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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Aug 21. 2023

남의 잔칫집에서 받은 답례품

승진 축하 했다 되려 감사한 일.


오늘 승진 발표가 예고되어 있었다.


물론 나는 육아휴직 중이지만, 비록 재야에 있더라도 이러한 중요한 건은 여러 모로 파악하고 있을 필요가 있다. 집에서도 직장에서도 꽤 미더운 동반자인 남편 사마씨가 쓸데없는 정보는 자체적으로 거르고 중요 사항만을 제공하는 덕분에 가능한 일이기도 하겠다.


오늘이지만 딱히 미리부터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십오 년 차의 짬으로 미루어 인사 발표는 늘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날 것을 알고 있다. 전보 인사도 그렇지만 특히나 인사위원회가 열린 날의 승진 발표는 더욱이다.

인사는 늘 누군가의, 더 잦게는 다수의 불만을 수반한다. (승진이든, 지겨운 자리로부터 박차고 나갈 수 있는 전보든) 뭐 내가 까딱하다가 대상이 될 수도 있는 상황, 그런 미미한 희망을 걸어봄직한 상황이 아닌 제삼자로서 발표를 접할 때조차도 '에이, 이건 아니지!'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결과를 볼 때가 심심치 않게 있으니 말이다. 발표 직후 인사담당자의 전화는 폭주한다. 본인의 지위든 친분이든 과시하기 좋아하는 분들은 내부 전화나 개인 휴대폰으로도 건다. 직접 찾아가기도 한다. 젊은 직원들은 말로 안 한다. 대신 사내 메신저에 창이 수십 개가 깜빡인다. 어떤 방식이든, 퇴근 무렵에 발표가 올라오는 이유다.



지금은 내부 행정망에 공지 문서를 올리지만 내가 입사하고도 꽤 오랫동안 인사담당자가 방송을 했었다. 인사결과지를 보고 읊는 거다. "몇 월 며칠자 인사이동 사항을 발표하겠습니다."라는 문구로 방송이 시작되면 전 층 직원이 하던 일을 멈추고, 가던 발길도 멈추고, 숨까지 참을 기세로 귀를 바짝 세운다. 민원실을 비롯해 청사에 방문한 민원인들까지도 그 예민한 공기에 압도되어 왠지 소음을 내기가 조심스러워지곤 하였다.



역사적으로 불공정 인사로 꼽히는 사건 중의 하나가 그 무렵에 벌어졌다. 당시 인사담당자가 바로 불공정 인사의 장본인이었는데 이에 불만을 가진 선배들이 단체로 몰려가 항의를 할 정도로 소란이 일었다. 임용장에 잉크도 안 마른 당시의 나에게 그녀는 까마득하고 하늘 같은 선배였는데, 가방까지 챙겨 들고 방송실로 들어간 후 인사발표 낭독을 마치고 그 길로 잽싸게 퇴근을 했다는 목격담이 소문으로 돌았을 때, 뭐랄까 고고하고 당당하던 그녀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는 반전 뒷모습을 상상하며 약간은 충격을 받았었다. 나는 그만 '튄다'는 단어를 떠올리고 말았다. 물론 시간이 흐르고 나 역시 그녀의 당시 경력에 다다르고 보니 위치나 자리에서의 애환에 적지 않은 부분 공감을 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어릴 때 느꼈던 '찜찜한 인사발표 후 튀는 인사담당자'의 잔상은 텁텁하게 오래도록 남았다.






여전한가 보다. 인사철의 풍경은.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직원들과, 승복하지 못할 인사를 내는 인사권자, 그리고 어쨌든 그 자리를 겪는 인사담당자의 고충 말이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다섯 시 가 넘어 아니 퇴근을 오분 남긴 시각에야 발표가 난 걸 보면.


누구누구..., 박민영

누구, 반은숙


나의 입사동기이자 절친 동료이자 업무 전후임자 등의 관계에 있는 민영언니가 명단에 있었다. 휴 드디어.

두 아이를 짧은 터울로 출산하는 바람에 동기들보다 승진에 늦은 것을 시작으로 언니는 언니대로 나는 나대로 지지리 고생하하면서도 '우리는' 용납할 수 없는 사유로 승진 후보 순위에서 밀리기를 몇 해였다. 십오륙 년을 함께한 이런 여자 둘에게 그 사연은 한도 끝도 없다. 각자의 부서에서 만날 야근하면서 "너 아직도 있냐. 언제 갈라구.""가야죠. 눈 아파서 더 못하겠네." 불 켜진 메신저에서 서로를 격려했고, 이리 힘들게 일해봤자 일하는 사람은 계속 소처럼 굴려지기나 하지 정작 승진에서는 영 연이 없었던 처지의 두 사람이니, 다른 데서 안 하는 험담도 우리끼리는 시원하게 하며 마음껏 화내고 웃어제꼈다. 육아와 일 양쪽에서 고군 분투하는 성실한 워킹맘인 한편, 스타일과 자기를 위한 시간도 놓지 않으려 애쓰는 여성들이었다. 무엇보다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고 좋아했다. 그리하여 버틸 수 있었으리라.


사마씨에게 전달받은 인사발표 결과를 보자마자 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는 오늘 때마침(!) 연가를 내고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중이었다. 먼저 휴가 잡은 다른 직원들 보내고 나서 오늘 하루 냈다며 웃는 걸 수화기 너머로 들으며 참 그녀답다고 생각했다. 또한 김미경의 <마흔 수업>에서 묘사한 사십 대 직장인 답다고도 생각했다. 본인을 제치고 후배들 승진하는 인사발표를 쓴 맛 삼키며 숱하게 지켜보았을 텐데 정작 본인이 그놈의, 아니 애증의 승진을, 그 떨리고 짜릿할(난 아직 안 해봐서) 발표를 못 보다니. 언니도 참 언니여.




축하한다는 나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야 우리가 얼마나 고생했냐."로 시작하는, 만날 똑같은데 조금씩은 변주되는 레퍼토리들이 서로의 전화기에서 사이도 좋게 번갈아가며 이어진다. 우리 둘 아닌 사람이 들으면 필히 진절머리를 낼 만한 이야기들을 두 사람은 지겹지도 않게 침 튀기며 줄줄이 쏟아낸다.

축하 전화가 어떻게 하소연으로 연결되는지 대관절 모르겠지만, 그러는 김에 지나온 십 년 하고도 반을 함께한 세월도 한 번 흝고, 현재로 돌아와서는 나의 휴직으로 인해 잠시 떨어져 있는 서로의 근황에 대해 나눈다. 차후 복직과 함께 리셋될 나의 불안한 처지에 대하여도 한탄인지 걱정인지를 나누었으며, 전화기가 뜨거워짐을 느끼며 못다 한 이야기는 조만간 얼굴 보고 마저 하자며 다음을 기약했다.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려는데 언니가 사뭇 진지하게 말을 꺼낸다.


"진짜 고마워. 네가 전화해 줘서. 그리고, 축하해 줘서 고맙고."

하. 이 언니 정말.

"뭐래. 당연하지 뭘 그래요."

"그런겨? 흐흐."


전화를 끊고 잠시 그대로 있었다. 전화해 줘서, 축하해 줘서 고맙다.

서로의 고생을 누구보다 잘 알며 온갖 궁상을 함께하는 사이였는데 자신이 먼저 승진한 것에 대한 미안함을 언니는 내색했다. 그런 마음의 소유자이기에, 조금의 저의도 섞이지 않은 순도 100퍼센트의 축하를 하는 동지에게 그에 상응하는 진정성 있는 보답을 주는 느낌이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진심이 아닌 축하를 건넬 때가 있다. 음. 많다. 내키는 말만 하게 안 되는 게, 그런 게 사회생활이 아니겠는가.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닌데 그리 된다. 그렇다고 아예 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마음에 1도 없는 말은 또 못 하는 성격. 그래, 같이 일한 정으로 (무척 축하할 것까지는 없어도) 다만 1이라도 마음이 있다면 축하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순전히 사회생활이겠다.) 심지어 미운 정이 무섭다. 과거를 미화하는 시간의 힘 덕분인지, 힘든 과거를 잊고 밝은 미래로 나아가려는 내 본능 덕분인지 헷갈리지만 무시 못할 미운 정으로도 축하할 여유를 1은 내게 된다.


'이런 축하'를 전할 때는 메시지가 제격이다. 내부 메신저나 쪽지를 이용하게 되면 쓸데없는 감정 표출 걱정 없이 적절히 예의를 갖춘 축하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 대면이나 전화로라면, 아직 완전히 사회화되지 않은 것 같은 나라는 인간의 어색한 속내가 표정이든 말투로든 드러날 것이 뻔하다. 아, 안 하느니만 못한 축하라니. 쌍방에게 안 될 일이다. 나의 원활하고 적당한 사회생활에 IT의 발전이 상당히 기여하고 있음을 떠올린다. 문명의 이기를 이용해서라도 1이라도 마음 가는 잔치라면 모른척하지 않고 앞으로도 계속 축하인사 한 마디 보탤 것 같다.



문명에 기댈 필요 없이, 기꺼이 꽃가루 뿌려주고픈 경우도 물론 있다.

업무로 인한 고통보다 사람에 의한 상처와 스트레스로 인해 힘든 사회생활일진대, 그나마 버틸 수 있게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저 믿어주는 상사, 느낌 아니까~ 사정 빤해 애틋한 동기들, 나이는 안 중요하더라, 오히려 힘이 되고 가르침을 주는 후배. 친분과 관계없이 저 사람 정말 일 잘해, 덩달아 성장하고 싶게 영감을 주는 동료들.


팀장님이 잘 돼서 기뻐요.

길동 씨가 될 줄 알았어.(내 너 그럴 줄 알았다의 다른 뉘앙스)

네가 잘 돼서 정말 좋다.

무척 진심인 경우, 신체 전부가 머리카락이나 배꼽마저도 같은 생각이어서 상대가 도저히 모를 수 없게 티가 나버린다. 눈빛, 표정이나 말투에 숭덩숭덩한 구멍이 없을 것이고 뿜는 기운이 다를 것이다.


지금 남다른 기운을 뿜는 내 전화를 받을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민영언니와의 전화를 끊고 바로 은숙 씨에게 걸었다. 팀에 같이 있었던 후배다.

역시 축하 인사를 먼저 건넨 후 물었다.

"출퇴근은 안 힘들어?" 작년에 결혼하면서 다소 먼 거리를 운전하여 출퇴근하게 된 그녀의 사정을 떠올린다.

"아뇨. 운전은 안 힘든데 주사님 말이 생각 많이 나요. 오히려 출퇴근 시간에 공부도 하고 생각도 한다고, 주사님이 그러셨거든요. 오롯이 내 시간으로 쓸 수 있어 귀하다고."


내가 그리 괜찮은 말을 했다고. 호홋.







어제 들었던 유 선생님(유튜브) 영상에서 크게 공감되고 기억에 남는 내용이 있었다.


'긍정적 확언'이 자존감을 높여주고 정체성 확립에 도움을 준다.

<내면소통>, 김주환


열심히 받아 적고 새긴 이것을 써먹어보고 싶었다.

주방 테이블에서 딸아이가 끙끙거리고 있다. 개학이 내일인데 스스로 과제로 정한 방학숙제를 덜 했다며 붙잡고 있는 것이다.

신경 안 쓰는 척하며 저녁 식사 준비를 하다가 배운 대로 해보았다.

"그래도, 봐봐. 네가 보충해야 할 거를 스스로 방학숙제로 정한 거잖아. 자기가 부족한 걸 아는 건 쉽지 않거든. 게다가 넌 그걸 끝까지 잘 해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야."

엄마의 말을 듣고 '그런가'하는 아리송해하는 얼굴이었지만 한껏 짜증 났던 주둥이 아니 입은 확실히 쑥 들어갔다.


배움의 실천은 잠자리에서 한 번 더 이어졌다.

"아까 식당에서 엄마가 맞은편에 앉은 동생들 다툼 말릴 때 말이야. 뭐 묻을까 봐 엄마 옷소매 잡아 줬지? 그땐 애들 말리느라 말 못 했지만 알고 있었어. 너는 무척 세심하고 배려심 있는 사람이다."

"응... 그거. 엄마가 모르는 줄 알았는데."

"엄마 다 알고 있었어. 고맙다고 말해야지 생각했었어."

(배운 대로라면 아이는 부족한 점을 알고 채우려 애쓰는 사람, 끝까지 해보는 사람, 배려하는 사람으로 정체성이 확립될 것이다.)


그 영상에서는 또한 자녀에게뿐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는 자기 확언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런데 그날 밤 다이어리를 펴고 펜을 들었을 때 나는 고민을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덮었다. 아이들에게는 뚝딱뚝딱 만들어 낸 긍정적 확언이건만 '자기에게' 할 만한 껀덕지는 얼른 떠오르지 않아서였다.



오늘은 한 번 써보련다. 긍정적 자기 확언.

나는 (내성적이며 별 걸 다 부끄러워하는 사람이지만) 남의 잔치를 진심으로 축하하는 사람이구나.

좋은 마음을 그대로 표현할 줄 아는 사람이구나. 

동료에게 무심코 괜찮은 말 하는, 괜찮은 생각 하는 사람이구나. 그 말로 나를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구나.



축하 전화 한 통씩 넣었을 뿐인데 오히려 그들로부터 보답의 말을 과분하게 돌려받았다. '긍적적 자기 확언'을 긍정적으로 시작하는 계기로 이어졌고 오늘 유 선생님 영상에 따르면 확언한 대로 그렇게 살게 될 것이라고 한다. 

살면서 받아본 어떤 것보다 값진 답례품이다.



사진출처 :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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