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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May 17. 2023

밤말은 이 길이 듣고.

봄밤. 봄의 밤공기. 봄밤의 공기.

밤에 운동하러 나온 것이 얼마만인지. 오래간만에 옛 친구를 만나러 가는 듯 편하고 설렌다.

 

작년 한 해 동안은 꽤 자주였다. 워낙 걷기를 좋아하거니와, 운동이라는 것을 할 기회가 밤뿐이었으니. 

출근하며 야근을 밥 먹듯 하던 6월까지는 아이들이 잠든 후에 귀가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어차피 이리된 거, 현관에서 신발만 갈아 신고 다시 나가 걸었다. 몸은 꺼질 듯한데 생각이 많은 때였다. 피곤해도 잠을 이루지 못하기 일쑤였으므로 이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진흙처럼 무겁게 흘러내리는 몸을 끌고 나가지 않을 수 없었다. 한참을 걷고 돌아와 씻고 기절하듯 누웠다. 


어둠에 기대 얼굴을 눈물범벅 엉망으로 만든 것도,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나 이어폰 속 음악에 묻히길 바라며 간간이 소리 내 운 것도, 거기 있던 밤길과 가로수, 가로등, 풀벌레들이 그때 나의 믿는 구석이 되어주어서였다.

     




여름부터 육아휴직에 들어간 후에도 여전히 그 길을 걸었다. 다만 같은 길인데 달랐다.

남편이 아이들 케어를 도맡아 끝내고 아이들과 함께 잠든 늦은 시간에 도둑고양이처럼 나오는 게 아니라, 가족 모두가 함께 저녁을 보내고 다 같이 잘 준비를 마친 후, 엄마 운동 다녀올게! 알리고 나온다. 처음에 아이들은 엄마 운동 가지 말라고도, 밤에 위험하니 지켜주러 따라온다고도 했다. 

‘엄마는 너희들과 오래오래 행복할 거야. 그러려면 엄마가 건강해야 하고, 건강하려면 운동을 열심히 해야 하거든. 엄마가 운동하는 건 우리 모두를 위해 엄마가 노력하는 거야.’

아직은 엄마가 우주인 착한 세 아이는 엄마의 노력에 끄덕여주었고, 흔쾌히 혹은 조금 마뜩잖게(아빠가 있지만 엄마 ‘대신’은 아닌 모양으로) 엄마를 보내주었다.     


선곡도 변했다. 

부러는 아니었다고 생각하고 싶지만(자신이 너무 처량하게 느껴지니까) 나도 모르게, 마음을 가라앉히거나 위로받을 만한 노래를 골랐을 것이다. 힘들 때는 신나는 노래가 신나지 못하다. 불편하다. 그저 굴속으로 파고 들어가고 싶을 뿐이다.     

 

휴직 후(이미 웃음이) 걸으며 들은 플레이리스트의 제목은 이러했다. 

‘이거 플레이하면 바로 고속도로 탑니다.’, ‘오렌지, 귤, 낑깡들이 좋아한 히트곡 메들리’, ‘잘못 클릭하면 듣다가 연차 쓰고 스키장 간다. 신중하게 클릭하세요’. 심상치 않은 제목에 사로잡혔다. 


강렬하게 느낌 오는 90년대 히트곡 메들리를 귀에 꽂고 노래만큼이나 장렬하게 걷는다. 신나서 죽겠다는 게, 엄청나게 크게 움직이는 팔의 각도로 드러날 것이었다. 엉덩이와 배에 힘을 빡 주고 무릎을 뒤로 미는 느낌으로 빠르게 걷는다. 전신 운동이라더니 그 말을 그제야 알겠다. 에너지가 넘친 나머지 때로는 절로 뛰게도 되었다. 정박으로 딱딱 떨어지는 그 당시 노래들은 특히 걷기나 달리기 운동에 제격이다. 쿵,쿵,쿵,쿵 4분의 4박자로 고르게 때리는 비트가 발이 땅에 닿는 순간과 착착 맞아떨어진다.  깔끔하고 속 시원한 희열이 있다.



90년대 히트곡은 그냥 내 10대의 삶 그 자체다. 열한 살 무렵부터 용돈을 카세트테이프나 씨디 사는 데 발랐다. 초등학생 때는 천 원짜리 길거리표 카세트테이프를 샀고, 교복차림이고부터는 용돈이 있든 없든 음반가게를 들락거렸다. 지금 말로 음악 덕질을 했다. 좋아하는 가수들이 있긴 했어도 라디오를 많이 들어 다양하게 많이 접했다. 이십여 년이 흐른 지금, 전주만 들어도 거미가 실을 뽑아내듯 가사가 머리에서 줄줄 나오는 걸 보면 그때가 총명하긴 했다(아 옛날이여).

노랫말을 안다는 것은, 곡을 한층 더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흥얼흥얼 노래를 속으로 혹은 입 밖으로 부르며 걷는다. 불과 얼마 전 힘듦을 삼키며 뱉으며 걸었던 바로 그 길을, 다르게 걷고 걸으며 감사함을 새기고 새겼다. 


     




그렇게 올해를 맞았다.

지나칠 수 없는 새해이니 또 다이어리에 뭐라 뭐라 결심을 적었고 새로운 운동에 발을 들였다. 하루를 옹골차게 쪼개 쓰기 위한 몇 가지의 루틴이 생겼으며, 운동은 하루의 앞부분에 배치되었다.  

음. 그리하여 오랜만에 밤 걷기를 나왔다는 말씀, 인데 서론이 참 길기도 하다(SNS도 에세이로 쓰는 사람 여기 있어요).


세 아이 잠자리에 들 준비를 끝내놓고 집을 나섰다. 과연. 산 정상에 올라야만 숨이 트이는 것은 아니다.     

장평천을 따라 한참 걷는데, 응? 파워워킹을 멈추게 하는 이 내음. 

뭘까.

길 따라 이팝나무가 고른 간격으로 심어져 보기 좋게 만개해 있다. 그러나 이팝나무 향은 분명 아닌데. 점점 더 진해지는 향이 온통 나를 감싸고 있는 듯하다. 돌아보다 아카시아꽃을 마주했다.


너로구나. 나를 마구 홀리는 이 향 말이야. 

‘내가 이렇게 향으로 널 불렀지!’ 하는 것 같아 더 들여다보고 싶었다. 

아카시아 잎은 친숙했지만, 꽃이 이렇게 생겼어. 이리 만개한 때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되게 하얗구나. 옹글종글한 흰색 꽃잎들이 영롱하게 빛나는데, 들여다볼수록 또 완전히 희기만 한 것이 아니라 미세하게 노란빛을 띠네? 우아한 향과 한결 어울리는 듯하네.


한참 바라보며 카메라에 담고 있는데 운동복 차림의 아저씨 한 분이 지나다 걸음을 멈춘다.

“며칠 날씨가 좋더니 아주 그냥 만개했네요.” 하고 말을 거신다.

그의 억양은 담백했지만 감탄과 들뜬 기색은 그대로 전해졌다. 부담스럽지 않은 아저씨의 말이 어쩐지 고마워 미소가 지어졌다.

“네. 세상에, 향이 너무 좋아요.”  


발걸음을 떼 부지런한 걸음으로 가던 길을 마저 걸었다. 돌아오다 다시 멈추어 서서, 언제 질지 모르고 언제 만날지 모르니 아까운 심정으로 또 잠시 공간과 시간을 느낀다. 아까는 화려한 꽃잎만 눈에 들어왔는데, 이번에는 밤하늘에 어울리는 청초한 초록 잎도 보인다.

     

하필 이어폰으로 흐르는 음악까지 하늘이 돕고 난리다. 

며칠 전, 00 카드가 주최하는 부르노마스 내한 공연 티켓팅에 실패했더랬다. 젠장 노래나 듣자, 아쉬운 마음으로 듣고 있던 '00 카드가 부르노' 플레이 리스트. 심지어 이 타이밍에 <Talking To the Moon>이 잡힌 거다. 뭐가 이리 절묘하담. 남은 길은 그저 팔을 늘어뜨리고 휘적거리며 걷는다. 

미세먼지도 감춰주는 어둠, 그래서 한 번쯤 마음 편하게 들이마시고 싶은 선선한 공기, 캄캄함을 무섭지 않게 해주는 가로등 불빛, 음악 틈새로 들어오는 풀벌레 소리, 저어기 물을 대놓은 논에서 들리는 개구리 소리, 아카시아를 비롯한 이름 모를 나무들과 풀, 꽃들이 뿜는 건강한 향기들, 에너지들. 


지친 나를, 우는 나를, 신나는 나를 그저 보아준 이 밤길을, 오늘은 하나도 빠짐없이 음미함으로써 고마움을 말하고 싶다. 설령 오늘 좀 과하게 감성적이더라도 이 오글거림 역시 모른척해줄 '믿는 구석'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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