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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록 Jan 24. 2020

'영웅심리'에 취한 사람들

취재 스케줄 출근 당일에 확인할 수 있다.


다만 지방을 가거나 아침 일찍 취재를 시작할 경우에는 하루 일찍 배정되곤 했는데,  소위 '꿀' 일정인 경우가 많았다.


이동시간이 길어 승합차에서 편하게 쉴 수 있었고, 저녁 6시쯤에는 회사에 복귀하니 많은 오디오맨들이 선호했다. 도로가 막 늦어질 때도 있만 일정 편해서 대수롭지 않았다.


나는 퇴근을 10분 남겨둔 오후 5시 50분이면 항상 설레는 마음으로 일정표를 클릭했다.


그날도 습관처럼 모니터 속을 들여다보며 Y선배의 일정을 확인했다.


'북한산 암벽등반 취재. 아침 8시 출발.'
북한산 전경.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영상기자 B선배는 "장비를 짊어지고 산을 올라가는 건 최악"이라며  매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산을 한 번이라도 다녀온 오디오맨들은 제일 싫은 일정 중 하나로  꼽았다.  무거운 장비를 갖고 산 이곳저곳을 돌아다녀야 하는 게 큰 이유였다.


반면 Y선배는 종종"산도 한번 다녀와야 되는데" 라며 산행 취재의 바람을 말했다.


나는  산 한번 다녀오면 그날 일정은  모두 끝난다 사실이 좋았다. 갑작스레 '총' 맞고 나갈 일도 없으니 마음 편하게 다녀올 수 있 만족스러운 스케줄이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회사에 도착해 장비를 챙겼다.

수건과 물도 가방에 넣었다. 평소보다 묵직한 무게감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었지만 없는 것보단 나았다.


준비를 끝내고 북한산으로 향하는 차량 안에서 취재 내용에 대해 들었다.


매년 북한산에서 '릿지'등반을 하는 산악인들이 증가한다. 문제는 영웅심리에 취해 안전장비 착용 없이 맨몸으로 암벽을 오르고, 이로 인해 안전사고가 자주 발생한다는 것.


그 현장을 포착해야 했다.


북한산에 도착한 뒤 산악구조대원의 안내를 받으며 산을 올랐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그늘진 산길은 바람이 솔솔 불었고 날도 생각보다 덥지 않다.


산악구조대 사무실이 있는 중간지점에 도착해 잠시 쉬었다. 그곳에서 영상 취재가 용이한 장소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10여분 정도 쉬고 출발하려고 할 때, 구조대원이 안전장비를 건네산세가 험해지니 용하라고 했다.


장비는 안전모와 로프를 걸 수 있는 고리가 달린 벨트였다. 트라이포드에 카메라 가방, 안전장비까지 착용하니 몸이 한층 무거워졌다.

산행 취재 가는 길.

취재를 위한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됐다.


초반과는 다르게 가파지형 계속 이어졌다.

트라이포드를 들고 경사가 심한 산을 올라간다는 것은 정말 힘들었다. 또한 짊어진 카메라 가방과 안전장비의 무게 체력은 금세 어졌다.


험한 산세에 선배들도 힘든 건 마찬가지였다. 쩡한 건 산악구조대원뿐이었다.


힘든와중에도 Y선배이 될 만한 현장을 찾아보고 틈틈이 인서트를 찍었다. 트라이포드를 들고 있는 내가 뒤처져 있어 짜증 날 법도 한데 천천히 올라오라며 배려했다.


취재기자 선배는  힘들어 죽을 거 같은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며, 나에게 조심히 올라오라고 계속 당부했다.


두 선배의 걱정 어린 말 고마웠다.


맨몸 암벽등반가들이 출몰하는 장소에 도착했다.

발 디딜 곳 없어 보이는 경사진 절벽이 눈 앞에 펼쳐졌다.

"어떻게 맨손으로 올라간다는 거지?"라는 의문은 금세 사라졌다.


 다수의 등산객들은 동네 마실이나 갈 듯한 복장으로 절벽을 오르고 내려왔다. 떨어지면 최소 불구가 되는 높이 암벽 사이 점프하며 이동하는 사람도 여럿 보였다.

구조대원이 로프를 내려주며 잡고 올라오라고 말했지만 끝까지 잡지 않 사람도 있었다.

 

놀라운 건 이들 대부분이 중년을 넘긴 나이였고, 여성들도 많았다는 점이다.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행동을 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산악구조대원 카메라를 보고는 재빠르게 자리를 뜨는 바람에 물어볼 순 없었다.


맨몸으로 암벽을 오르내리는 등산객들의 모습을 담고 Y선배는 취재기자의 스탠딩을 잡았다.  스탠딩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Y선배가 미끄러졌다. 선배는 안전장비 덕에 찰과상을 입는 정도로 그쳤다.


나는 찰과상 입은 선배를 보며 북한산 암벽 위에서 생 고생하며 취재하는 지금이 왜 중요한 지 새삼 깨달았다.


오후 3시쯤 일정이 마무리됐다.

하산하면서 등산의 후유증이 빠르게 퍼져가는 것을 느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어깨에 짊어진 짐은 몸을 한층 무겁게 만들었다.


하산 뒤, 보도차량에 장비를 넣으며 바라본 북한산은 아침에 봤을 때 보다 더 높아 보였다.


갑자기 '등산 일정은 최악' 이라던 B선배가 떠오르며, 이날 처음 경험한 산행 취재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했다.


하지만 북한산 이후 나는 두 번의 산행 취재를 더 경험했다.


해마다 산 사고 소식을 전하는 뉴스가 보도된다.


2017년~2018년 발생한 등산사고는 총 1만 3864건.

사망 216명, 부상 9952명, 실종이 228명으로 특히 봄철과 단풍 드는 가을철에 사고가 증가한다.


등산을 즐기는 인구가 많아지는 것도 사고  증가 원인이겠지 근본적 문제는 안전불감증에 있다. 만반의 준비를 하더라도 사고가 발생하는 곳다.


암벽등반도 동네 뒷산 마냥 안전장비 없이 다니다 보니 사고가 발생다. 그로 인해 구조인력과 장비가 필요하게 쓰이고 2차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을 래하는 것이다.


취재 당시 북한산 관리소장은 "안전장비를 갖추는 게 필수인데도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 장비를 착용하지 않 사고가 자주 발생한다"고 밝혔다.


타인의 시선이 중요하다면 값 비싼 등산용품뿐만 아니라 등산 TPO에 맞는 안전장비도 구매해서 다니는 게 옳다.


웅심리에 취해 내디딘 준비 없는 발걸음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강을 건너게 한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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