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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원샘 Sep 12. 2024

별을 켜는 자, 엘베레스

반지의 제왕 속 신의 손길

  별에 이끌리는 인간의 본능을 톨킨은 잘 알았다. 요정이 중간계에서 깨어난 시기는 별의 여왕, 바르다 Varda가 텔페리온에서 흘러나온 이슬을 하늘에 흩뿌릴 때였다. 이 이슬이 별이 되자, 요정은 깨어난다. 별과 요정은 함께 출현하였다. 자신의 기원에 강렬히 예속된 요정은 별을 사랑한다. 바르다를 사랑한다.

고대 중간계를 밝혔던 두 나무, 텔페리온과 라우렐린의 음각

  '엘베레스 길소니엘 Elberth Gilthoniel'. 신다린어를 우리말로 풀어보면 '별을 켜는 자, 바르다. Varda, Star-Kindler'이다. 그녀의 이름이 혀끝에서 조음 되는 것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것과 다름없다. 샘이 모르도르 Mordor에 입성할 때. 프로도가 나즈굴에게서 자신을 보호할 때. 그녀의 이름이 지면紙面에서 빛난다. 어둠이 쇄도할 때 그녀의 이름은 영창 된다.


  시몬 베유는 '신은 부재의 형태로 창조 속에 존재한다' 했던가. 물리적으로 가닿을 수 없는 그녀가 이름 불리자, 바르다는 현현한다. 나즈굴은 달아나고, 모르도르의 감시탑은 무너진다. 가없는 공간을 가르고 강림한다. 빛이 어둠 속에서 지체 없이 솟아나듯. 그녀는 어둠을 쫓아낸다.


  재앙을 뜻하는 'disaster'는 부정 접두어 'dis-'와 라틴어로 '별'을 의미하는 'aster'의 복합어다. 재앙은 '별의 부재不在'다. 땅에 '터'잡은 인간은 기름진 땅을 기억하고, 위험이 도사린 땅을 피하기 위해 별이 필요했다. (태양도 별이다.) 별들로 이들을 가늠했다. 별은 '기'준이 되었다.


  별의 부재는 기준의 부재다. 정처 없이 부유한다. 두려움에 떤다. 별의 부재는 공허를 판다. 어두운 숲에서 불안에 떨던 조상의 감각을 되살린다. 어둠의 장막 속에서 인간은 얼어붙는다. 이것이 재앙이다.



오, 별을 점등하는 자, 바르다여,

저 멀리 천국에서 우리를 바라보는.

죽음의 그림자 아래에서 당신께 간청하오니

저를 굽어보소서, 영원히 빛나는 이여!


O Elberth Star-Kindler

From haeven gazing afar,

to thee I cry here beneath  the shadow of death.

O look towards me, Everwhite!

-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 p. 383 -


쉴롭으로부터 프로도를 구하려는 샘. 갈라드리엘의 유리병과 요정검 스팅을 들고 있다.

  쉴롭이 프로도를 낚아채려 하자, 샘은 이 기도를 영창 하며 기백을 벼린다. 영창에 반응한 갈라드리엘의 유리병은 어둠을 찢어낸다. 쉴롭은 경험하지 못한 빛에 얼굴이 그을린다. 제 굴 속, 깊은 심연으로 돌아간다.


  양초 위에 일렁이는 불꽃은 안도를 선물한다. 어둠의 장막을 들어낸다. 인간은 신의 흔적을 모방해야 한다. 바르다가 별을 켜고, 샘이 기백을 벼리듯. 인간도 빛으로 어두운 장막을 들어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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