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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비 Sep 23. 2020

나는 정적이 싫다

[단편에세이] 정적과 침묵, 불편한 기류를 견디지 못하는 이유


  나는 침묵을 싫어한다. 정적이 흐르는 시간이 너무 싫다. 소수와 있을 때 그 누구도 입을 열지 않는 순간이 지옥에서의 3초로 느껴진다. 다른 사람들은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않는데 적어도 나에겐 너무나도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상담 선생님과 매주 만나면서 일주일 동안 어떤 주제로 얘기할까 고민하면서 간다. 원래 언변이 뛰어난지라 대본이 없는데도 대본이 있는 것처럼 50분 동안 쉴 틈 없이 떠들고 온다. 그러던 내가 오늘은 아무 준비 없이 갔다. 몸도 마음도 지친 터라 선생님이 먼저 무언갈 제시해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컸다.


하지만 상담의 주체는 나다. 선생님은 하실 수 있지만 하지 않으셨다. 먼저 제시해달라 부탁드렸지만, 끝까지 안 하셨다. 난 그 이유를 안다. 이건 내가 깨고 나와야 하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선생님은 2분간 침묵해보자고 하셨다. 2분이 길게만 느껴졌다.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도 모르겠고, 숨소리와 침 삼키는 소리가 거슬렸다. 순간 스쳐 간 기억이 있다. 나의 지난 20년 생활이다.








 우리 집은 전쟁터와도 같았다. 물리적 폭력도 있었지만, 심리적 폭력이 어마어마했다. 수많은 스토리가 있는데 그중 오늘 나의 머리를 스쳐 간 것은 '가족 간의 왕따'이다. 왕따의 가해자는 부모님이요, 피해자는 자식인 나였다.


내가 왕따를 당했던 이유는 '제 혼자 잘나서' 였다. 나는 중학교 때부터 엉덩이에 종기 생겨가며 18시간씩 공부했다. 남들보다 배운 게 없었고, 기본기가 없었기에 몇 배로 노력해야 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실로 좋은 성적을 얻었고, 성적 덕분에 많은 곳에서 장학금을 받았다.


장학금을 받으면 일부는 생활비 차원에서 할머니께 드렸다. 조건이 있었다.



아빠는 주지 마.



아빠는 그게 서운했나 보다. 나의 학급비를 털고, 저금통을 털어 담배를 샀을 때도 사과 한 번 하지 않았다. 어린 내가 알바하며 피같이 모은 돈을 빌리고 안 갚을 때도 죄의식 하나 없었다.


내가 힘들게 받은 장학금이 아빠 손으로 들어가는 순간 생활비가 아니라 아빠의 담뱃값으로 쓰일게 뻔히 보였다.


내가 친구들과 밖에서 맛있는 걸 먹고 들어오면 장학금 받은 걸로 지만 맛있는 거 먹고 다닌다며 뒷담을 했다. 내가 사고 싶었던 걸 사서 들어오면 지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년이라고 뒷담을 했다.


내가 먹고 싶은 걸 집에 사 오면 내가 없는 사이 내 방을 뒤져 아빠는 다 찾아 먹기 바빴다. 나는 그렇게 아빠가 찾을 수 없는 곳에 내 소중한 것들을 숨기고 숨기는 능력이 나날이 발전했다.


그런 아빠를 보며, 나의 노력을 아빠의 쾌락으로 녹이고 싶지 않았다.





아빠는 그런 내가 싫었나 보다. 집안에 정적이 흐를 때면 항상 아빠와 할머니는 속닥이며 나의 뒷말을 했다. 그렇게 아빠가 내 욕을 한껏 할머니한테 풀고 나면 할머니는 나에게 와서 아빠한테 그러지 말라고 한 소리 하셨다.


내가 잘못한 게 뭔지 모르지만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침묵을 지켰다. 나는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징조인 정적과 침묵이 너무도 싫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이 지속하던 탓에 나는 집안에 아무 소리가 안 들리고 침묵이 흐르면 또 내 뒷담이 흐를 것 같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그 불안과 동시에 환청이 들리기 시작했다.


내가 안 본다고, 안 들린다고 생각하고 조잘대는 그 역겨운 뒷담화들이 실존하지 않아도 내 귀에는 맴돌았다.






그 이후로 나에게 정적이란 보이지 않는 독화살들이 언제 나를 찌를지 모르는 고통의 시간이요, 침묵이란 그 행동 속에서 내면엔 어떤 뒷말들이 숨겨져 있을지 모르는 두려움의 대상이었다.


 보통 사람들과 소통할 때도 내가 보고 있음에도 불안함이 올라왔다. 습관적으로 세뇌된 무의식의 반응이다. 나의 앞에선 웃고 있어도 속으론 어떤 생각을 할지 모른다는 의심들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게 실제가 되기 전에 나는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 되고자 노력했다. 더 열심히 말을 걸고, 재미있는 이야기를 하고, 과하다 싶을 정도로 내가 망가지면서까지 웃겨주려 했다. 상대방을 유심히 관찰하고 상대방의 마음을 사로잡는 말들로 나로부터 관심을 돌렸다.


그래서 정적이 있을 수가 없었다. 정적이라는 고통의 시간이 싫었고 두려움의 침묵은 회피하고 싶었다. 가능하다면 그럴 기회를 안 만들려고 오디오를 비우지 않고 쉴 새 없이 말했다.


회의감이 들 때도 있었다. 무엇을 위해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남들의 호감을 받기 위해 숙련된 눈칫밥으로 상대방의 생각을 잡아내는 게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내가 자존감이 낮을 때의 이야기다.









 아직도 정적과 침묵은 나에게 어려운 존재지만 이 고통의 과정을 거치며 몇 가지 깨닫게 된 것이 있다.



1. 어색한 정적을 깨기 위해서 부단히 무언갈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것. 이 분위기를 해소해야만 내가 괜찮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있는 그대로 괜찮은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이다. 자존감이 어느 정도 상승해서 가능한 일인 것 같다.
2. 정적은 나 때문이 아니라 함께하는 모두에게 책임이 있는 것이다. 굳이 내가 이미지를 망쳐가면서까지 노력할 필요가 없다.
3.  선척적인지, 아니면 환경에 의한 후천적 요인인지 나는 남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춰주는 능력에 특화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게 장점이 되었다. 같은 행동을 장점으로 표현하자면 나는 타인의 마음을 읽고, 공감해주며, 질문해줄 수 있는 사람이다. 뜻하지 않게 직관력이 발달하였다.



3번의 이유로 나는 제2의 삶을 계획한다. 누군가가 아픔을 토로할 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읽을 수 있고 공감할 수 있는, 그리고 당신 정말 괜찮은지 질문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직관력으로 아픔을 캐치하고 흘러가듯이, 지나가듯이, 스며들듯이 사랑을 채워주고 싶다.

그런 공부를 하자, 그런 일을 하자는 꿈을 가졌다.


나는 비정상적인 부모 아래서 태어났다. 그래서 정상일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른 관점에서 보니 그런 콤플렉스가 나의 특장점이자 무기가 될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사람은 정말 어떻게 생각하느냐, 행동하느냐에 달려있다. 비정상 부모같이 살지 않고, 더 나은 삶을 살려고 발버둥 쳤던 정적과 침묵 속 어린 날의 내가 이뤄낸 결과라고 본다.



비정상 속에서 흔들리지 않고자
발버둥 친 노력이
언제 거름과 양분이 될지 모른다.
매 순간 인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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