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과 파타야, 태국
신혼여행지 후보이기도 했던 태국, 긴 연휴를 이용해 태국으로 떠나기로 했다. 방콕, 치앙마이, 푸껫…. 태국의 많은 도시 중에 우리가 선택한 도시는 방콕이다. 방콕을 한 번도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다는 말을 어디서 들었던 터라 궁금했다.
'여유만 된다면 다녀온 모든 여행지를 한 번씩 더 가보고 싶은데, 왜 방콕에만 이런 말이 붙은 걸까.'
수완나품 공항에 도착하자 동남아 특유의 습한 공기가 몸을 휘감았다. 한국에서 출발할 때는 쌀쌀한 날씨였기에 껴입었던 옷을 가벼운 옷을 갈아입었다. 배낭여행자들의 성지이기도 한 카오산로드가 궁금했던 우리는 공항에서 바로 카오산로드로 향하는 버스에 탑승했다. 방콕은 아직 우리나라의 1970년대 모습이 남아있어 버스 안내원이 있다. 버스 안내원에게 목적지를 말한 후 비용을 지불하면 종이로 된 버스표를 찢어서 건네준다. 공항에서 카오산로드까지 버스비용은 약 3천 원 남짓. 동남아가 좋은 이유는 물가가 저렴하다는 것이다.
뜨거운 햇빛을 맞으며 향한 곳은 끈적 국숫집. 드라마 킹더랜드에 나온 후로 대기가 생겼지만 내가 방문할 당시엔 대기가 필요 없었던 장소다. 전분 가루를 이용한 것인지 말 그대로 국수가 끈적하고, 태국식 고춧가루를 조금 첨가하면 얼큰하게 땀을 빼며 먹을 수 있는 그야말로 이열치열이 가능한 음식이다. 끈적 국수를 먹은 뒤에 향한 곳은 갈비 국숫집. 이곳은 아침 일찍 방문하지 않으면 재료 소진으로 먹을 수 없는 곳이다. 갈비탕에 들어갈 법한 두툼한 갈빗살이 몇 덩이 들어간 갈비 국수의 국물을 먹으니 속이 뜨끈해진다. 남편은 갈비 국수가 취향이라고 했지만, 나는 여기서만 맛볼 수 있는 끈적 국수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국수 두 그릇을 흡입하고 부른 배를 통통거리며 거리를 걸었다. 왕궁과 사원 구경은 필수다. 방콕 왕궁에 방문할 때는 무릎이 보이는 옷을 입으면 안 된다. 반바지만 잔뜩 챙겨 온 남편은 왕궁 앞 상점에서 코끼리 바지를 하나 구매했다. 코끼리 바지를 입으니, 누가 봐도 관광객의 옷차림이다. 오후가 되자 해는 더 뜨거워졌다. 땀을 뻘뻘 흘리며 손에 든 핸디용 선풍기에 의지해 왕궁을 구경했다. 선풍기에 더운 바람이 나오지만, 이마저도 감사한 바람이다. 두 시간 남짓 걸었을까. 땀을 뺀 덕분에 슬슬 허기질 무렵, 방콕의 가장 유명한 사원이기도 한 왓아룬으로 향했다. 식당에 앉아서 창밖을 바라보면 마치 물 위에 떠 있는 듯한 사원. 밤에 켜지는 불 덕분에 야경 명소로 으뜸이다.
태국에 왔으면 달콤한 과일을 또 먹어줘야 하지 않을까. 야시장에서 사 먹을 법도 하지만, 우리는 직접 고르고 싶어서 마트를 택했다. 마트의 과일 코너로 향하니 망고와 망고스틴이 야시장보다 저렴하다. 말랑거리는 망고를 한가득 담았는데도 한국의 절반도 안 되는 금액이다. 양손 무겁게 과일을 구매한 뒤 호텔로 돌아와 준비해 온 칼로 슥슥 잘라먹는다. 에어컨의 뽀송함과 망고의 달콤함이 어우러지는 호텔 방 안이 곧 낙원이다.
태국 전통 의상을 입고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스튜디오가 있다는 말에 아이콘 시암으로 향했다. 아이콘 시암은 수상시장 컨셉으로 꾸며진 대규모 복합 쇼핑몰이다. 아이콘시암에서 마련한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것이 굉장히 매력적이다. 쇼핑몰에 가려면 배를 타고 이동해야 한다니. 재밌는 공간이다.
아이콘시암 G층에 위치한 쑥시암에서 스튜디오를 찾았다. 전통의상을 고른 뒤 메이크업을 해주는데 태국식 메이크업이라 당황스럽다. 머리는 눈이 위로 치켜 떠질 만큼 세게 묶어버리고, 피부는 불타는 고구마를 만들어놨다. 눈 화장은 또 어찌나 부담스럽던지. 남편과 서로의 몰골(?)을 확인하고 한참이나 웃었다. 웃음과 맞바꾼 사진은 우리 집 결혼사진 옆에 자리 잡았다.
여행지에서의 기억이 떠오르는 사진이 집에 놓여있는 것은 꽤 재밌는 일이다.
방콕에서 파타야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다. 방콕 시내에서 1시간가량을 달리면 도착하는 파타야. 방콕보다 훨씬 저렴한 물가였기에 모든 이동은 그랩을 타고 이동했고, 망고를 원 없이 먹었다. 마트에서 아무렇게 집은 망고가 모두 달콤했던 파타야. 햇볕이 뜨거운 낮에는 호텔에서 수영하고, 한숨 자고 일어난 뒤 해가 지면 야시장을 구경할 겸 밖으로 나와 똠얌꿍과 팟타이, 망고를 번갈아 먹으며 제대로 된 호캉스를 보냈다.
우리 부부는 1년 사이 방콕을 총 세 번 방문했다. 몽골에서의 기억이 너무 좋았기에 몽골을 한 번 더 가려 했으나 임신하게 되어 몽골로 여행 가는 것은 불가능해졌다. 태교 여행도 익숙한 방콕으로 향했기에 이제는 여러 호텔을 전전하며 조식을 평가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걷는 것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날이 아무리 더워도 3km 이내의 거리는 걸어 다니며 주변을 둘러보는 느린 여행을 해왔다. 남편도 걷는 것은 좋아하지만 땀이 많아 더운 날씨에 걷는 것을 힘들어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함께 느린 여행을 해주는 남편 덕분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거리를 걸을 수 있어 여행이 한층 더 풍성해진다. 잠자리와 먹는 것을 가리지 않아 여행지에서도 쉽게 탈이 나지 않은 덕분에 우리는 먹고 싶은 것을 맘껏 먹으며 돼지런하게 여행했다. 이렇게나 여행 스타일이 잘 맞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다.
여행이란 누구와 함께하느냐에 따라서 같은 곳이라도 제각각 다르게 기억된다. 여행의 기억이 점차 희미해질지라도 함께 했던 사람은 선명하게 기억되는 여행. 마주 앉아 나누었던 대화들이 영원히 기억되는 여행. 그래서 언제나 마음속에 사진처럼 간직되는 여행.
그런 의미에서 남편은 내게 최고의 여행메이트다. 함께 했던 여행지를 모두 좋은 기억으로 간직할 수 있도록 곁에 있어 준 사람.
우리 다음 여행은 어디로 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