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미술은 잘 모릅니다. 가끔 미술가에 대한 소설을 읽을 때가 있는데, 감동을 주는 예술적 재능에 대해 신기하게 바라보게 됩니다. 어떤 작품이 그토록 사람의 시선을 끄는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회화 작품이 몇 억 원에서 수백억 원이라는 뉴스를 보면 신기하게 생각합니다.
미술관에 가본 적이 거의 없지요. 아마도 유럽 여행 중에 파리 루브르 박물관과 바티칸 미술관에 들렀던 적이 최초이자 최후였던 것 같아요. 루브르에서 모나리자를 관람했는데 줄지어 선 관람객들이 밀면서 지나가서 사실 유심히 감상할 여유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창조적 시선 (김정운 저)을 읽다가 인상주의나 추상화가 탄생한 배경을 알게 되니 정말 무릎을 탁 치게 되었습니다. 이걸 보면 역시 사람을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짜릿한 느낌으로 들곤 하죠.
과거 모든 회화 작가들은 최대한 정밀하게 사실을 그대로 그리는 것이 중요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딱히 유명한 화가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마치 기술자처럼 그림을 그리는 직업이 존재했다는 것이죠. 예술가가 아니라 기술자였던 겁니다.
인상주의 이전의 그림은 대상의 완벽한 재현이 목표였습니다. 사진처럼 실물과 똑같이 그려야 잘 그린 그림이었죠. 그런데 갑자기 사진이라는 기술이 탄생합니다. 진짜 똑같이 현실을 표현해 주는 작품이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훨씬 빠르게 결과물을 내놓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럼 화가들이 필요하지 않겠죠? 그렇게 기존의 화가들은 빠르게 직장을 잃어갑니다. 회화의 존재 이유에 결정적 위기가 도래했을 때 인상주의 화가들은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탈출구를 찾아냅니다.
인간 내면의 심리적 충동이나 감정, 시선을 화폭 위에 편집하여 현실을 있는 그래도 그리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과의 상호작용을 적극적으로 추구한 것입니다. 그림이 현실과 완벽하게 일치하지 않아서 관람객들은 그림 속에서 무언가를 찾아내야 하도록 만든 것이 바로 상호작용의 시작입니다.
게슈탈트 심리학에서 완결성의 원리라는 것이 있는데, 사람은 불완전한 것을 보면 어떻게든 머릿속에서 그것을 완성시킬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림 속에서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보이면 관람객은 필사적으로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하게 되는 거죠.
피카소의 작품을 교과서에서 봤지만 하나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냥 아주 보기 싫은 그림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설명하니 이해가 됐어요! 화관을 쓴 마리 테레즈 같은 그림은 옆을 바라보는 여자와 정면을 바라보는 여자가 동시에 그려진 것이라는 거죠!
화가 피카소는 두 가지 시점에서 본 뷰를 한 개의 그림 속에 녹여 넣었던 겁니다. 편집으로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낸 거죠. 실로 창조는 편집에서 시작된다는 저자의 주장이 극히 장대하게 증명되는 순간입니다.
나이 오십 먹고서야 이런 그림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다니 참 어처구니없네요. 그러고 보면 저는 참으로 예술과 먼 삶을 살아온 건 아닌가 싶어요.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겨서 김정운 교수님께 참 감사합니다.
오늘의 질문: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볼 때 창조성이 태어난다는데, 여러분은 오늘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셨나요?
나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당신도 그러하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