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우리 나중에 꼭 몽골로 별 보러 가자"
구 남친, 현 남편과 연애할 때 입버릇처럼 했던 말이었다. 내가 몽골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시점은 지금처럼 잘 알려진 여행지는 아니었다. 적어도 한국인들에게는 낯선 나라였을 당시 우연히 본 별 사진 한 장이 몽골 여행을 꿈꾸게 했다. 깨끗한 도시에서만 볼 수 있다는 별. 한국에서는 강원도 어드메 두메산골로 들어가야만 겨우 볼 수 있는 별을 몽골에서는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불빛 하나 없는 깜깜한 밤하늘에 수놓아진 별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어쩐지 모르게 마음이 일렁거렸다.
몽골 여행을 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봤지만, 당시에는 현지 투어가 보편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교통편을 알아보는 것은 물론, 동행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그러던 사이 예능 프로그램에 몇 번 몽골 여행이 소개된 후 현지 투어 사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기 시작했고, 동행 구하는 것도 수월했다. 1인 프라이빗 투어부터 6인 투어까지. 인원이 늘어날수록 투어 금액이 저렴해지므로 푸르공 탑승 최대 인원인 6명으로 맞추는 것이 좋다. 결혼 후 첫 여름휴가를 몽골에서 보내기로 한 우리는 4명의 인원이 꾸려져 있는 동행 모집 글을 보고 연락했다. 우리를 제외한 4명은 모두 커플이었다.
인천공항에서 몽골까지 비행시간은 3시간 30분. 새벽 비행기였기 때문에 퇴근 후 바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현지 투어는 공항 픽업으로 시작되는 일정이었기에 버리는 시간도 없었다. 우리를 제외한 20대의 귀여운 커플들과 인사를 하고, 우리의 일정을 책임져줄 가이드 처머와 드라이버 푸제를 만났다.
처머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마른 몸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의 캐리어를 트렁크에 싣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저 친구에게 우리의 일정을 맡겨도 될지 걱정됐지만, 여행 말미에 처머는 최고의 가이드가 돼 있었다. 푸제는 푸근한 인상으로 상상 속 몽골인의 모습이었다. 동글동글한 얼굴과 눈두덩이에 살이 있어 웃을 때 순박한 푸제, 다부진 체격과 현란한 핸들링으로 일정 내내 푸르공을 안전하게 또 다이나믹하게 운전해 줬다.
몽골의 겨울은 상상 이상의 추위가 펼쳐지는 곳이기에 몽골 여행의 성수기는 7~9월이다. 낮에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어 반팔로도 충분하지만,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아침, 저녁으로는 경량 패딩 혹은 후리스를 입어줘야 한다. 땅덩어리가 크기 때문에 이동 시간도 길다. 몽골 여행 코스는 크게 고비사막, 중앙 몽골, 홉스골 세 곳으로 나뉜다. 중앙 몽골은 몽골 겉핥기 느낌으로 짧게 시간을 낼 수밖에 없는 여행자들에게 적합하며, 고비사막과 홉스골 코스는 최소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다. 우리는 연차를 쪼개서 써야 하는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아쉽지만, 중앙 몽골 코스를 택했다.
우기호수 > 쳉헤르 온천 > 엘승타사르해 미니 사막 > 테를지 국립공원
총 네 곳을 여행하는 코스였고, 공항에서 8시간을 달려 도착한 우기호수는 게르와 함께 큰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내가 상상하던 몽골의 모습이었다. 도착하자마자 들판을 내달리며 행복한 기분을 맘껏 드러냈다. 배를 타고 낚시터에 가서 낚시하는 사람들 틈에 껴 낚시도 해보고, 호숫가에 앉아 발도 담그며 시간을 보냈다.
해가 저물자, 손전등 없이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둠이 찾아왔다. 게르 안은 한기가 돌았지만, 몽골식 화로에 나뭇가지를 넣고 불을 피우자 금세 훈훈해졌다. 나무가 다 타버리면 다시 추위가 찾아온다는 말에 얼른 잠자리에 들려고 하는 순간, 귀여운 커플들이 우리 방을 두드린다.
"언니랑 오빠 자요? 나와봐요! 밖에 별이 쏟아져요!!"
아 맞다. 몽골에 온 이유가 별을 보기 위함이었는데 첫날 밤 별도 보지 않은 채 잠자리에 들려 했다니.
게르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본 순간, 반짝이는 별들이 내 눈 속으로 쏟아진다. 내가 몽골에 온 이유. 남편과 연애할 때 숱하게 했던 말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손을 꼭 잡고 별을 보고 있노라니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다음날 맑고 파란 하늘 아래에서 처머가 해준 샌드위치로 아침 식사를 하며 바라보는 호수는 잔잔하고 여유롭다. 꿈꾼 것 같은 전날의 별들을 뒤로한 채 다음 장소를 위해 푸르공에 다시 몸을 실었다. 푸르공은 봉고차처럼 생겼지만, 바퀴가 매우 크고 차체가 높다. 비포장도로가 많은 몽골의 길을 달리기에는 제격인 차. 다음 장소인 쳉헤르 온천을 가는 길은 다이나믹했다. 물살을 가로질러야 할 때도 있었고, 바위틈 사이를 지나가야 할 때도 있었다. 보통의 타이어라면 이미 펑크가 났겠지만, 푸제가 운전하는 푸르공의 타이어는 거뜬하다. 물 위를 지나갈 때 푸르공의 흔들림은 우리에게 꽤 신선한 충격이었는데, 푸제는 우리의 충격을 즐기는 듯했다. 운전 자체를 즐기는 것 같은 푸제의 직업 만족도는 최상이다.
온천을 가다가 세차해야 한다며 시냇물이 흐르는 풀밭에 푸르공을 세웠다. 말과 염소가 잔뜩 풀을 뜯어 먹고 있던 곳에서 시냇물을 아무렇게나 떠서 냅다 푸르공에 뿌려버리는데 이마저도 그림이다. 뭉게구름이 잔뜩 펼쳐진 파란 하늘과 푸릇푸릇한 초원 한가운데 놓인 푸르공. 모든 것을 그림으로 만들어버리는 몽골 매직.
세차를 마친 뒤 한참을 달려 도착한 온천은 피로를 풀기 딱 좋았다. 여행 이틀 차에 무슨 피로가 있나 싶겠지만, 좁은 푸르공에 몸을 구겨 넣는 것이 30대 체력으로 여간 쉬운 것이 아니다. 손발이 팅팅 불어버릴 때까지 몸을 지진 뒤 처머가 구워주는 삼겹살을 먹으니, 이것이 행복이 아니면 무엇이 행복이란 말인가.
첫날밤의 쏟아지는 별을 봤기에 과연 오늘도 별이 쏟아질까 기대했다. 쳉헤르 온천에도 어김없이 어둠은 찾아왔다. 설레는 마음으로 남편과 함께 밖으로 향했고, 쏟아지는 별을 보며 혹시 꿈일까 싶어서 몇 번이고 볼을 꼬집었는지 모른다. 매일매일 쏟아지는 별이라니. 꿈이 아니라면 설명되지 않는 광경인데 눈으로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셋째 날 도착한 미니사막은 여행자 게르가 아닌 유목민 게르였다. 여행자 게르는 전기가 가능해 핸드폰 충전을 할 수 있지만, 유목민 게르는 전기가 없고 핸드폰도 터지지 않는다. 디지털 디톡스를 하기 좋은 곳이다. 자신의 게르 앞에서 딱총 놀이를 하는 어린이들이 있었다. 게르 주인의 아이들이었다. 영어는 통하지 않기 때문에 바디랭귀지를 이용해 아이들의 나이와 이름을 알아내고, 함께 춤을 추었다.
미니 사막에서는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거닐었다. 쌍봉낙타에 올라 봉을 손잡이 삼아 잡고 걸었다. 걸을 때마다 달랑거리는 봉이 참 따뜻해 놀랐다. 모래 썰매도 탈 수 있기에 아까 놀던 아이들과 함께 모래 썰매를 타기 위해 모래언덕을 올랐다. 리프트 따위는 없기 때문에 오르는 것은 꽤 힘들지만, 내려오는 스릴이 짜릿하기 때문에 기꺼이 다리에 힘을 주고 오른다. 몇 시간을 오르내렸을까. 한두 방울 빗줄기가 떨어지기 시작해 게르로 돌아왔다. 처머가 끓여준 김치찌개를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하는 사이 노을이 진다. 하늘이 핑크빛으로 변하더니 금세 붉게 물들고 어둠이 찾아온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하늘이 경이롭게까지 느껴진다.
여행지에서의 시간은 늘 빨리 가지만, 이동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까. 몽골에서 시간은 특히 더 빠르게 느껴졌다. 흘러가는 시간을 붙잡고 싶을 만큼 아쉬운 몽골에서의 시간. 마지막 일정 테를지 국립공원이다.
울란바토르에서 멀지 않아 공항에서도 2시간이면 오는 테를지는 알프스마을 같았다. 초원 위에 펼쳐진 바위들과 게르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게르에 짐을 풀고, 1시간가량 말을 탔다. 말타기는 코어 힘이 상당히 필요했고, 말안장 위에서 달그락거림을 느끼며 숲을 가로질렀다. 그 사이 어김없이 노을이 찾아왔고 붉게 타는 노을이 우리의 마지막을 밝혀주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지막 밤은 몽골의 전통 음식 허르헉(양고기)과 함께했다. 살짝 누린내가 느껴졌지만, 동행이 가져온 고추장과 컵라면 덕분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마지막 밤이 이렇게 지나간다.
다음날 울란바토르 시내를 둘러보고 공항으로 가는 일정이었는데, 전날까지의 일정이 꿈만 같았다. 울란바토르 시내는 서울 못지않게 교통체증이 상당했고, 높은 건물들과 아파트들로 여기가 서울인지 몽골인지 분간이 안 될 정도였다. 몽골에 도착하자마자 울란바토르에 먼저 왔다면 상상한 몽골의 모습이 아니라서 실망할 뻔했다.
공항으로 가는 길, 드라이버인 푸제와 뒷좌석에 앉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가 깊은 잠이 들었다. 피곤했지만,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아쉬워 쉽사리 잠이 오지 않았다. 높은 건물 하나 없이 탁 트인 풍경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일정을 곱씹었다. 휴양지라고 부르기엔 씻고 자고 싸는 것이 불편하고, 관광지라 하기엔 그 흔한 랜드마크조차 없는 몽골. 초원과 호수, 바위 등 자연의 연속이었던 여행지인데 여운이 엄청나다. 높은 건물과 화려한 네온사인을 좋아하는 줄 알았던 나인데, 짧은 일정이었지만 몽골을 여행하고 나니 자연을 좋아한다는 걸 깨달았다. 높은 건물은 계속 보면 질리기 마련인데, 자연은 매일 다른 얼굴을 보여주어 질리지 않았다.
공항으로 가는 내내 자연을 보고 있노라니 왠지 모르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한국에서 하던 걱정과 고민을 자연이 위로해 주는 것 같았다. 잘하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공항에 내려서 비행기 탑승 직전까지 눈물은 내내 멈추지 않았다. 처머와 푸제에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하고 싶었는데 눈물을 참지 못한 채 차에서 내려버린 바람에 웃어주지 못했다. 하늘은 왜 이리 푸르고 예쁜 건지. 공항에서 처음 만난 푸제와 처머를 공항에서 다시 헤어진다. 여행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한 공항이 괜히 야속하다. 공항에서도 한참을 서서 풍경을 바라봤다. 기다리다 보면 푸제가 운전하고 처머와 함께 우리를 데리러 올 것 같은데 푸르공이 한 대도 지나가지 않아 또 슬퍼졌다. 이곳을 다시 올 수 있을까. 여행하면서 이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떠나야만 하는 몽골에서는 왜 이렇게 눈물이 많이 날까.
한국에 도착하고 나니 마치 꿈꾼 것만 같은 닷새의 일정이었다.
게르에서 보내는 밤, 우기호수에서 하던 낚시, 몸을 구겨 넣던 푸르공, 몸을 지지던 온천, 달랑거리는 따뜻한 봉을 잡고 타던 낙타, 모래 언덕에서 타던 썰매, 초원을 가로지르던 말타기….우리에게는 난생처음 겪는 생소한 경험이 누군가에게는 매일매일 반복되는 심드렁한 일상일 뿐이었다. 여행이란 누군가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일이기도 했다.
비행기 안에서 남편에게 "이번 여행에서 어디가 제일 좋았어?"라고 물었다. 잠시 생각하던 남편은 "다 좋았는데 그중에서도 우기호수, 거기가 딱 내가 생각하던 몽골의 모습이었어."하고 답했다. 대 자연이 펼쳐졌던 우기호수, 나도 처음 마주했던 몽골의 모습이기도 한 우기호수가 가장 좋았다. 하늘을 올려다보며 쏟아질 듯한 별을 보던 그날의 밤도,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화장실이 가고 싶어 핸드폰 플래시와 손전등에 의지하며 조심스레 내딛던 걸음도, 화장실에서 볼일을 본 후 게르로 돌아오던 컴컴한 길에 나눈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다음 날 아침에 가이드가 만들어준 샌드위치도 모든 것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