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영무 Jun 24. 2024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율의 공간 - 슈필라움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0

성수동 삼옥 목공 카페 - 코리아 빌드 기사

바닷가 작업실에서는 전혀 다른 시간이 흐른다 - 김정운 저


몇 번을 읽으려다 포기했습니다. 어려워서가 아닙니다. 읽기 싫어서도 아니죠. 제가 저번에 이 책을 집어 들고 눈 깜짝할 사이에 1/3을 읽어버렸다는 걸 말씀드린 적이 있지요? 그 책을 바로 그날 저녁에 구입을 했습니다. 그런데 이주일이 넘도록 읽기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그냥 산책하듯 읽고 싶지 않은 마음? 아침 일찍 일어나 하루의 가장 중요한 시간을 투자해야 할 것 같은 기분? 밤에는 읽고 싶지 않아요. 공을 들여 읽고 싶어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소설처럼 가볍게 읽고 싶지 않습니다. 필기 노트를 옆에 두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 정독을 하면서 매 문장마다 내가 느낀 감동을 기록하고 싶은 책입니다. 그래서 늦어졌네요.


프롤로그에서부터 기분이 좋아집니다. 슈필라움(Spielraum-독일어). 아주 매력적인 어휘 같아요. 물리적인 공간과 심리적인 여유까지 포함하는 나만의 공간. 독일어에는 있지만 한국어에는 없는 개념. 개념이 없다면 그 개념에 해당하는 현상은 우리 사회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합니다.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정도로 고도성장을 한 한국사회에서 슈필라움이 없는 한국 남성이 부딪치는 부작용에 대해 설명합니다. 심리적 여유공간이나 성찰을 위한 최소한의 물리적 여유공간도 없는 한국 남성에게 자동차 운전석이 존재를 확인하는 유일한 공간이라고 빗대어 설명합니다. 그래서 내 앞의 공간을 빼앗기면 내 존재가 부정되는 느낌으로 분노와 적개심에 불타오르는 거라고요.


매일 꾀죄죄한 자연인을 넋 놓고 보는 이유도 슈필라움의 부재 때문이라 설명합니다. 외로움과 궁핍함을 담보로 얻어낸 자연인의 슈필라움이 부러운 거라고요. 돈이 없어도 저들은 저렇게 자신만의 낙원을 꾸려 놓았는데 스스로는 자연인이 될 용기가 없기 때문이라는 거죠. 막연하게 은퇴하면 텃밭을 가꾸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것도 그런 이유랍니다.


50줄에 들어선 저는, 무척이나 공감이 갑니다. 25평의 아파트에서 방 3개가 있는데, 이미 두 아들이 방 한 개씩 잡아챘습니다. 안방은 킹사이즈 침대와 장롱이면 더 공간이 없습니다. 안방에서 아내와 저와 막내딸이 잡니다. 한 달 전에야 베란다에 책상 하나 놓고 나만의 서재랍시고 꾸며 놓았더니 세상이 달라 보입니다. 


물리적 공간과 심리적 공간은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며 슈필라움이 있으려면 둘 다 있어야 한다는 말이죠. 내 실존은 공간으로 확인되는 법. 공간의 의식을 결정하는 것. 그래서 그렇게나 남자들이 서재에 집착을 하고, 작업실의 로망을 꿈꾸는가 봅니다. 


꼬마버스 타요에 나오는 녹색 버스 로기를 아시나요? 시즌2에서 “로기의 특별한 손님”편이 있는데 캠핑카가 나옵니다. 로기는 자기만의 취향으로 자신의 차고지를 꾸미고 타요와 다른 친구들은 구리다고 놀리지만 캠핑카는 놀라운 취향이라며 로기만의 취향을 칭찬하지요.


공간이 있다면 슈필라움이 저절로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나만의 슈필라움을 만들려면 비싼 인테리어나 디자이너 가구가 필요한 게 아니라 확고한 자신만의 취향과 관심으로 구현해야 한다는 말이죠. 보잘것없이 작은 공간이라도 내가 정말 즐겁고 행복한 공간, 온갖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꿈꿀 수 있는 그런 공간이 진정한 슈필라움이라고 저자는 소개합니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슈필라움이 귀농, 귀촌, 텃밭, 자연인 뿐이라면 조금 허무하지 않을까요? 작가의 바닷가 작업실처럼 작가의 슈필라움의 형성과정을 공유하고 싶어서 쓰게 된 글이라고 합니다. 저도 뭔가를 더 많이 깨닫게 되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나만의 슈필라움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의 결론: 그냥 자연인 시청만 하지 말고 내가 꿈꾸는 슈필라움이 뭔지 고민해 보자!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