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엔 Jan 23. 2020

5회 양꼬치 특공대:고문을 피하려면 양꼬치를 들키지말라

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05) 나 홀로 중국

5회-양꼬치 특공대:고문을 피하려면 양꼬치를 들키지 말라!-


  요즘은 점점 먹거리가 늘어가는 기분이다. 우리나라 음식은 물론이고 이제는 굳이 해외를 나가지 않아도 해외오리지널 음식에 준하는 해외 음식들을 사람들이 사는 주거지의 근거리에서 언제든지 먹을 수 있다. 최근 열풍이 불었던 음식이 무엇이 있을까? 대만 카스텔라, 양꼬치, 마라탕, 흑설탕 버블티 정도가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중 특히 한국에도 몇 년 전부터 양꼬치 열풍이 불고 있다. 어딜 가나 길거리마다 양꼬치 집이 늘어섰고 , 점점 즐겨 찾는 사람들도 늘어났다. 내가 한국에 귀국했을 때만 해도 건대나 대림에 가야만 중국식 양꼬치를 먹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신촌 홍대 강남 등등 서울 전역에서 다 먹을 수 있다.


  양꼬치 식당에 가면 돌돌 돌아가는 기계에 양꼬치 꽂아 구워 먹는다. 그리곤 맥주와 함께한다. 사람들은 주말에 양꼬치를 먹으면서 평일에 있었던 스트레스를 친구들과 맥주 한잔을 하며 날려버리기도 하고, 본인의 연애 이야기를 하거나 자신들의 고민을 이야기하며 다들 맛도 즐기고 자신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곁들인다. 나도 한국에 귀국 후 수많은 양꼬치를 먹으러 다녔다. 뉴질랜드의 어린양을 쓴다는 가게도 가보았고 중국에서 직접 공수해온 식재료를 쓴다는 집도 가보았다. 하지만 나의 만족은 채워질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내가 생각하는 그런 맛이 아니었다. 항상 뭔가 부족한 이맛... 맛있긴 하는데 나의 기억 속의 맛과는 거리가 먼.. 그런 느낌이 항상 맴돌았다.

  또 모두들 양꼬치엔 맥주라고 하지만 중국 본토에서 양꼬치를 먹어본 양꼬치 성애자의 입장으로써 말하자면, 양꼬치엔 맥주보다 양꼬치엔 계란 볶음밥이다. 항상 친구들과 양꼬치집에 가면 양꼬치에 볶음밥을 주문하는 나에게 다들 물어보곤 한다. “ 왜 볶음밥을 시켜?”,“너 저녁 안 먹고 왔어?” “양꼬치도 느끼한데 볶음밥도 같이 먹으면 더 느끼하지 않나?” 다들 의아해하거나 신기한 듯 물어본다. 물론 볶음밥을 시킨다는 게 그렇게 특이한 상황은 아니지만 양꼬치엔 맥주라는 분위기가 자리 잡힌 사람들 사이에서 난 항상 볶음밥을  꿋꿋히 시킨다. 내가 양꼬치 집에서 볶음밥을 시키는 이유를 연상시키다 보면 나의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풍경과 6명의 사람들이 떠오른다.

북경 해전구 지역의 유명한 양꼬치 가게(로우진,양꼬치,계란볶음밥)


  나에게는 특별한 양꼬치의 추억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12년 13년 전으로 거슬러 간다.


  내가 다녔던 고등학교는 저녁 5시부터 6 시까지 저녁 식사 시간이었다. 그렇게 저녁을 먹고 나면 저녁 10시 까지 과외 밑 자습 시간이었는데 그 이후엔 딱히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기숙사에 가서도 고작 과자 몇 개 먹는 게 다였다. 혹여나 라면이나 무언가를 시켜먹으려 하면 항상 혼이 나곤 했었다. 이유인즉 기숙사에서 음식물을 먹으면 위생상 문제가 있으며 배달음식은 청결하지 않으니 먹다가 배탈이나 다른 병이 걸리면 학교 선생님들의 관리소홀과 책임이 되기 때문에 기숙사 안에서 절대 음식을 먹지 못하게 했다.  즉 저녁시간 이외에는 그다음 날 아침까지 뭐 딱히 배가 찰만한 걸 먹지 못했다.

  

  하지만 사람은 항상 규율을 깨려고 하는 법이고 나와 내 친구들 역시 그랬다. 한 번은 양꼬치를 몰래 시켜 먹었다가 배달을 받는 장소에서 선생님에게 걸렸었는데 나와 친구들은 난생 처음 고문을 당했었다. 선생님은 우리를 데리고 양꼬치 집으로 향했고 일인당 100개의 양꼬치를 시켜주셨고, 남기는 사람이 있으면 며칠 동안 반성문을 써야 한다는 그런 조건을 걸어 내셨다. 일명 식 고문이었는데, 그렇게 먹지 말라는 걸 몰래 먹으려면 실컷 합법적으로 먹어라는 무언의 압박이었다.


 우리는 그때 철이 없었는지 산처럼 수북이 올려져 나오는 양꼬치에 흥분하고 기분이 좋았다. “이게 무슨 벌이야”라는 생각이었지만 20개 이상을 먹으니 금세 입안에는 양 기름이 가득 찼다. 친구들 입술 주위에도 양 기름이 번질 번질 했고 배는 너무너무 불렀다. 다신 선생님께 먹지 않겠다고 사정사정하면서 콜라를 벌컥벌컥 마셨던 기억이 있다. 그리곤 다신 양꼬치를 먹지 않겠다고 그날 저녁에 다짐을 했다. 물론 그다음 날이 되면 또다시 양꼬치가 먹고 싶었지만 말이다.


  한창 클 나이에 다섯 시에 저녁이 끝이라니...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그때 한창 친하게 지내던 나포함 6명이 있었는데 다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고 있었다.우리는 항상 배가 그렇게 고팠다.


  우리 학교 후문에 가면 양꼬치 집이 2개가 있었는데 , 한 곳은 좀 허름한 곳이었고 한 곳은 나름 간판도 있는 식당이었다. 물론 이 두집다 양꼬치가 맛있었지만 나와 친구들 입맛에는 허름한 집의 양꼬치가 맛있었다. 또 여기서 로우진(肉筋)이라는 양꼬치 종류 중 하나가 있는데 양꼬치보다 좀 더 기름 기고 비계량이 더 많은 고기부위가 있다. 이걸 그렇게 그 집에서 잘 구워 냈었다. 정말이지 한입 베어 물면 고소하고 불맛이 나면서 입안에 가득 고기 향이 베어 든다.


한국에서는 생꼬치를 가져다가 돌돌 도는 기계에 자신들이 구워 먹지만 , 원래 중국에서는 커다란 드럼통에 불을 피워 그위에 고기를 오려 놓고 부채질을 하며 길거리에서 굽는 게 원래 방식이다. 현재는 기계로 굽는 가게들이 보이지만 200년대 중후분엔 다들 그렇게 양꼬치를 구웠다. 가격은 양꼬치는 하나에 0.5위안(80원) 로우진은 1위안(160원) 이었고 이들이랑 같이 먹으면 맛있는 계란 볶음밥은 1인분에 8위안(1300원) 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계란볶음밥은 정말로 양이 많았는데 1인분을 시키면 일회용 도시락에 2개가 배달되었다. 그래서 항상 친구들과 일인당 볶음밥 하나에 로우진 10개면 1인당 20위안(3600원)이면 충분했다.

상해 와이탄 지역의 유명 양꼬치 가게

  하지만 이 환상의 세트를 먹으려면 역시 선생님들의 눈을 따돌려야 했다. 그것이 참으로 어려웠는데 우리 여섯은 나름대로 머리를 썼다. 한 명이 방에서 기다렸고 나머지 다섯 명이 교무실부터 양꼬치를 받는 후문까지 일정한 간격으로 서있어야 했다.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나오면 나름의 신호로 다음 타자에게 신호를 주기 위해서였다. 예를 들면 교무실 쪽에 서있는 사람이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오면 박수를 치면 그다음에 서있는 사람이 그 소리를 듣고 박수를 치고 그리고 또 다음 사람이 듣고 손뼉 치고 그렇게 치고 치고 후문 앞까지 들리면 후문에 있는 사람은 후다닥 양꼬치를 받고 숨거나 아니면 선생님이 지나갈 때까지 몸을 숨긴 다음 양꼬치를 받야 했다.


   또 양꼬치를 받을 땐 플라스틱 기다란 빨래통에 옷걸이를 해체해서 줄을 만든 다음 빨래 바구니에 엮는다. 그다음 거기에 돈을 알맞쳐 넣어놓고 학교 담장 위로 던지면 기다리고 있던 배달원 분이 돈을 받고 양꼬치를 넣어 받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양꼬치를 받으면 양꼬치 받은 사람부터 방으로 들어가고 차례대로 방으로 들어온다. 그럼 방에서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문을 바로 열어준 다음 대망의 식사가 시작되는 것이다. 밥을 먹는 장소는 약간은 더러울지 모르지만 그 방의 화장실에서 먹었다.


  우리 학교의 기숙사 방에 딸린 화장실은 참으로 컸다. 성인 여덜아홉이 들어가 앉아도 무방 했는데, 우린 항상 화장실에서 먹었다. 이유는 우리는 자는 척을 하고 방의 불을 끄고 먹는 것으로 위장해야 했기 때문이다. 만일 방에 불이 켜져 있으면 사감 선생님이 마스터키로 따고 들어와 우리가 양꼬치 먹는 장면을 몇 번을 걸려보았기 때문에 우리는 완전 범죄를 하기 위해 방에는 불을 끄고 양꼬치를 먹었던 것이다. 양꼬치를 먹기 위해 깨끗하게 치운 화장실에 양꼬치와 볶음밥을 꺼내서 먹었다. 먼저 볶음밥을 한입 먹고 다음 바로 양꼬치나 로우진을 베어 물면 정말 환상의 맛이 시작된다.


  우리여섯은 그렇게 양꼬치를 먹었다. 혹여나 먹다가 방밖에 인기척이라도 들리면 다들 알아서 먹던 소리를 줄이고 숨도 쉬지 않았다. 그렇다 우리는 숨어 먹는데 프로들이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걸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


  나는 그때 먹었던 양꼬치를 아직도 난 잊을 수 없다. 그때 그 맛은 정말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맛이다. 중국 유명하다는 양꼬치집을 찾아가 보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혼자 양꼬치를 배달시켜 혼자 먹고 있는데 배달 온 양꼬치가 너무너무 맛있었다. 정말 학교 후문에 있었던 집이랑 맛이 흡사했고 내 몸에는 전율이 돋았다. 하지만 무언가 많이 먹지 못했고 맛있기는 했지만 즐겁지는 않았다. 그리곤 그러기도 잠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그 집 양꼬치가 맛있었던 게 아니라 그때 그 시절 우리 상황이 너무 우리를 압박했지 않았을까? 그 여섯 명이서 가족처럼 친했기 때문에 그 끈끈했던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게 아닐까?서로 걸리지 않기 위해 자신보다 서로를 걱정하며 하나라도 더 먹여주려고 했던 양꼬치.. 그리고 볶음밥... 단돈 3600원에 먹을수 있었던 나의 고등학교 시절의 최고의 음식과 친구들과의 추억을 쌓을수 있었다.


   타오란팅(陶然亭)공원 서문에 있는 그 양꼬치 집은 없어졌다고 들었지만 그래도 나의 가슴속엔 항상 존재한다.  양꼬치만 생각하면 생각나는 그떄 그기억 그맛, 이제는 다시 그떄 그기분 그맛으로 먹지 못하겠지? 그리고  그 시절 6명의 그 사람들도 나에겐 양꼬치 만큼이나 너무 따뜻한 기억이다. 예전처럼 연락을 자주 못하고 만나지 못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도다들 어색함 없이 지낼 수 있는 건 그때 양꼬치 특공대를 지냈던 끈끈했던 시간을 보내서가 아녔을까?

이전 05화 4회 소중한 미션 : 방 탈출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