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누님 칠순이라고 조카가 초대를 한다. 영상 편지를 만들어 보내라는데... 자신이 없다. 나는 여간해서 겉으로는 눈물을 안 흘리는 편이다. 속으로야 울지만... 온화한 얼굴을 가진 독한 놈이라는 소리를 듣기 딱 맞는 자가 나라는 사람이다. 그런데 큰누님한테 영상 편지를 만들어 보내달라는 조카의 부탁을 받고나자 벌써 울컥해진다. 너무도 이른 나이에 타계한 아버지 대신, 집안의 가장 역을 맡은 어머니 때문에 내 입학은 큰누님 몫이었다. 다른 애들은 엄마 아빠가 따라 붙는데 나는 큰누님이 동행했다.
20대에 어떤 시험에서 낙방한 적이 있다. 골방에서 분을 삭이고 있는데 단번에 합격을 고대했는지 어머니가 볼멘소리를 마다 않고 진로를 걱정한답시고 내 속을 뒤집어 놓았다. 꿈을 일구는 공방 같던 골방은 하루아침에 창살 없는 감옥이 되었다. 누구도 나를 가두지 않았지만 나는 내 속에 나를 가두었다.
바로 그때, 출가하여 일가를 이루고 다른 고장에 떨어져 살던 큰누님이 첫차를 타고 한걸음에 달려왔다. 골방에 조용히 들어와 나를 다독였다.
-빨랑 직진하면 좋것지만, 한번은 돌아서 가라는디 어쩌겄냐
-한번쯤 돌아가면 되잖어
내 탓이 아니라 시험의 몹쓸 난이도 탓으로 돌리며, 위로와 함께 재도전할 힘을 실어주었다. 누님이 그때 준 것은 용기였다. 누님이 속삭임처럼 들려주는 위로에 귀기울였다. 그것은 나에게 빵과 포도주 같은 거였다.
어쨌든 이유를 불문하고 시험은 떨어졌다. 하지만 큰누님 때문에 좌절은 면할 수 있었다. 나는 누님이 준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며 실의의 늪에서 헤쳐 나올 수 있었다. 조급한 어머니가 바라는 대로는 되지 않았지만, 다시 도전하는데 빼놓을 수 없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나는 내 저력을 의심하지 않고 소심한 골짜기에서 나를 구해준, 큰누님에게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보란 듯이 그 다음 해 합격의 결과를 안겨드렸다. 그때에도 큰누님은 맨 먼저 달려왔다.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하고, 나보다 더 내 일을 기뻐했던 큰누님이다.
누님이 그날 첫차를 놓치고 내게 오지 않았다면 나는 절망의 골짜기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지리멸렬한 삶을 살았을지 모른다.
불현 듯 옛날과 만나는 순간이 있다. 거기를 깊이 파고 들어가면 그곳에는 항상 누님이 우물처럼 서 있다. 그 우물에서는 마르지 않고 포용이 흐른다. 누님은 나를 영웅으로 호명했고, 나는 영웅이 되기로 결심했고 마침내 나는 누님의 나라에서 영웅이 되었다.
고마워 누나!
누나 때문에 여기까지 왔당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