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도착해서
신랑이 근무할 학교에
처음 방문한 날이었어요.
신랑은 잠시 일 보러 간 사이에
유명한 베이글 샵이 있으니
아이들 데리고 가보라는 이야기에
저는 베이글 먹을 생각에 신이 나서
아이들과 신나게 발걸음을 옮겼어요.
워낙 넓은 미국 캠퍼스에
간판도 없어
제대로 가고 있는 게 맞나 하고 의문이 들때쯤
마침 지나가던 학생들이 보여 길을 물어 봤어요.
"Do you know where the 아인슈타인 베이글 is? " 하고
(아인슈타인 베이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베이글 샵 위치를 물어봤어요.
그런데 학생들의 표정이
처음 들어본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금 더 길을 걷다
또 다른 학생들에게 또 물었어요.
"Do you know where the 아인슈타인 베이글 is? "
(아인슈타인 베이글 어디에 있는지 아시나요?)
그런데 이번에도
학생들이 잘 모르겠다는 눈치더라고요.
뭔가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You mean 얜슈탄 베이글?"
(혹시 얜슈탄 베이글 말인가요?)
하고 되물었어요.
그래서 제가 "Yes!!!"라고 하고
알려준 길 대로 가서
무사히 베이글을 살 수 있었어요.
물론, 베이글을 주문하면서도
제 서툰 영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점원의 표정을 보자 한 겨울인데도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어요.
베이글을 사고 나와
아이들과 벤치에 앉아 베이글을 먹는데
걱정이 스멀스멀 올라오기 시작했어요.
'아... 아이들 어린이집 선생님이랑 대화 해야 하는데...
지금 이대로라면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도 잘 이해 못하겠는걸...'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죠.
한국에서 짐 싸며
베스트셀러 영어 회화 책으로 공부한 것만 믿고
캐리어에 자신감도 좀 챙겨 온 상태였는데
실제로 미국에 도착해서는
드라이브 쓰루, 각종 레스토랑에서 직원분들이 하시는 말씀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저를 보자
주섬주섬 챙겨 온 자신감은 이미
공중으로 증발한 상태였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신랑에게 모든 걸 의지할 수도 있지만,
신랑은 신랑대로 바쁠 테니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봤어요.
지금 당장 미국에 아는 사람 한 명 없고,
엎친데 겹친 격 코로나가 생기면서
사람을 만나는 게 조심스러워지면서
집에서 영어 공부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했어요.
중학생 때 영어 한 마디 못하는 채로
미국으로 유학 갔던 친구가
영화 한 편을 달달 암기하고 난 후 부터
귀가 트이고 입이 열렸다는 말이 떠올랐어요.
플랜 A가 줌바댄스 수업에서
원어민 친구를 사귀어 영어 공부하는 거였다면
플랜 B는 일명 '집콕 어학연수하기'로
넷플릭스에 있는 영화 한 편을 정해
하루에 15분, 10 문장씩
영화 한 편을 모두 암기하기로 마음 먹었어요.
영화를 선정할 때
최대한 영화에서 나온 문장을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제 상황과 가장 비슷한 영화를 선택했어요.
영화 '하이힐을 신고 달리는 여자(I don't know how she does it)'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Sex and the City)' 시리즈로 유명한 사라 제시카 파커가
두 아이의 엄마이자 워킹맘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다룬 영화예요.
두 아이가 있어 아이들과 대화할 때 사용하는 어휘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고
딸의 유치원 선생님과 대화를 나눌 때 사용하는 단어나
유치원 친구들 엄마와 이야기할 때 나누는 어휘를
다양하게 배울 수 있을 것 같아서 제게 필요한 어휘를
배울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넷플릭스의 영어 자막을 참고해서
암기할 분량의 대사를
워드에 적은 뒤 프린트해서
공부 자료를 만들었어요.
시간을 자유롭게 쓸 수 있고
장소의 이동이 자유로우면
언제든지 도서관이나
커피숍에서 공부를 할 수 있을 테지만
집에서 아이들을 육아하며
공부해야 하기 때문에
집 안에서도 집중이 잘 되는 장소와
집중이 가장 잘 되는 시간대를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식탁에서 공부하는 게 집중이 잘 되는지
아니면 책상에서
더 집중력이 높은지 파악하기 위해서
공부 다이어리를 작성했어요.
뿐만 아니라
집안일을 시작하기 전에
오전 시간을 이용해
영어 공부를 하면
가장 집중력이 높은지
아이들이 잠자고 있는 고요한 밤에
집중력이 높은 지도 체크하며
시간대별 우선순위를 수정했어요.
학원에서 회화를 배울 때는
내가 굳이 찾아보지 않아도
선생님께서
하나부터 열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시지만
혼자 하는 독학은 모두 스스로
검색해서 궁금증을 해결해야 해요.
모르는 단어는 인터넷 사전으로 찾아보고
원어민 배우들의 목소리에 집중하면서
몇 번째 모음에 강세가 있는지
형광펜으로 체크하며 공부했어요.
짧은 시간을 이용해서 하는 공부라
확실하게 표현을 외웠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아이들이 잠들고 나면
밤에 혼자 책상에 앉아
셀프 테스트로 문장을 적어가며
복습을 했어요.
학교는 수강신청을 하면
출석 체크라도 하지만
혼자 하는 공부는
첫날 출석하고
드롭해도 아무도 모르죠.
그래서 스스로 동기 부여하며
끝까지 완주할 수 있도록
출석부를 만들어 달력에
출석 도장을 쾅쾅 찍어가며
공부를 했어요.
하루에 15분,
하루 영어 10 문장을 암기하고
1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을 무렵
특정 장면을 보면
배우들이 말하기도 전에
제 입에서 줄줄 배우들의 대사가 흘러나오는
신기한 경험을 하기 시작했어요.
뿐만 아니라 제 일상에서
비슷한 장면이 연출될 때면
저는 주인공 Kate로 빙의되어
아주 자신감 있게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어요.
물론, 가끔 원어민과 대화를 나눌 때
여전히 모르는 단어를 만나고
대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어요.
하지만 작은 15분을 모아
쌓아온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어느덧 원어민과의 대화하는 것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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