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나는 ‘버킷리스트’라는 말을 대학교 때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방학 때 한국에 들어와서 본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서 김선아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이라며 적어놓은 것을 보고 되게 인상이 깊었다 . 그래서 나도 버킷리스트를 작성해야겠다 마음 먹었다. 그래서 가장 먼저 적은 것이 대학교가 끝나기 전에 혼자 여행하기였다.
중국은 10월 1일부터 국경절이라는 명절이 있는데 최대 10일 동안 휴식을 한다. 그래서 그때 사람들이 여행을 많이 가는 편이다. 나도 대학교 3학년 국경절기간에 여행 계획을 잡아 놓았고 장소는 홍콩으로 정했다. 그때 마침 주의 친구들이 다른 도시로 같이 여행을 가지고 제안을 했지만 나는 단칼에 거절하고 홍콩 여행길에 올랐다
나는 베이징에서 홍콩까지 기차를 선택했는데 그때만 해도 고속철도가 없어서 28시간을 기차로 가야 했다. 엄청나게 긴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화려한 도시 홍콩을 가본다는 기대와 난생처음 혼자서 여행을 간다는 셀렘 때문에 그 모든 게 괜찮았다. 나는 기차역에 가기 전에 마트에 가서 내가 좋아하는 과자와 파이를 사들고 기차역으로 향했고 기차는 달리고 달려 홍콩에 도착했다.
홍콩 기차역
기차역에 내리자마자 내가 북경에서 들었던 보통 중국어와는 다른 광둥어들이 들렸고 홍콩에 온 것을 실감했다. 하지만 기차역이어서 그랬는지 내가 생각했던 큰 건물이나 화려한 모습은 없었다. 나는 기차역에서 이어진 지하철을 타고 미리 예약해 두었던 게스트 하우스로 향했다. 난생처럼 호텔을 찾아 나서는 길이 어려웠지만 그래도 물어물어 홍콩에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다.
그런데... 오 마이 갓, 그동안 여행을 너무 편하게 다녔던 탓일까? 내가 생각했던 게스트 하우스의 풍경이 아니었다. 그때만 해도 블로그나 스마트폰이 발달하지 않았을 때여서 정보들을 많이 알 수 없었다. 그래서 여행책자를 보면서 찾은 곳이었는데 책이랑 많이 달랐다.
침대 하나에 꽉 차는 방의 크기와 샤워를 할 수 있을까 싶었던 화장실 그리고 창살이 마구마구 올라와 있던 맞은편 건물 벽이 보이는 창문,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마치 폐쇄공포증이 걸릴 것 같았다. 순간적으로 나머지 4박은 환불받고 돈을 더 들여서 호텔에 갈까 생각했지만 가난한 유학생이 그렇게 충동적으로 행동할 수 없었다. 우여곡절 끝에 짐을 정리하고 그동안 차곡차곡 모아 왔던 돈으로 쇼핑이나 하러 가자 라고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언론이나 티브이에서 홍콩에서 많은 패션 아이템들을 득템 했다는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더 터라 나는 막연히 홍콩은 모든 물품들의 쇼핑의 천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 뭐하나 건지자'라는 마음으로 쇼핑 길에 나섰다. 구글 지도도 잘 몰랐던 시절이라서 여행책자 하나에 의지하여 지하철역으로 향했고 홍콩 특유의 깊게 파인 지하철을 타고 쇼핑하는 장소에 내렸다.
하지만 내가 너무 기대가 컸던 것이었을까? 아님 내가 명품에 관심이 많았던 것일까?
내가 사기엔 너무 비싼 물건들이었다. 홍콩이 아무리 싸다고 하지만 명품들은 명품들이었고 내가 특템했다고 자랑할만한 물건들은 없었다. 고작 내가 무언가를 사겠다고 만들어간 돈 중국돈 1500위안 (약 25만 원)으로 내가 만족할만하게 살만한 것이 없었다.
기대가 없어져서였을까? 게스트하우스와 높은 물가에 연속으로 두방 맞은 나는 하루도 되지 않아서 이 여행의 점점 흥미를 잃어갔다. 그리고 혼자 있으니 이 짜증을 나눌 누군가도 없어 너무 우울했다. '그래 그럼 먹을 거라도 먹자!!!'.
홍콩에서 유명하다는 팀호완이라는 딤섬집으로 찾아갔다. 하지만 너무 긴 웨이팅에 너무 놀랬다. 혼자 여행이라는 거 자체를 처음 해서 그런지 웨이팅이라는 변수도 생각도 못했고 나의 우울하고 기대가 깨진 마음을 먹을 걸로 풀려고 했었는데 그것마저 잘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 혼자 밥을 먹을 수 있을까?라는 한국인 특유의 남 눈치 보는 마음이 나왔다. 혹여나 저 사람들이 내가 왜 혼자 여행을 왔나 수군거리지 않을까? 친구가 없어서 나 혼자 왔나 생각하지 않을까? 라는 쓸데없는 걱정과 불안 때문에 나는 웨이팅에서 빠져나와 근처 시장에서 국수로 식사를 때웠다.
식사를 맞추고 터벅터벅 걸어서 돈이 안 드는 야경이나 보자 하고 홍콩의 대표 야경 거리인 스타의 거리로 향했다. 그때 시각 4시, 야경을 보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갈 곳이 딱히 없었는 나는 스타의 거리 귀퉁이에 나는 혼자 자리를 잡고 앉아 홍콩의 빌딩들만 바라보았다. 멍하니 빌딩들을 바라보자니 한숨이 절로 나왔다. 하... 이게 무엇이란 말인가... 그래도 야경을 보면 좀 마음에 위안이라도 될까?라는 생각을 하려던 찰나. 그때 산지 얼마 안 된 아이폰4의 전원이 얼마 남지 않음을 알았다. 그리고 내가 충전기를 가지고 오지 않음도 함께 알아 버렸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냅따 소리를 질러버렸다. 핸드폰에 전원이 없어진다는 게 너무나 짜증이 났다. 사람들이 쳐다보건 말건 소리를 질렀다. 미친놈으로 볼 것이 뻔하지만 상관없었다. 순간적으로 너무나 자신에게 화가 치밀어 올랐다. 친구들이 그렇게 혼자 여행가지 말라고 말렸었는데 내가 왜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난 혼자 여행하는 게 맞이 않은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올라오며 현실 타임이 시작됐다.
나는 내가 혼자서도 여행을 잘하는 사람인지 알았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함께 하는 여행이 즐거웠던 사람인 거 같다. 나는 갑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 표를 바꾸려고 급히 기차역을 향했다.
하지만 기차역에서는 바꿀 수 없는 표라고 했다. 기차역 직원은 나한테 4일 후에 원래 샀던 날짜에 베이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마지막 기대마저 끝나버리는 그런 상황이었다.
게스트 하우스로 돌아오는 길에 배가 고파져서 게스트 하우스 근처 사람들이 많은 식당 앞에 멈추어 섰다. 돼지고기 차슈 덮밥을 파는 집이었는데 무척 맛이나 보였다. 소심한 나는 식당 안에서는 혼자라 먹을 용기는 나지 않아서 테이크 아웃을 해서 게스트 하우스로 왔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샤워를 했고 나머지 4일 동안은 돌아 다지지 않겠다 마음먹었다. 그리고 돌아오던 길에 사두었던 챠슈 덮밥을 열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또 한 번 비명이 나왔다. 왜 돼지고기가 아닌 오리고기가 있는 것인가... 나는 오리고기를 먹지 못한다. 먹기만 하면 체기가 올라와서 내가 평소에 갑각류와 함께 기피하는 음식이다. 홍콩은 마지막까지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4일 후 베이징으로 돌아오는 길은 너무나도 멀었다. 홍콩에 대한 기대감이 사라지고 베이징에 대한 그리움만 있으니 돌아가는 28시간이 너무나도 길었다. 자고 일어나도 15시간, 또자고 일어나도 12시간... 평야가 펼 져지는 기차 밖 풍경을 보자니 너무나도 지겨웠다.
난 그 이후로 누구에게도 혼자 여행을 가라거나 홍콩 여행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리고 2019년 7월... 나는 다시 한번 홍콩을 방문했다. 발리로 여행을 가는 비행기의 스탑오버 장소가 홍콩이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나 혼자서는 아니었다. 그래서 그랬는지 홍콩이 너무 즐거웠고 그때는 혼자여서 못했던 관광을 다한 거 같다.
나는 이런 사람인 거 같다. 혼자인걸 좋아하면서도 막상 새로운 환경에 가면 혼자인 것을 싫어하는 아주 이상한 사람, 언젠가부터 나의 성격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즉 나의 성격이 내성적인 사람에서 점차 외향적인 사람으로 변하고 있다는 걸 그때는 몰랐다. 부모님을 떠나 머나먼 대륙에서 혼자 산지 여러 해가 지나니 나의 성격도 변한 것 같다. 그렇게 나의 버킷리스트의 첫 번째 임무는 그렇게 완료되었다.
당신은 버킷리스트를 작성하고 실행한 적이 있는가? 아직 실행하기 전이라면 자신이 하고 싶었던 것보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걸 적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