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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아 Nov 14. 2024

윈터 이즈 커밍

<날아온 글> 여섯번째

눈사람과 새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불현듯 새하얗게 눈 덮인 풍경이 애타게 보고 싶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못 본다는 사실에 마음이 몹시 아리고 서운했다.


눈을 데려와. 눈아 내려줘.


눈을 감고 다시 차가운 겨울 공기를 가득 마셨다. 담배를 피워야겠어. 겨울엔 담배가 다섯 배는 더 맛있다.

작년 겨울엔 더없이 따뜻한 겨울을 났었는데. 작년과 같을 순 없어도 올해 겨울도 따뜻하게 보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세상이 냉해지면 지난 계절 동안 무던하던 마음속 특정 부위가 물렁물렁해진다. 그 느낌은 뭐랄까, 아늑하고 쓸쓸한, 미약하게 달달한 기분. 밤이 길어져서 그런 걸까. 스멀스멀 또 그 기분이 들어차나 봐. 짜친다. 우울에 절여져 숨이 다 죽어있던 무수한 겨울밤들이 떠오른다. 디테일하게 기억하지 못하지만 느낌만은 생생하게 남아있다. 혼자 지내던 방들. 침구들. 책상과 쓰레기들. 그것들과 겹쳐 보이는 오늘 날개집의 부엌과 거실 테이블. 이 집에 하나 있는 하얀 쓰레기통. 억억거리며 쓰레기를 겨우 삼키고 있는 애. 봉투 갈아줘야 하는데.


겨울엔 추워지나. 잠이 온다. 쿨쿨. 일주일에 하루 있는 휴일을 빌어 온종일 잠을 잤다. 13시간 넘게 푹 자고 일어나 밥을 먹고 또 낮잠을 잤다. 이불 속에서도 자고 빈백에서도 잤다. 추워서 깼다. 이제 날개집은 맨발로 다닐 수 없어졌다. 작년에 사 둔 수면양말을 신거나 패딩 슬리퍼를 신고 다녀야 발이 시리지 않은데, 실내화를 챙겨 신는 것은 은근히 품이 들어 수면 양말로 합의를 보았다. 한겨울엔 정말 심하게 추울 것 같아서, 거실에 두툼하고 튼튼한 러그를 깔고 예쁜 나무색 코타츠를 사는 게 어떻겠냐고 가장 날아에게 건의한다. 그러면 걔가 내일 출근해서 열심히 일하고 돈을 벌어와 주문해 주겠지. 지금 이렇게 글 쓰는 나는 올겨울을 덜 외롭게 보낼 궁리만 잘하면 된다. ‘사랑 존’ 처럼 기발한 거 뭐 없을까.


겨울에 특히 취약해지는 결핍 날아를 잘 돌볼 계략을 도모해 본다. 일단, 곧 다가오는 생일엔 빵집 ‘팔월’에서 커다랗고 맛있는 케이크를 사 먹이고 사랑 존을 새롭게 꾸미자. 눈이 오면 실컷 즐기도록 하고, 작고 귀여운 눈사람을 만들어야지. 뜨끈하고 찰진 솥 밥을 자주 지어 먹여야지. 겨울 바다는 세 번 이상 보여줘야 한다. 담배가 떨어지지 않게 할 것. 노래할 것. 최선을 다해 연결될 것. 부드럽고 따뜻한 것을 그려볼 것. 무엇보다 양껏 사랑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마감은 글을 쓰기 위해 반나절이나 마음의 예열을 해야 했어요. 모두가(저조차도) 게으름이라고 오해하는 그런 시간을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호합니다. 다들 겨울 준비는 어떻게 하고 계시는지 궁금해요. 우리 함께 겨울을 잘 나 보아요. 다음 주에 새로운 글로 찾아올게요!


메일리에서 연재중인 <날아온 글>의 여섯번째 글을 브런치에도 공유해요. 뉴스레터를 구독하시면 하루 일찍 글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메일리 링크를 남겨둘게요. 

<날아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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