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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원샘 Sep 26. 2024

영생의 부조리

영생하는 요정의 함정

죽음이 최악이 아니오.
 죽음보다 끔찍한 게 있소.
 무수한 세월 동안 같은 하루를 산다는 것
 상상이나 해본 적 있소?
- 베르너 헤어조크, 영화, '노스페라투'(1979) -  *인스타그램 @audiocvisualmaterial 게시 자료 차용

  노스페라투는 그리스어로 '역병을 옮기는 자(nosophoros)'에서 비롯됐다는 설이 유력하다. 노스페라투는 영생한다. 피를 빨린 자는 흡혈귀가 되어 주인에 복종한다. 영생과 권속이 그의 것이지만 노스페라투는 염증을 느낀다. '반복'적인 일상은 지옥이다.


  톨킨의 요정들 역시 영생한다. '느리게 나이를 먹지만 결코 늙지 않으며 육체의 병과 아픔을 모른 채, 영원히 사는 요정.' 그리고 톨킨은 『실마릴리온』에서 영생의 허점을 서사를 통해 지적한다. 영생은 모두가 항상 죽는 세계에서 '치명적인 특권'이라고.

  Elves live for ever, ageing slowly but never growing old, knowing no sickness or other ills of the flesh. In a world where evertyhing else is always dying such deathless can prove to be a fatal privilege.
- 『Master of Middle - earth』p. 79 -


  우리는 직관적으로 죽을 것을 알기에 모든 것이 아쉽다. 영생을 바라마지 않는다. 그러나 진시황은 모든 것을 가졌지만, (어쩌면 가졌기에) 그마저 영생을 원했다. 죽음을 강렬히 외면하는 자(수은을 자주 복용했다.)는 죽음이 기괴하게 찾아간다. 그는 통일한 중원을 시찰하는 도중 생을 마감한다. 흙으로 제때 돌아가지 못하고 어가 안에서 썩은 내를 풍겼다. 죽은 채로 시찰했다. 어가 안에는 한비자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이사, 둘째 왕자를 옹립하려는 환관 조고가 있었다.


  바라서 안 되는 일을 욕망하는 것도 비참하지만, 특권이 주어지는 것이 비극의 씨앗이 될 때가 있다. 노스페라투가 반복되는 영생에 염증을 느끼는 듯이. 요정도 그럴 위험에 처해 있었다.


'영생은 끝없는 지루함과 침체로 몰고 간다. 필멸의 삶을 사는 이들에 관한 잔인한 지배를 주장하기도 한다'

 Endless life can turn into endless boredom and stagnation, or assert itself in cruel domination over other species, who do not live long enough to acquire equal power and knowledge.  - 상동 -


  부정성이 모이면 만성 慢性이 된다. 병이 가득 찬다. 가득 차면 덜어내야 한다. 지루함과 우울감을 말소하고자 한다. 감각을 살리는 일들을 찾게 된다. 남을 해하는 일은 뇌에 충격을 준다. 살아 있음을 부여한다. 피를 찾는다. 흡혈귀에게 물려서 영생을 얻지만, 역으로 영생으로 인해 흡혈귀가 된다. 노스페라투, 질병을 옮기는 이가 되어버린다.


'이런 사실을 인지한 발라들은 요정들이 그들의 불멸성을 견딜 수 있는 방법을 가르치는 데 착수한다.'

The Valar, being aware of these, it would seem, undertake to teach elves how to endure their immotality. - 상동 -


  그리하여 발라들이 요정들을 불러들이고, 요정들은 발라들과 함께 아름다움을 나눈다. 신과의 이별이 예고된 뛰어난 기예. 별을 켰던 바르다에 대한 끝없는 사랑. 영생을 능히 감당할 동굴을 마련한다.


  인간의 수명이 늘어났다. 호모 사피엔스가 10억 명이 되기까지 15만 년이 걸렸다. 80억 명이 되기까지 150년이 채 되지 않았다. 상대적으로 긴 세월에 대하여 인류는 염증을 느낄 위험을 외면할 수 없다. 요정들이 바르다를 사랑했듯이 누군가를 사랑하거나, 샘처럼 작은 정원을 가꾸거나. 삶이 저주가 되지 않도록 신성이 깃든 장소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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