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고등학교 2학년 겨울 방학이 시작될 때쯤 학교에서 몇 명의 한국인 학생들에게 중국 도시체험이라는 명목으로 일주일 동안 중국 도시 여행을 보내준다고 했다. 나는 여행을 매우 좋아하는 사람이다. 또 여행이라고 함은 매우 즐겨운 일이지만 난 그때 시기가 시기인 지라 별로 달갑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학이 되면 빨리 한국에 가야 하는데 무슨 여행이냐고 조금 짜증이 났었다. 나는 중국의 그 어떤 좋은 도시보다 방학이 되면 한국에 가고 싶었다. 하지만 학교 방침이 그렇다니 갈 수밖에 없었다.
학교에서는 서안 , 상하이, 하얼빈, 홍콩 등 몇 개의 도시를 보기로 보여주었고 우리들이 가고 싶은 도시를 고르면 됐다. 그럼 선생님 몇 분과 함께 여행을 가는 것이다. 나는 상하이 부근에서 중학교 생활을 했기 때문에 상하이는 굳이 가고 싶지 않았고 서안은 저번 수학여행 때 다녀온 터였다. 내가 제일가고 싶었던 곳은 홍콩이었다. 하지만 친한 무리의 친구들은 하얼빈을 가고 싶어 하는 눈치여서 나도 그냥 하얼빈에 가자고 했다. 실은 어디에 여행을 가는냐 보다도 그때는 나는 어디론가 빨리 갔다가 한국에 가는 게 목표였다.
하얼빈이란 지역은 중국 북쪽에 위치한 도시이다. 중국어 표준어의 성지라고 불릴 정도로 중국어 발음이 가장 표준적으로 구사하는 지역이기도 해서 많은 어학연수 생들이 베이징이나 상해만큼 선호하는 지역이다. 또한 그쪽의 날씨는 매우 추운데 겨울이 되면 영하 30~40도를 넘나들며 혹독한 한파가 하얼빈에 몰려온다.
나와 같이 여행지를 택한 친한 친구들은 (양꼬치 특공대) 다 남자여서 씩씩해서 그랬는지 아무런 준비 없이 그냥 노스페이스 파카나 입고 가면 세상 어딜 가도 따뜻하고 괜찮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같이 갔던 여자애들이 주말에 나가서 우리 남자애들 것 까지 하얼빈 추위 대비 무장 도구들을 사 왔다. 머리와 얼굴을 다 가리고 눈만 보이는 마스크, 내복, 장갑, 털양말, 그리고 핫팩 등등 수많은 무장 도구에 이거 너무 짐이 많아지는 거 아냐 이러면서 툴툴거렸지만 엄청 춥다는 말에 그냥 아무 말 없이 챙겼다.
북경도 겨울에는 엄청 추운데 영하 10도까지 떨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한국보다 바람이 더욱 많이 부는 겨울 날씨이다. 우리는 선생님 두 분과 함께 북경 기차역에서 떠났다. 나의 기억으로는 기차로 17시간 정도 걸린다고 했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저녁 기차였는데 그다음 날 점심쯤 돼서 내린 걸 보면 대충 그런 듯하다. 처음엔 한국에 빨리 가지 못해서 마음이 좀 그랬지만 무튼 그래도 여행을 가는 길이라 그런지 너무 마음이 조금 설레기 시작했다.
중국은 기차에서 아주 특별한 추억을 쌓을 수 있다. 땅이 크고 넒어서 그런지 기차를 타면 10시간 이상 가는 지역이 많은데, 기차는 칸마다 꼭 하나의 방처럼 생겼다. 한 칸에 침대가 층층이 4개 혹은 좀 더 저렴한 방은 6개까지 있다. 그럼 그곳에서 마음 맞는 친구들끼리 1층의 침대로 모여서 서로 카드게임을 하거나 그때 당시 유행했던 PSP 게임 혹은 영화를 다운로드한걸 보곤 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양꼬치 특공대 친구들이랑 모여 라면에 과자를 먹으며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또 밤이 어둑 둑 해지면 다시 각자 침대에서 1층 침대로 내려와 삼삼오오 모여 가지고 온 노트북으로 영화를 틀어 보았다.
그렇게를 얼마나 지났을까? 곧 하얼빈에 도착한다는 방송이 나왔고 여자 아이들이 사 온 무장 도구로 우린 몸에 무장을 하기 시작했다. 양말도 여려 겹을 신고 하의에는 내복에 얆은바지에 두꺼운 바지를 껴입고 , 상의는 거의 몇 겹을 입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정도였다. 우린 서로 돼지가 된 모습에 끼득끼득 거렸고 미련한 몸을 한 채 하얼빈행 기차에서 내렸다.
뚜벅뚜벅... 우린 무거운 몸을 한 체 느린 걸음으로 기차에 내려 하얼빈 추위와 맞서기 위해 출구로 나가려 했지만 선생님은 인원 확인과 하얼빈 여행 가이드와 연락을 먼저 하신다고 해서 우린 기차역 플랫폼에 서있었다. 기차역 플랫폼은 서울역처럼 실외에 있었는데 내가 걱정을 많이 해서 그런지 내가 상상했던 그 추위와는 거리가 멀었다. 영하 30도에 체감온도는 40~50도가 된다고 했지만 전혀 그렇게 느껴지지 않았다. 별로 춥지도 않고 그냥 북경보다 조금 더 추운 기분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그렇게 느꼈는지 다들 자신 만만해하고 있었다. 그냥 단지 나는 콧속에 코딱지가 많이 낀 느낌이라 그것이 불편했다. 선생님은 뭔가 복잡하신 듯 전화를 계속하셨고 나는 콧속을 한번 파야 마음이 후련할 것 같아 기둥 뒤로 가서 코를 막 후 폈다.
하하하 불편했던 콧속을 헤집으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그때 내 눈엔 특이한 모습이 들어왔다. 나뿐만 이 아니라 다른 친구들도 다들 코를 만지작거렸고 만지작 거리며 민망한 듯 다들 눈치를 보는 것 같았다. 그러던 찰나 다들 무언가에 이끌리듯 콧속이 이상하다며 이야기를 했고 우린 그 이유를 알았다. 바로 콧속이 언 것이다. 쉽게 말하면 코털이 얼었다고 할 수 있다... 세상에 얼마나 추웠으면... 그때부터였을까? 하얼빈은 갑자기 추워지기 시작했다. 정말 세상에서 한 번도 추위를 타보지 못한 사람처럼 너무너무 추워지기 시작했다. 다들 극강의 공포를 느끼고 버스에 탑승했다. 다행히 차 안에는 난방이 잘되어 있었지만 창문은 이미 얼어붙어서 조금이라도 손을 대면 유리가 와장창 깨질 것만 같았다. 나는 정말 추위를 잘 타지 않는 편인데 그곳에서 나는 정말 살인 추위를 배웠다.
그중 하루는 빙등축제를 간 날이었는데 난 정말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안 그래도 추워 죽겠는데 얼음으로 만든 형상이 있는 축제를 뭐하러 가지라는 마음이 컸던 거 같다. 나는 거기 가서 온갖 짜증을 부리곤 했다. 안에 있는 얼음 미끄럼틀을 친구들이 타자고 할 때도 표정은 똥을 씹었고, 안에 놀이기구를 타자고 할 때도 무표정한 얼굴로 임했다. 정말 이지 난 그곳을 피하고 싶었고, 내 인생에 없었던 사춘기가 그때 몰아오는 거 같았다. 그래서 혼자 나와서 있는 게 다수의 여행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좋겠다고 해서 홀로 입구 에로 향했다.
입구 앞에는 중국 전통 먹거리인 탕후루가 있었는데 마침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과일인 딸기가 눈에 보였다. 그래서 기분전환이라도 할 겸 아앙~하고 깨물어 먹었는데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나는 비명을 질렀다. 알고 보니 그곳은 너무 추워서 일명 삥 탕후루(얼음 탕후루)를 파는 거였다. 순간 이빨이 깨진 줄 알았다. 얼굴도 춥고 입술도 파르르 떨리는데 거기다가 갑작스럽게 찾아온 치아가 꺠질듯한 고통은 날 너무나도 짜증 나게 했다. 그날은 친구들과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내가 가장 의미 있게 기억이 남는 곳은 하얼빈 시내 어느 학교에 위치한 731부대 전시관이었다. 731부대라 하면 과거 일본이 중국을 침략했을 시절 그곳에 마루타 실험을 한 곳이다. 그곳에 가면 일본군인들이 얼마나 많은 잔인한 고문을 했는지 형상으로 나와 있다. 몇 가지 기억나는 것은 모성애 실험과 동상 실험의 모형이었던 거 같다.
뜨거운 방안에 어린아이와 엄마를 가두어 놓고 온도를 점점 높이면 처음에는 엄마가 아기를 끓어 앉아 아기가 다치지 않게 하다가 결국에는 너무 뜨거워서 아기를 밞고 올라서 본인이 뜨거운 고통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실험, 즉 모성 매의 한계를 실험하는 아주 비윤리적인 것이었다. 또 동상실험이 있었는데 차가운 하얼빈 실외에 사람을 세워놓고 팔에 얼음물을 시간차로 일정히 부어 살에 얼음이 들게 한 다음 얼은 팔에 고문을 해 사람이 동상 시 고통을 느낄 수 있는가 하는 실험이었다. 정말이지 어린 나이에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고 우리나라에도 과거 일제시대 때 그러한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 같아 가슴이 아팠다. 가이드가 731부대 전시관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에게 장난반 농담 반으로 이야기한 것이 이었는데, 이곳은 사람이 많이 죽어나가 귀신을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나는 당연히 믿지 않았는데 그곳에 들어가 보니 귀신은 보이지 않았지만 분위기 자체가 되게 음습하다는 기분을 많이 받았다. 거기에 있는 순간에는 너무 충격을 받아서 그런지 하얼빈의 추위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해 1월 겨울 하얼빈에서 돌아온 북경은 영하 10도가 넘어갔는데도 불구하고 나에겐 너무나도 따뜻했고 감사했다. 잠시 반팔만 입어도 됐을 것 같을 정도로 베이징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만일 지금 다시 하얼빈에 가보라고 하면 갈 수 있을까? 나의 대답은 절대 아니다. 혼자서는 못 갈 것 같고 다른 사람에게도 추천해주고 싶지 않다. 정말 장갑을 끼지 않으면 손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요즘 문득 드는 생각이 있다. 분명 하얼빈의 영하 30도가 넘는 그 추위가 엄청나게 나는 싫었다. 한 번도 나보다 나이 많은 형한테 짜증이라는 감정을 표출해본 적이 없었는데 그땐 그렇게 짜증을 낼 정도로 추웠다. 내 인생의 최악의 여행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또 그 안에서 즐거움도 었다. 다 같이 추위를 녹여보려고 장갑을 돌려 쓰기도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으러 다니면서 고기반찬만 시켰던 그런 추억, 하얼빈에서의 추위는 난방이 있는 곳을 찾으면 되었고 친구들과 함께 이야기를 하면 덜 추웠다.
그런데 요즘 내가 현실에서 느끼는 소외감에 따른 한파는 조금의 즐거움 점도 없는 거 같아 더욱더 무서운 거 같다. 내가 몇 달 전에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했는데 뭐랄까 그 어떤 따뜻한 옷이나 핫팩으로도 채워지지 않은 추움이 존재했다. 사람 마음이라는 것이 언제까지나 함께일 수는 없지만 백번 사랑한다고 했다가 한번 헤어지자고 하는 한마디에 모든 게 다 꺠져버리는 차가운 현실이 너무 싫다. 나와 그대가 함께 했던 사계절이 꺠지는거 같았고 마음에 하얼빈 추위보다 더한 강풍이 불었다.
세상에 혼자인 거 같았고 옷을 몇 겹을 껴입어도 채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어쩌면 나에게 가장 취약점은 사람 관계인 거 같다. 어릴 때부터 해외에서 홀로 떨어져 지내서 그런지 누군가와 이별을 하면 그게 너무 오래간다. 연인이건 친구이건 그 어떤 관계이건 말이다. 누군가 떨어져 지내면서 아무렇지 않은 척해야 한다는 것,혹은 누구와 떨어져 지내면서 새로운 환경에 묵묵히 적응을 해나가는 내 모습을 예상하는 나의 머릿속 계산이 너무나 싫다.
사람은 나이가 먹어가면서 점차 감정에 무뎌지고 능숙해진다고 하는데 나는 점점 더 그게 너무 버겁게 느껴진다. 아마 나에겐 사람 관계가 하얼빈인 거 같다. 사람들마다 저마다 하얼빈의 추위가 존재하겠지? 다른 이들은 그 추위를 어떻게 견디는지 즐기는지 덤덤해졌는지 모르지만 난 아직 진짜 하얼빈의 영하 30도도 싫고 내 마음속에 그 추위도 견디기 힘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