 부여하기
누군가 나에게 무심히 한 말이나 행동에
크게 의미 부여하지 않고 쿨하게 지나치기
가족의 누군가가 시큰둥하고 짜증내면
맞서 예민하게 반응하기보다
힘들어서 그런가 보구나
느긋하고 너그럽게 대하기
가슴에 파도처럼 변화가 일렁인다. 부모님의 싸움에는 힘든 마음이 있었음을 왜 헤아리지 못했나. 원망할게 아니라 느긋하고 너그럽게 대해주지 못했구나. 한치 앞도 모를 인생.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생. 포기할 건 포기하고, 아픔에는 둔감하고, 즐거움에는 민감하게 살아야 함을. 잊었구나. 또. 이불킥을 날리고 방문을 박차고 나갔다. 보인다. 쑥대머리로 분주하게 미역국을 끓이시는 엄마의 뒷모습. 식탁 위에 올려진 케이크. 케이크와 초를 사느라 추운 거리를 배회하셨을 아빠의 모습. 프라이팬 위에서 구워지는 애호박 전과 함께 뜨겁게 익어가는 엄마의 빨간 손. 행복해하는 날 보며 행복해하는 부모님의 미소 띤 얼굴. 들린다. 손뼉 장단에 맞춰 생일 축하곡을 불러주는 부모님의 목소리. 내가 나에게 부르는 노랫소리. 허겁지겁 생일상을 해치우는 내게 무심히 건네는 엄마의 말. 잘 자라줘서 고마워. 그리고 나의 말.
엄마, 세상에 낳아줘서 고마워
내딸, 세상에 나와줘서 고마워
만나지는 못하고 멀리서 축하를 건네는 친구들의 진심이, 유독 가까이에서 가슴에 콕 박힌다. 힘들수록 더욱 명확해지는 사랑의 마음이 이런 걸까.
생일날 깨닫는 일생에 잘한 일, 내가 태어난 일.
평생 기억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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