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맛있는 거 해놓았어 밥 먹으러 올래?” 이 말은 내가 가장 내뱉기 좋아하는 말이다. 나의 유일한 취미인 요리를 할 때면 나는 항상 행복하다. 물론 요리를 할 때도 즐겁지만 지인들에게 맛있는 걸 해줄 때 나는 가장 즐겁다. 맛있는 요리를 준비하러 장을 볼떄도 그렇고 재료 손질할 때도 그렇다. 음식을 하는 과정의 모든 시간이 나에겐 다 즐겁다.
사실은 나는 원래 라면도 못 끓이는 사람이었다. 나는 기숙사 생활을 오래 한 사람이라서 중고등학교 때 기숙사에 라면 끓이는 가스레인지도 없었고 방학에 한국에 들어와서는 엄마가 해준 음식만 먹었다. 이랬던 내가 어떻게 요리에 취미를 붙일 수 있었을까?
내가 대학교 1학년 시절, 자취를 할 때의 일이다. 하루는 학교가 끝나고 나서 집에 돌아와 무엇을 먹을까 하고 배달 전단지를 스크랩해놓은 파일을 꺼내니 도통 먹고 싶은 게 보이지 않았다. 왠지 배달 전단지에 적혀있는 음식들이 먹어보기도 전에 전단지에서부터 맛이 느껴졌다. 그러면서 뭔가 뱃속에서 조미료의 맛을 강력히 거부한다는 정신적 신호를 보냈던 거 같다.
하루는 보쌈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마땅히 먹을 곳이 없었다. 집 근처에 한인 식당 한 군데에서 수준급의 보쌈을 팔았지만 그 집의 보쌈을 생각하니 맛있긴 했지만 뭔가 먹기도 전에 그 맛이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서 먹기가 싫었다. 그래서 만들어 볼까? 해본 것이 나의 첫 요리의 시작이었다.
마트에 가서 삼겹살 두 덩이를 사 가지고 와서 네이버에 나오는 레시피대로 된장을 풀고 각종 야채를 넣고 삶았더니 수준급의 보쌈이 완성이 됐다. 완성된 고기를 한인마트에서 산 김치와 밥 두 공기를 배불리 비웠던 기억이 난다. 내 입맛에 맛있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들을 불러서 해줬다. 친구들은 한술 더 떠서 보쌈 먹을 때 막국수는 없느냐는 주문을 하는 친구 때문에 나중에는 막국수도 해보고 곁들여 먹는 파무침, 심지어 보쌈김치까지도 해버리는 나 자신이 신기했다. 그렇게 나의 첫 요리는 보쌈이 되었고 보쌈 만들기가 나에게 요리에 대한 자신감을 주었다.
그 이후 중국에서 자취를 하면서 수많은 요리를 해 먹었다. 제육볶음, 새우 마요네즈, 탕수육, 잡채, 불고기 등등 안 해본 요리 없이 해서 친구들과 나누어 먹었다. 다행히 내가 손맛이 있는지 내가 해준 요리들을 친구들이 잘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난 그럴 때마다 엄마 마냥 즐겁고 너무 좋았다.
하루는 중국인 친구가 자신의 애인과 회사 사람들에게 한국음식을 대접해 준다고 해서 나를 부른 적이 있었는데 김밥을 만들자고 했었다. 그래서 새벽부터 김밥을 50줄이나 샀던 기억이 난다. 결국 수업이 늦어버렸지만 말이다.
그리곤 겨울이 되면 나는 유학생들 중에 아주 드물었지만 김장을 했다. 동네 야채가게에서 배추 5포기를 사다가 담가 먹었다. 3학년과 4학년 때 룸메와 같이 살았는데 항상 룸메가 그걸 보고 나를 신기하게 쳐다본 기억이 있다. 여김 없이 김치를 하는 날이면 돼지고기를 삶아 그 친구와 같이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머나먼 땅 중국에서도 김치를 하는 날이면 난 뭔가 마음이 든든하고 한국에 있는 거 같은 기분이었다.
참고로 김장을 할 때 요구르트를 살짝 넣으면 김치에서 감칠맛이 난다.
중국에서 나의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 구였던 요리는 현재 까지도 나의 유일한 취미이자 나의 활력소이다. 현재 박사 생활을 하면서 기숙사에 지내게 돼서 , 요리할 여건이 되지 못해 너무 아쉽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내 생활이나 직업을 모두 다 내버려 두고 사랑하는 사람과 지중해가 보이는 그리스의 한 외딴섬에서 조금한 한식집을 차려서 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