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호원샘

철쭉이 아름드리나무 같다. 내 방에서 창문을 열면 이렇게 큰 철쭉이 있다. '아름드리'라는 말이 낯설어서 찾아보았다. 둘레가 한 '아름'을 넘는 것을 말한단다. 그럼 아름은? 아름은 두 팔을 둥글게 모아서 만든 둘레란다. 한국말은 어렵다. 겨울에도 이 철쭉을 보았는데, 잎사귀 하나 없는 철쭉의 모습이 어땠더라.


청소기를 밀다가 창문 너머를 보았다. 묘하게 흐린 날이었는데, 철쭉 왼편에만 햇빛이 걸쳤다. 특이 현상은 아니고 집 구조 때문에 그쪽에만 빛이 들어왔다. 그 환한 부분을 바라보는 것이 기분 좋아 카메라를 들었다. 카메라는 그 느낌을 전혀 담아내지 못했다. 나와 철쭉 사이에 철망이 있었고, 핸드폰 렌즈로는 빛을 다 쓸어 담지 못했다. 애매하니 철쭉으로 화면을 채웠다.


빛이 있으라. Fiat lux. 그러자 빛이 생겼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았다. 신마저 기분 좋게 한 빛인데 하물며 인간인 내가 아니 기쁠 수 있을까. 써놓고 보니 내가 스스로 뭔가 깨달았다는 듯이 들리지만, 결코 아니고 오늘 하루 특별히 기억나는 일이 없다.(소중한 일상에는 담담하게 감사하는 편이다!) 퇴근하고 잠시 퍼져 있다가 청소는 해야겠다 싶어 청소기를 돌렸다. 해는 지고 있었고, 벌건 철쭉이 눈에 들었다. 그림자가 드리운 철쭉에 햇빛은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빛이 있었고, 기분이 좋았다.


영화, <퍼펙트 데이즈>의 마지막 장면을 좋아한다. 지는 태양을 바라보며 웃으며 우는 그의 표정. 영화는 일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과 남우주연상을, 칸 영화제에서 남자 연기상을 수상했다. 뭉크의 <태양>을 살아서 꼭 보고 싶다. <절규>로 유명한 그의 진가는 '태양'에서 빛난다. 나와 그림 사이의 한없는 장막을 걷어내는 그 장엄함이란! 핸드폰의 매끈한 화면은 <태양>의 아우라를 가두지 못했다.


뭉크, <태양>(1913), 이미지 출처: https://www.ansantimes.co.kr/news/articleView.html?idxno=70071

이제 자러 갈 시간이다. 어제 다소 늦게 잤더니 피곤했다. 오늘의 진득한 여덟 시간 숙면을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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