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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들 Jul 20. 2024

대나무 숲에서 연재를 외치다

"오랜만에 근무하니 어때."


나의 적응 혹은 부적응 걱정해'주'는 이들의 질문이다. 친근하고 반가운 사람들 뿐 아니라 의외의 이들이 '안부'를 물어오기도 했다. 나 아싸인데. 이토록 사랑받는 인물이었던가 진정 난 몰랐네. 주변에서 대신 난리 쳐준 덕에 그놈의 적응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되고 있는 듯하다. 생각보다. 걱정한 것보다.

과연 동료들의 적응 염려증에는 이유가 있었으니, 아닌 게 아니라 복직일을 앞둔 며칠간 잠을 설쳤다. 링 위에 올라가서보다 되려 결전을 앞두었을 때 긴장은 극을 달린다. 폭풍 전야의 고요가 더 공포스러운 법. 심란해서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았었다. 아이들 간식을 만들다 별안간 눈물을 폭 쏟기도 했다. 그 좋아하던 독서 모임도 머리와 마음이 온통 복잡하여 끝내 불참했고. 아쉽고 불안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벌벌 떨다 글로 남겼더랬다.

나 떨고 있니. (brunch.co.kr)






이후, 일부러는 아니었는데 희한하게 틈만 나면 이게 떠올랐다. 글을 발행한 행위 말이다. 처음에는 잡념처럼 손에 잡히지 않더니 반복된 사유에 점차 흙탕물은 가라앉고 걸러졌다. 종국에 체에 남은 곱고 명징한 하나의 생각은 이거였다.

'바짝 솟은 승모근을 이제는 글로 살살 풀 줄 알게 되었다. 이게 나의 정체성이다.'


육아 휴직의 명목으로 보낸(아니 명목이라 하면 어딘지 수상쩍다. 수상쩍다면 억울하다. 휴직의 이름에 걸맞게 아이들과도 열심히 함께했다고 괜히 항변해 본다. 더불어 나 자신 돌보기를 기를 쓰고 했을 뿐이며...) 2년이라는 시간 동안 글쓰기를 가졌다. 평생 책 좋아한다 자부했으면서 글쓰기의 매력을 마흔 줄에 알았다. 그 매력 있는 글쓰기를 작가도 아닌 내가 할 수 있다는 점에 그 성취감이 말로 다 못할 정도였다. 스트레스에 취약하고 긴장도 높은 내가 그때마다 그저 써 내려감으로써 상당 부분 해소했던 경험을 여러 번 하며, 나도 모르게 내면에 자신감이 쌓이고 있었다. 좋아하면 누가 안 시켜도, 땡전 줘도 열심히 한다(땡전 주시면 더욱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한 것은 어디 안 간다. 고맙게도 글쓰기는 의리 있게 내게 남았다.

용기 내어 휴직을 결심했던 2년 전의 나와 지금 나의 가장 큰 차이라면 바로 이 무기의 장착 여부다. 건드리면 터질 것 같던 딱한 그때의 나보다, 이제 제법 든든하다. 







일찍 출근하는 편이다.

서른여 명의 전체 직원 중에 나보다 먼저 와있는 이는 다섯 손에 꼽을 정도다. 원래 이렇게 일찍 다니는 위인은 아닌데. 후후습습. 군기가 든 모양이다. 근무 15년 차에 군기라고라. 복직한 지 이제 3주 차. 연식 좀 있는 새내기라 하겠다. 새내기라면 또 모름지기 군기 아니겠는가!


군기 든 늙은 새내기에게 고새 루틴이 생겼다. 출근하면서 일등이라는 사실에 상쾌해지는 것이 우선이다. 컴퓨터를 켠 후 커피를 내리러 2층 사무실로 올라간다. 부지런한 사람만 맡는다는 향을 내며 커피가 머그잔에 내려지는 사이 옆 책장을 기웃한다. 업무 관련 아닌 '책 같은 책'이 몇 권 구비되어 있다. 그간 제목만 훑었었는데, 오늘은 유독 그중 한 권이 눈에 띄더라.

어. 류시화다.

고등학교시절 나를 문학소녀로 살게 한 시인이 아닌가. 머신의 버튼을 한 번 더 누르고는 책을 꺼내 책장을 열었다. 어쩜. 그는 그대로였다. 머리말만 읽었을 뿐인데 느껴졌다. 학교 책상 서랍에, 혹은 한 손에 늘 지녔던 그의 진한 지혜의 스멜이 머그잔을 꽉꽉 채워 담기고 있는 커피의 향과 섞이고 있었다.


그대로 책을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아직 혼자인 사무실에서 이어 읽어 내려간 짧은 시간에 한 구절이 나를 사로잡았다. 마치 내가 이 책을 집기를, 책장을 열기를, 이 이야기를 읽기를 아주 오랫동안 기다린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급한 대로 업무 수첩에 필사했다.



삶이 내게 말하려 했던 것이 그것이었다. 이 깨달음은 그날 이후에도 나를 붙들어 주었다. 언제 어디서나 나 자신이 시인임을 기억할 때, 모든 예기치 않은 상황들을 마음을 열고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때 삶이라는 이 사건이 글을 쓰기 위한 선물로 바뀌었다. 그리고 그것이 내게는 인생 본연의 아름다움과 경이로움을 잃지 않는 길이었다.

-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류시화 -                   



무려 90년대를 풍미한 후 여전히 활발히 글을 쓰고 책을 내며 한계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깊어지고 있는 이 작가도 한 때는 부침과 고뇌의 시기를 겪었던 것이다(실제 대학시절 겪은 일화다).

'내가 시인이라고 생각하자 자신 앞에 닥친 예기치 않은 상황들도 축복으로 여겨졌다고. 그런 시적인 순간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숨겨왔던 나의 수줍은 마음 모두 접은 것처럼 느껴졌었다. 가슴이 쿵쾅거리도록 싫고 힘들었던 직장으로 돌아가는 것이 결국 현실에 굴복하는 것처럼, 마치 지고 들어가는 것처럼 속이 상했다. 한창 펼쳐나가던 꿈이 꺾인 것처럼 쓰렸다. 앞 선 글에도 잔뜩 다짐하며 애써 씩씩했지만 정말 애쓰고 있는 거였다.

그런데 막상 복직하고 오랜만에 일을 다시 하니, 전에 없던 마음이 하나 둘 피어나는 걸 느낀다. 그 정체가 무언지 통 잡히지 않았는데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듯한 내용을 이 책에서 만났다. 출판과 관계없이(하지만 계약해 주시면 거듭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스스로 작가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는 한, 모든 사건이 글 쓰기 위한 선물이 될 것 같다는 예감이었다. 그의 말처럼 불안과 고독마저 내 글의 부사와 형용사가 될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천직은 얼어 죽을, 퇴사를 고민할 정도로 내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이 직업에서도 직장 생활을 그저 견디는 게 아니라 '괜찮게' 살아갈 방법이 있다는 일말의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이상은 연재를 시작하게 된 구구절절한 사연이다.

정작 시간 많을 때는 이래저래 망설이던 브런치 연재를 일을 하고 나서 시작하고 앉았다니 퍽 머쓱하다. 그러나 꿈이 꺾였다는 둥 하는 청승은 그만 접기로 한다. 품고 있는 맑게 검은 속내를 글로 풀어낼 동력이 생겼다는 것만으로 일빠 출근만큼이나 기분이 상쾌해지는 것이다. 연재를 시작하는 브런치북- 이 공간을 대나무숲 삼아 임금님 귀 당나귀 귀를 열심히 외칠 셈이다.

으히. 상상만 해도 모닝쾌변한 듯한 개운함이!





P.S. 십 대 소녀가 끼고 다니던 시집과 잠언집과 에세이 속의 그가 이십여 년 만에 생각지 못한, 하지만 찰떡 타이밍에 나타나 늙은 소녀를 구제했다. 그러고 보니 그도 계속 썼기에 어느 어리석은 인간을 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뻔하지만) 모로 가도 결론은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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