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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피형아 Mar 09. 2021

#5. 클릭비와 이가자 미용실

5화 클릭비와 이가자 미용실



열일곱 소년은 어떻게 권력을 쥐게 되었는가? (원제)



전 이야기들을 먼저 보시면 새천년 감성에 더욱 흠뻑 젖을 수 있읍니다.



https://brunch.co.kr/@forsea5999/1

1화 <1997년 11월 28일>


https://brunch.co.kr/@forsea5999/2

2화 <요정 베이커리>


https://brunch.co.kr/@forsea5999/3

3화 <충격의 소나타 XG>


https://brunch.co.kr/@forsea5999/4

4화 <나의 또 다른 소울메이트 틴스타>





5화.


출처 : 네이버

언젠가 SBS 인기가요 때였다. 생방송 무대가 전부 끝나고 SBS 공개홀 주차장 앞에서 우리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과 함께 누나들을 기다렸다. 정말 오지게도 따라다녔다. 광신도 저리 가라 할 정도였으니까. 2001년의 겨울은 참 추웠다. 그때도 지구 온난화가 심각하다고 했지만 요즘처럼 겨울이 겨울 같지 않지는 않았다. 코를 훌쩍 거리며 "은빛 유진" (이제는 그때의 닉네임으로 친구들을 부르려 한다), "도발 바다", "영원불멸", "빠샤 유진", "팬더 유진", "포에버 유진", "고도리 유진", "적향루진" 누나, 그리고 "새벽하늘" 누나 등등과 함께 주차장 앞에 서있었다. 이 친구들 말고도 더 많은데 닉네임이 기억나지 않아 개인적으로 지금 너무 아쉽다. 그리고 얼마나 기다렸을까? 누나들이 탄 하얀색 벤이 드디어 나왔다. 벤 번호가 6946이었나? 6954였나? 기억이 가물가물한데 어쨌든 공방을 뛰어봤다면 다들 알 것이다. 그때는 지금과 다르게 카니발을 타고 다니지 않았고 잘 나가는 가수들은 거의 다 대형 벤을 타고 다녔다. 하얀색 벤이 나온다고 해서 누나들의 벤이 아닌 것. 그 가수의 그 팬이라면 색깔로 보는 게 아니라 번호판을 먼저 본다.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교회를 다녔다. 친할머니 때문에 다니긴 했지만 어쨌든 교회를 간 어느 날, 나는 당연히 청소년부였는데 그때 젊은 집사님이었나? 교회라고 해서 바로 설교를 하지는 않고 워밍업(?)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먼저 해주시는데 그때 그 젊은 집사님이 (정확히 어떤 분이었는지 몰라서 그냥 집사님이라고 하겠다) 마이크를 들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god 얘기가 나왔었다. 그때는 H.O.T. 가 해체를 했었고 god가 육아일기로 큰 인기를 누리고 있었을 때였다.


출처 : 네이버


"여러분 벤 알아요? 연예인들이 타고 다니는 큰 차 있죠? 선생님 친구가 어느 날 벤을 한 번 몰게 되었는데 god 벤하고 똑같은 거였어요. 알죠? 지금 god 인기 엄청 많잖아요. 친구가 그 벤을 몰고 잠시 어디에 주차를 하게 되었는데 god 팬들이 막 몰려와서 god 벤 아니냐고"


대충 이런 내용의 말씀이었고 청소년부의 많은 여자 아이들이 박수를 치며 웃어댔다. 그런데 그 많은 아이들 중 나만 혼자 웃지 않았다. 분명 내 얼굴을 봤을 것이다. 왜 웃지 않았냐면 그건 조미료가 들어가도 엄청나게 들어간 이야기였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거짓말이었거나. 재밌게 해주기 위해서 지어낸 이야기일 수도. 그분의 말씀에 신빙성이 전혀 없었던 건 벤에 있었다. god 벤하고 똑같은 벤에, 똑같은 색깔이어서 그 벤이 god 벤인 줄 알고 팬들이 몰려왔다고? 노노노. 거짓말이다. 왜냐하면 번호판의 번호가 전혀 달랐을 거니까. 나처럼 덕질을 하는 팬이라면 색깔로 단정 짓지 않는다. 절대로. 무조건 번호판을 먼저 본다. 그래서 나는 그 집사님이 재미있게 말씀하실 때 혼자서만 웃지 않았다.


"거짓말하고 있네"


만약 거기서 내가 손을 들어 그 집사님에게 이런 말씀을 드렸다면 분위기는 엄청 어두워졌겠지? 뭐 그런 일도 있었다. 다시 등촌동 공개홀 주차장 이야기로 돌아와서, 누나들이 탄 6946 (기억나지 않으니 이 번호로 해야겠다) 벤이 움직였고 우리는 좋아서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누나들이 탄 벤은 도로로 나가 잽싸게 달리기 시작했다. 그때 내 옆에 누가 있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은빛 유진'이었는지 '도발 바다'였는지 나와 함께 누나들의 벤을 따라 뛰기 시작했다. 정확히 주차장 입구부터 현재 가양역 방면으로 약 50미터쯤 뛰었는데 둘이서 한 번도 쉬지 않고 뛰었다.

출처 : 네이버

처음에는 5,6명의 팬들과 함께 뛰었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우리 둘만 남는 데 성공했다. 50미터쯤 뛰다 보니 누나들의 벤이 신호에 걸렸고 다시 한번 플랜카드를 흔들었다. 그때 앞좌석에 앉아 있던 누나(?)가 창문을 반쯤 열어 손을 흔들어줬는데 그 누나가 지금도 누군지 당최 모르겠다. (어쨌든 인사받기에 성공) 그런데 우리 옆에 공식 팬클럽 <친구>의 서울 회장이던 상철이 형도 같이 있었다. 쉽게 말하면 서울 회장이던 상철이 형과 셋이서 뛴 건데 사실 상철이 형이 뛰었던 건 벤을 쫓아가지 못하도록 제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웃프다) 대부분 팬들이 벤을 따라가면 위험하니까 임원들이 제지하는데 그때 그 상황에서는 상철이 형이 우리 둘과 마지막까지 같이 뛰었다. 이 기억은 거짓말 하나도 보태지 않고 정확하다. 그런데 상철이 형은 너무나도 천사였기 때문에 우리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다. 했어도 아주 나지막한 목소리로


"쫓아가면 위험해"


라고 했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 나는 정말 잘 뛰었다. 학교에서 매년 실시하던 체력장 중 50미터 달리기를 이렇게 뛰었더라면 나는 아마 1등이었을 것이다. 그때 내 발에? 혹은 내 신발에? 모터가 달린 것처럼 엄청난 속도로 누나들의 벤을 쫓아가는 데 성공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으니까. 이렇듯 덕질은 온몸에 아드레날린을 솟아오르게 하고 초사이언 베지터처럼 엄청난 파워를 갖게 해 준다. 그 순간만큼은. 그리고 희열을 느낀다. 뭔가 고진감래 같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덕질은 고진감래 같은 것이다. 처음 시작은 쓰디쓰기만 한데 마지막은 달콤한 것처럼. 그래서 나의 덕질은 가면 갈수록 구수해졌다.


라디오 공개방송, 녹음, 숙소에 죽치기, 밤새기, 뮤뱅(뮤직뱅크) 뛰기, 음캠(음악캠프) 뛰기, 인가(인기가요) 뛰기, 엠넷 쇼킹 엠 뛰기, 쇼탱 (KM) 뛰기 등등 그야말로 그때 나는, 그리고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홍길동도 울고 갈 정도로 안 가는 곳이 없었다. 그렇게 4월쯤 되었을까? 아직은 꽃샘추위 때문에 날씨가 쌀쌀했지만 내 기억으로는 토요일로 기억을 하는데 숙소에 있다가 누나들이 미용실로 간 것을 확인하고서는 우리도 같이 움직였다. 그날 날씨는 정말 좋았다. 해가 쨍쨍 뜬 토요일 오후였고 하늘도 솜사탕처럼 너무 예뻤으니까. 당시 누나들이 다니던 미용실은 SM 옆에 있던 이가자 미용실. 앞에서 누나들을 기다리던 게 우리 <요정 베이커리>하고 공식 팬클럽 임원 몇 명이 전부였다.

출처 : 네이버

그리고 클릭비 팬들이 열댓 명 있었고. (왜냐하면 클릭비도 그날 미용실을 왔었다) 그 자리에는 대구에서 올라온 혜진 누나도 있었다. 노란색 숏컷 머리를 한 혜진 누나는 매주 토요일마다 서울에 올라왔는데 꼭 일부러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 누나는 항상 우리를 벼루고 있었으니까. 임원도 아닌데 왜 자꾸 우리한테 뭐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며 매번 그 누나를 욕했었다. 어쨌든 혜진 누나는 공식 임원은 아니었지만 임원들과 꽤 친했고 임원만큼의 권력을 가진 아주 무서운 누나였다. 그날 이가자 미용실 앞엔 시샵인 나 "바다 베이커리"를 포함한 "영원불멸", "팬더유진", "빠샤 유진", "은빛 유진" 그리고 "고도리 유진" 등이 있던 걸로 기억하는데 우리 <요정 베이커리> 친구들 중 "고도리 유진"은 가장 나이가 어린 동생이었다.


당시 13살로 초등학교 6학년이었던 "고도리 유진"은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물론이고, S.E.S. 팬클럽 사이에서도 가장 나이가 어렸었다. 나와 동갑내기던 "은빛 유진"과 13살의 "고도리 유진"만 꽤 부자였다. 청소년이었던 우리 모두는 덕질하느라 돈이 항상 부족했지만 "은빛 유진"과 "고도리 유진"의 지갑엔 항상 만 원짜리가 수북했다. 덕분에 우리 <요정 베이커리>는 항상 풍족했다. "은빛 유진"과 "고도리 유진"이 이것저것 잘 사줄 정도였고 대형 현수막을 맞추려고 회비를 모금할 때도 그 두 사람은 가장 많이 냈으니까. 우리 "고도리 유진"의 부모님께서는 당시 강남에서 갈빗집을 하셨었다. 한 번도 가보지는 못했지만. 13살짜리의 옷과 신발은 항상 명품이었다. 100만 원이 넘는 버버리 코트가 기본이었으니까. 반면 "은빛 유진"의 모든 옷과 가방은 폴로로 무장했었고 가끔은 NII. 2001년 당시 NII 옷값은 굉장히 비싼 브랜드였다.


어쨌든 이가자 미용실 앞에서 누나들을 기다리며 우리들끼리 재미있게 놀고 있었는데 갑자기 "고도리 유진"이 머리를 자르러 갔다 오겠다며 누나들이 있는 이가자 미용실로 올라가버린 것. 그때 "고도리 유진"의 머리는 굉장히 짧았다.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상황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그렇게 "고도리 유진"의 뒷모습을 묵묵히 바라만 봤다. 강남에 살던 13살 "고도리 유진"은 말 그대로 돈지랄을 하러 간 것이었다. 올라가서 머리를 자르면 누나들을 볼 수도 있으니까. 요즘 말로 플렉스 해버린 것. 2001년 청담동 이가자 미용실의 남자 기본 커트 비용이 2만 원으로 기억한다. 그때 평균적이던 남자 커트 비용이 5천 원 정도 했으니까 얼마나 비싼 가격이었는지 다들 알 것이다. 때마침 그때는 임원들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었다. 그렇게 30~40분쯤 지났을까? 이미 임원들도 와있었고 무서운 혜진 누나도 서있었는데 그때 막 "고도리 유진"이 미용실에서 나왔다. 그때 혜진 누나한테 얼마나 혼났는지 모른다. 미쳤다고. 제정신이냐고. 왜 들어갔냐고. 시샵이었던 나보고 소리를 그렇게 치는데 사실 억울했다.


"시샵이 왜 그런 것도 안 막았어! 네가 데리고 다니는 애잖아!"


아니 근데 지가 지 돈으로 머리를 자르겠다는데 내가, 우리가 어떻게 막나? 그래서 "고도리 유진"은 누나들의 싸인을 받아 왔냐고? 아니다. 누나들 싸인은 커녕 누나들 얼굴도 못 봤다고 했고 클릭비 싸인을 받아왔었다. 일곱 명 전부 받아왔는지는 모르겠고 그래도 최소 3,4장은 받아왔던 걸로 기억한다. 그 와중에 우리는 "고도리 유진"에게


"왜 누나들 싸인 말고 클릭비 싸인을 받아온 거야?"


라고 했는데 옆에 있던 클릭비 팬들이 우르르 몰려와 제발 그 싸인 좀 주면 안 되냐고 부탁을 했었다. 그래서 그때 "고도리 유진"은 클릭비 팬들에게 그 싸인을 흔쾌히 넘겼었다. 그리고 얼마 뒤, 클릭비가 먼저 나왔는데 공방을 다니면서 참 많은 가수들과 연예인을 눈앞에서 봤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본 적은 또 처음이었다. 열댓 명 정도 되던 클릭비 팬들이 소리를 질러댔고 일곱 명의 클릭비 멤버들은 대충 인사를 해주며 벤에 올라탔다.

중간  맨 왼쪽 멤버 (노민혁)

그때 내 기억으로는 유호석을 미처 보지 못했고 키가 제일 크던 노민혁을 바로 앞에서 보게 되었는데 노민혁이 글쎄 생각보다 실물이 대박이었다. 뭐 메이크업의 힘도 있겠지만 노민혁의 실물이 꽤나 반전(?)이었던 건 확실하다. 그렇게 클릭비를 보내고 누나들을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지금 기억으로는 그때 누나들이 미용실을 빠져나온 건 보지 못했던 것 같다. 내 기억으로는 팬들이 앞에서 기다리는 걸 알고서 뒷문으로 나갔을 것이다. 그날 나에겐, 우리 <요정 베이커리>에게 있어서도 뭔가 재밌는 날이었던 건 틀림없다. "고도리 유진"이 플렉스 해버린 날이었으니까. 그때는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아주 핫했다. 누나들의 숙소도 청담동이었고 SM도 갤러리아 백화점 옆에 있었으니 숙소 앞에서 노는 게 질리면 곧장 로데오 거리로 옮기기도 했으니까. 정말 그때의 압구정 로데오 거리는 신세계 그 자체였다.

출처 : 네이버 (그 당시 압구정 맥도날드 1호점)

발 디딜 틈 없이 패션 피플들로 넘쳐 났고 갤러리아 맞은편에 있던 맥도날드는 우리의 또 다른 놀이터였다. 그때 아마도 로데오 거리로 자리를 옮기면서 자연스럽게 맥도날드를 찾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우리가 늘 지갑에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뒤적거리며 제일 저렴한 햄버거를 주문하려고 할 때면 "은빛 유진"과 "고도리 유진"은 그런 걱정 따위 하지 말라며 먹고 싶은 걸 시키라고 했다. 우리 <요정 베이커리>에서 없어서는 안 될 친구들. 물주들. <요베> (줄여서 요베)가 찾은 보석 같은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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