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과 역사 - '듄'

by 호원샘

"스파이스를 지배하는 자, 우주를 지배한다."

"Power over spice is power over all."

- 드니 빌뇌브, "듄 2" 첫 장면 -


가끔 소설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심지어 환상 작품마저 현실에 기반한다. 프랭크 허버트의 SF소설, "듄 Dune"을 역사의 '모사摹寫'라고 부르고 싶다. 인간사만큼 흥미진진한 것이 있을까. 듄 역시 흥미롭다.


"듄"은 여러 인간 군상을 허버트가 창조한 세계로 묘사한다. 가문 간의 암투, 자원의 독점, 종교의 세속화, 그리고 이상理想 추구. 나름의 원願들이 다양한 양태로 표상된다.


권력은 필요와 희귀의 결합이다. 공기는 필요하지만 희귀하지 않다. (시간이 지날수록 물처럼 사 먹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필요한 것이 귀해지는 순간, 힘이 모인다. 돈은 필요하나, 인간의 욕심은 가없기에 귀해졌다. 왜 '스파이스 멜란지'는 비싼가. 첫째, 인간의 노화를 막고 수명을 연장시킨다. 둘째, 우주 항행에 필수적이다. "듄" 속 세계는 인공지능이 금지된 세계이므로, 우주항법사들이 우주 항행에 생길 수 있는 모든 변수를 '스파이스 멜란지'를 섭취함으로써 계산한다. 즉, 스파이스는 예지력을 유발한다.

드니 빌뇌브, "듄 Dune" 속 스파이스 멜란지. 향신료처럼 묘사된다.

이 귀한 스파이스는 오직 '아라키스'라는 사막 행성에만 생성되며, 이곳을 둘러싼 갈등의 서사가 "듄"에서 흥미롭게 그려진다. 여담이지만, 작중 '초암공사'는 스파이스 채굴 및 감독권을 쥐고 있으며, 이를 통해 막대한 부를 쌓는다. 공교롭게도 사우디아리비아의 석유 기업, '아람코'의 시총 순위는 미국 5대 기업 다음인 6위다.

빅 테크 5대 기업과 아람코 (출처: https://companiesmarketcap.com/)

권력을 향한 열망은 세월이 흘러도 쉬이 식지 않는다. 약 천년 전, 권력의 역학 구도가 흥미로운 사건이 있다. '카노사의 굴욕'이다. 이는 결코 일방적인 치욕이 아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는 성직자 서임권에 매우 예민했다. 그 당시에는 교황과 더불어 황제도 성직자를 임명했는데, 신성로마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는 성직자 서임권을 쥔 채 교황과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러나 종국에는 힘의 균형이 무너져 파면을 당하자, 그레고리우스 7세에게 항복을 한 것.


하인리히 4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차차기 교황인 우르바누스 2세를 압박한다.(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를 옹립한다.) 이에 교황은 클레르몽 공의회에서 십자군을 주창한다. 십자군을 통해 세속 권력의 창칼이 자신이 아닌 예루살렘을 향하게 된다. 우리가 왕왕 듣던 '십자군 전쟁'은 단순히 종교적 신념에 따라 순수하게 일어나지 않았다. 유럽 안팎으로 위협받는 교황권을 보호하기 위한 성격이 다분했다.


조선 중반부터 국정을 운영했던 '사림'들이 '이조전랑'의 직위를 두고 서인과 동인으로 분열한다. 이조전랑의 품계는 낮지만, 청요직인 삼사三司(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임명에 깊이 관여하는 자리다. 청렴을 요하는 자리이지만, 당쟁의 도화선이 되었다. 임진왜란 발발을 앞두고 일본에 사절로 갔던 서인 황윤길과 동인 김성일의 말이 달랐다.


스파이스, 석유, 서임권. 공교롭게도 'ㅅ'으로 시작한다. 사주 명리학에서 12 지지 중 '신申'의 물상物像은 거대한 '철'이다. 이 글자는 권력을 의미하기도 한다. 권력은 날카로우며 차갑다. '신'은 원숭이를 의미하기도 하는데, 침팬지의 서열 관계는 철저히 힘으로 정해진다.(https://www.youtube.com/watch?v=yU6Ji4VBwGc 디스커버리 애니멀 : 전사 유인원들의 진화)

12 지신 중 원숭이(신) 출처: 삼각산 도선사 홈페이지

'신申'은 서남쪽을 의미한다. 해가 지는 방향이며, 권력 있는 자가 유념할 방향이기도 하다. 서남쪽에 있는 해는 빨리 진다. 중국을 최초로 통일한 진시황의 진秦나라는 15년 만에 멸망했다. '스파이스를 지배한 자가 모든 것을 지배한다.' 폴 아트레이데스의 우주 제국은 얼마나 갔을까. 그는 과연 행복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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