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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원샘 Aug 27. 2024

에로스의 날개가 스쳤다

늦은 나이, 왜 가야금을 '계속' 배우고 싶었나


그대로 따라 할 뿐 창작하지 않으며, 믿음을 가지고 옛 것을 좋아했다. 述而不作, 信而好古.

-『논어』 술이편 1장 -


 나는 어릴 적부터 느꼈다. 옛것에 심적으로 예속된 사람이라는 걸. 현대를 살아가는 내가 '옛것'의 흔적을 최초로 느낀 곳은 학교였다. 여러 교과 중 '역사'를 제일로 여기며 즐겼다. 천진하던 17살 때, 사학과를 바라기도 했다. 그런 내가 역사 공부를 하던 중 유독 '사대부 士大夫'들에게 묘한 매력을 느꼈다.


  사대부들이 역사에 드리운 공과 를 운운하려는 의도는 없다. 결정적인 이유는 나의 역량 밖이다. 그러나 왕과 제후의 신분은 정해지는 것이라면, 사대부들은 정해질 '수' 있었다. 국가 차원의 시험을 통해서 말이다.(특정 가문의 여부, 신분적 배경으로 인한 힘의 차이는 차치하자.) 당시의 전 세계적 흐름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나라와 중국만이 국가 이념에 부합하고, 능력 있는 자를 '선별'한 것이 흥미로웠다.


  흥미로워한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사대부들이 공부한『논어』를 읽던 도중, 공자가 음악을 언급하는 부분이 울림 있게 다가왔다. 예를 들어 *'음악으로 인격을 완성한다'는 그의 말이 처음에는 비유인 줄 알았다. 그런데 그가 제자를 가르쳤던 **과목들을 보면 예 다음으로 중시한 것은 바로 음악이었으니, 공자는 실제로 뛰어난 연주자이자 음악'도' 가르친 교육자였다.

 *'시로 순수한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예로 바로 서며, 음악으로 완성한다.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논어』 태백편 8장 -
** 공자가 가르쳤던 여섯 과목은 예법, 음악, 활쏘기, 전차 타기, 작문, 셈법이니 그가 육성하고픈 군자는 지덕체를 두루 갖춘 인재였다. - 출처: 두산백과 -


  유학. 선비의 학문이 국교였던 조선에서 왕들 역시 음악적 재능이 남다른 대목이 있다. 세종께서 박연이 대령한 '편경'을 점검하던 중, 이칙(당악에서 G#) 음이 높았던 점을 찾아낸 일, 정간보의 발명. 그리고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된 '종묘제례악'의 완성. 이 모든 것이 세종 치세 때 이루어졌다. 그의 아들 수양대군은 대금을 귀신같이 잘 불었단다. 일설에 의하면 예술적 자질이 남다른 안평대군은 가야금마저 잘 탔다고 전해진다.

윌리암 부게로, 1895, '프시케의 납치' 중 에로스와 프시케


  일련의 사실들이 옛 것에 호감을 느끼는 나에게 악기를 배우도록 종용했다. 날개를 달아주었다. 에로스의 날개가 스치자, 가보지 못했던 영역에 대한 애정이 깃든다. 모방 Mimesis. 그들을 닮고 싶었다. 주어진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부단히 수행하는 그들을, 음악으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모습들을 말이다. 가야금을 시작한 이 여정은 이상 Idea에 가닿고픈 날갯짓과 다름없다.



에로스의 날갯짓은 내가 사유에서 중대한 일보를 내디디며 전인미답의 지대로의 모험을 감행할 때마다 나를 건드린다오.  - 한병철, 『에로스의 종말』 p. 158 '파르메니데스'의 말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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