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차 유학생의 중국 적응기
고등학교 때 일이다. 중국에서 지낸 지 꾀 오랜 시간이 되었고 , 언어나 문화, 생활등이 익숙할 때쯤 나에게 친한 중국인 친구 한 명이 생겼다. 물론 낯가리는 성격인 내가 직접 만든 친구는 아니다. 나의 친한 친구가 소개해준 중국인 친구인데 점심시간이나 방과 후에 같이 농구를 하면서 친해진 기억이 난다. 그 친구는 우유냄새가 나는 바디 클렌저를 사용했는지 그 친구 곁에선 진한 우유의 고소한 향이 나서 나는 그 친구를 '니우나이' (牛奶, 우유를 중국어로 발음한 것 )로 부르곤 했다.
중국에 있는 시간이 점점 흘러가자 친한 친구들이 많이 생겼다. 하지만 친한 친구들이 점점 늘어가도 나에겐 답답한 느낌이 드는 감정이 존재하곤 했는데 그것은 바로 학교에 평일에는 갇혀있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내가 다니던 중국고등학교에서는 평일에는 외출이 제한되었고, 주말, 토요일에 한번 외출이 가능했다. 그것도 시간제한이 있어서 오래 놀지 못했었는데, 이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는 중국인 친구가 자기 집으로 부르면 특별히 그날은 그 집에 가서 시간제한 없이 외출이 가능했다. 나는 이 기가 막힌 정보를 듣고부터 그 친구에게 일부로 이야기 한건 아니었지만 조금 더 오버스럽게 연기하며 내가 너무 학교에서 갇혀 있는 거 같다고 슬쩍 내뱉었다.
나:답답해... 한국 떠나서 공부하는 것도 힘든데 , 학교에만 있어야 하니까 너무 갇혀 있는 거 같아
우유:너네 관리하는 사람들은 너무 심해... 주말에 나가는 것도 6시간만 가능하다며
나: 감옥에 있는 거 같아, 중국인 친구 집에 놀러 갈 때는 예외라는데.. 아휴
우유: 어? 그래? 그럼 우리 집에 가면 되잖아!!
나: 그럴까? 그럼?
그렇게 나는 평일 어느 날 우유 집에 초대가 되었고, 우유네 집에 가기로 한날 아침부터 너무 기분이 들떠있었다. 근데 나는 우유가 그때까지만 해도 부잣집 아들인지는 몰랐다. 내가 기분이 좋아 평소보다 오버스러운 제스처를 취하다 보니 주위 친구들이 오늘 기분 좋은 일 있냐고 물어보았고 나는 오늘 우유 집에 간다고 자랑을 했더니 친구들이 우유네 집안이 대대로 부자인 집안이라고 했다. 그리곤 자기들도 그 집에는 못 가보았다며 나에게 우유네 집에 다녀오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했다.
'아 우유네 집이 부자였구나’ 난 처음 안 사실에 약간 당황했지만 그건 나에게 그리 집중이 되는 일은 아니었다. 친구를 사귀는데 부자이던 가난하던 중요하지 않았고 더 중요했던 건 이 학교를 빠져 나 갈 수 있는 것만으로 나는 매우 감사했다. 그렇게 오후 수업까지 마치고 나는 당당히 정문을 우유와 함께 빠져나갔다.
우유: 차가 올 거니까 좀만 기다려
나: 응!!!
우유는 나에게 우리를 데리러 차가 온다고 했다. ‘오 역시 부잣집이라 틀리는구나, 외출 나가는 것만으로도 좋은 데 가는 집이 부자라니!!!’ 학교 정문을 나서자 나의 마음은 더욱 들떴고 우유네 집이 너무 좋을 것 같아서 너무 신이 났다!!! 순간 우유네 부모님이 뭐하는지 궁금했지만 왠지 물어보는 것이 실례인 것 같아서 그냥 두었다.
나: 분명 좋은 차가 올 거야!! 검은색 세단!
처음 우유네가 부자이던 아니던 상관없다던 나의 마음은 우유네가 부자라고 듣고 난 이후 은근히 기대하게 됐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달리 우유네 집에서 온차는 검은색이긴 했지만 고급차는 아니었다. 나와 우유는 차에 탑승했고 우유네 아버지로 보이는 분과 인사 끝에 우유네 집으로 향했다.
중국 부자들은 어느 집에 사려나... 으리으리한 저택? 텔레비전에 나오는 것처럼 온갖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지내겠지? 어느 순간 나의 머릿속은 외출을 나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는 생각보다는 우유네 집이 얼마나 좋을까로 나의 뇌 회로 방향이 바뀌었다. 그리곤 나 혼자 머릿속으로 티브이나 영화에서만 보던 담장 높은 집들을 생각했고 그렇게 차는 달려 우유네 집에 도착했다.
우유: 내려
나: 어딘 어디??
우유: 우리 집 간다고 했잖아!
‘여긴 어디? “라는 말이 먼저 나올 정도로 나의 생각과는 다르게 우유네 하우스는 허름했다. 한국에 몇십 년 된 아파트처럼 보이는 이곳은 내가 양꼬치를 먹으러 다니던 가게 가는 길에 위치했던 허름한 아파트들과 다름이 없었다. 그리곤 내가 순간 중국어를 잘못 알아들은 건지 아까 반 얘들이 잘못 말한 건지 우유네 집에 가기 전 해주던 말을 다시 한번 꼽씹었다.
우유: 들어가자
나: 응
나와 우유는 허름한 아파트의 한 건물로 들어갔고 덜덜덜 열리는 엘리베이터를 탔다. 우리를 태워 주셨던 우유의 아버지는 밖에서 담배를 피우시는지 우리랑 같이 들어가지 않으셨다. 왠지 엘리베이터가 올라가다가 떨어질 것 같았다. 덜덜덜 떨며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간 꼭대기층의 우유네 집!! 상상과 다르게 집이 좋지 않았지만 나를 학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는 감사한 모드를 다시 작동시키고 우유네 집안으로 들어갔다
"오~왔구나(오 라이러噢来了) " 라며 반가운 말투로 날 맞아주시는 우유네 어머니를 뵙자마자 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에게 악수를 청하시는 아줌마 뒤에 보이는 우유네 집안 내부... 겉모습과는 전혀 다른 집안의 모습, 붉은빛의 자수정이 현관에서 떡 하니 올려져 있었다. 집안 바닥과 내부는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듯했고 아예 전체 층을 다 합친 거 같은 크기의 집이 시작되었다. 그리곤 전혀 집안의 외관과는 어울리지 않는 우유 어머니의 화려한 옷차림도 나를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세상에나”
처음 뵙는 우유네 어머님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는 집 외형과 너무 다른 집안에 내부에 눈이 돌아가 있었다. 속으론 예의상 절대 이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는 자꾸 이 집 구경을 하면서 쳐다보게 됐다.
나는 우유와 같이 집안으로 들어갔고 커다란 원형식탁에 수많은 음식들이 올려져 있었다. 물론 일하시는 분과 함께! 우유 아줌마는 이것저것 나에게 음식을 챙겨주셨고 나는 중국에서 처음 받아보는 진수성찬에 다시 한번 놀랐다. 그리고 알고 보니 우리를 운전해서 데리다 주시던 분은 우유네 아버지가 아님을 가족사진을 보고 알았다.
현재 부(富)를 과시하고 남에게 보란 듯 자신의 부를 보여주는 오늘의 중국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중국은 십 년 전만 해도 부를 숨기는 문화에 익숙했다. 중국은 사회주의 사회이다. 모두가 공평하고 공정하게 나누어야 하며, 모두가 다 같이 잘살아야 하는 원리의 사회주의의 공동체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도 계급은 나누어지며 자본주의가 곳곳에 침투해 있다. 그리곤 우리나라나 다른 자본주의 국가들처럼 당연히 부자와 가난한 자가 나뉜다. 우리나는 돈 많은 사람들이 거리 김 없이 자신의 부를 들어내며 살고 있지만 당시 중국은 그걸 좋지 않게 느끼는 시대적 분위기였다. 공정하고 공평하게 잘살아야 하는 사회에서 누군가 티 내게 잘살거나 하면 중국 사회주의 원리에 맞지 않는 거였기 때문이다.
실은 우유네 집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지만 자신들의 부를 겉으로는 감추고 있는 우유네 집의 모습이 당시 사회상이 잘 맞아떨어졌다. 이렇게 생각해보면 , 우유와 나를 태우러 왔던 자동차도 밖에선 평범한 모습으로 보이려던 보여주기 식의 퍼포먼스랑 같다고 그렇게 생각된다.
그날은 모두가 똑같아야 하고 공평해야 하는 사회주의적 분위기에서 자란 우유의 감추는 습관과 우유네 집이 부자라는 이야기를 친구들에게 들고 금세 외출보단 우유의 집안을 궁금했던 경쟁과 자본주의 분위기에 자란 나의 간사함이 만난 한 장면이다.
같은 동양권 국가이고 어린 나이라 달라 보이는 게 없을 우리였지만 나와 우유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하나의 문화적, 사회적 벽이 존재했다.
그날 우유는 나를 데리고 집에 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날 나는 우유의 부와 가난이 교차되는 모습을 보며 우유에게 보였던 모습의 차이에서 미묘한 변화는 없었을까? 내가 속물인 걸까? 내가 지금 , 그때 당시보다 나이가 들어서 성숙해졌다는 가정 아래,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얌전히 집 구경을 하던 처절한 눈알 돌리기를 멈출 수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