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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loudie May 09. 2019

온전한 나를 다듬어 가는 일

<걷는 사람, 하정우>를 읽고

나는 하정우의 오랜 팬이다. 그의 생김새가 제일 먼저 좋고, 그의 목소리와 가끔 TV에 비치는 그의 유머러스한 성격은 그를 사람으로서 좋아지게 만들고 거기에 신들린 연기력과 예술가로서의 면모는 그가 참 매력 있는 사람이라고 느끼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그는 나와 생일이 같아 '이것은 운명인 건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스크린 이외에도 미술, 영화감독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해오던 그가 책을 냈다는 소식을 듣고는 찾아보다가 책 맨 앞부분의 소개글이 재미있어 선뜻 구입하게 되었다.



팬들은 좋은 건 크게 봐야 하는 거라며 나의 큰 머리를 꽤 반기는 것 같다. 나도 하대갈이란 특별한 별명이 맘에 든다. 나에겐 머리만큼이나 큼직한 신체부위가 있다. 바로 두 발이다. 내 발 사이즈는 300밀리미터다. 발 사이즈부터 타고났기 때문일까? 나는 걷는 것을 좋아하고 잘 걷는다.


"걷는 사람, 하정우"라는 책의 제목답게 초반 책의 주된 이야기는 주로 걷는 이야기였다. 걷기를 하나의 게임과 같이 인식하고 친구들과 경쟁하듯 매일 걸음 수를 채워간다는 이야기를 보며 나도 꿈틀꿈틀 걷고 싶어 졌다. 그날부터 휴대폰의 만보기 기능에 집착하며 걸음 수 채우기에 열을 올렸고, 사무실에서 화장실을 이동하는 순간에도 휴대폰을 놓지 않고 옆자리 동료와 경쟁하듯 걸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역에서 집까지의 거리는 보통 버스를 타지만 이제는 걷기 시작했다. 걸어서 20분 정도의 거리이다 보니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걷다 보니 벚꽃도 마주할 수 있고 시원한 밤바람도 느끼니 나쁘지 않았다.



말에는 힘이 있다. 이는 혼잣말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듣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것 같지만 결국 내 귀로 다시 들어온다. 세상에 아무도 듣지 않는 말은 없다. 말로 내뱉어져 공중에 퍼지는 순간 그 말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누군가를 짝사랑할 때도 마음으로 간직할 때보다 친구에게 털어놓고 나면 이상하게 그 마음이 커진다. 말에는 힘이 있다는 그의 말에 공감한다. 최근 어머니 건강 문제로 오래된 친구가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 어떤 말을 해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 같아 고민하던 중 옆자리 동료는 그 친구를 위해 기도 해주는 건 어떻겠느냐고 물었다. 그렇다. 때로는 직접적인 행동이 아닌 간절히 하는 기도도 위로가 된다. 그리고 때로는 내가 하는 기도가 힘이 생기고 누군가에게는 기적이 일어나기도 한다.



만약 확신한다면 그것은 착각이다. 나는 사람이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본다.


이 부분을 읽으며 묘한 쾌감이 들었다. 내 마음을 이리도 잘 표현해 주다니. 나는 혈액형으로 사람의 성격을 정의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람을 어떻게 단정 지을 수가 있는 거지. 오늘의 나는 지금 일어나는 일에 불같이 화를 냈어도 내일의 나는 별일 아니라는 듯 넘길 수 있는 건데. '세상에 절대라는 말은 절대 없어요'라는 말처럼 무언가에 대해 확신하듯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하나하나 쫓아가서 다 반기를 들고 싶어 진다.



내 갈길을 스스로 선택해서 걷는 것, 내 보폭을 알고 무리하지 않는 것, 내 숨으로 걷는 것,
걷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묘하게도 인생과 이토록 닮았다.


위의 구절들을 보면 알겠지만 <걷는 사람, 하정우>는 무조건적인 걷기 예찬 서적이 아니다. 그가 그동안 실제로 많은 거리들을 걸으며 차곡차곡 쌓아왔던 모습들을 하나하나 꺼내 보여주는 책이었다. 삶의 대한 생각, 본인이 좋아하는 것들에 대한 생각, 어려움이 왔을 때 걸으면서 또 하나씩 쌓아왔던 그의 내공이 하나하나 모여 온전한 나를 다듬어 가는 과정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열심히 걷는다는 것은 열심히 살아간다는 의미이기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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