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글> 다섯번째
안녕하세요,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당신이라면 기꺼이 제 이야기를 궁금해할 것 같아서 무턱대고 안부를 전해요. 오늘 밤은 구름이 많은지 별이 잘 보이지 않았어요. 달도 자취를 감췄어요. 마치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 하늘을 오래 쳐다봤어요. 무언가 나타나 주길 기다리는 사람처럼 앉아 있었어요.
날개집은 ‘도로 끝’에 지어진 벽돌집이에요. 이 집 뒤에는 낮은 산이랑 학교 운동장, 작은 밭이 있어요. 그래서 집 앞 테라스 의자에 앉아 있으면 필연적으로 무언가 끊임없이 다가오는 광경을 목격해요. 날개집으로 들어오는 길은 좁고, 구불거리고, 약간 오르막이라서 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차, 개, 사람이 빼꼼 조그맣게 나타났다가 점점 다가와요. 나는 그곳에서 내가 아는 얼굴들이 나타나고 다가오는 상상을 해요. 무척 반갑고 행복할 거예요. 그런 상상을 하면서 저도 모르게 웃고 있더라고요. 이런 게 그동안 요원하던 마음에 난 여유겠죠. 일상의 사랑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즐거운 거요.
공기가 차가워졌어요. 이제 정말 겨울이 오나 봐요. 파주는 춥잖아요. 여름은 다른 곳이랑 공평하게 더운데 겨울은 불공평하게 추운 곳이에요. 그런데 저는 이 집에서 맞는 첫 겨울이 기다려져요. 테라스에 눈이 쌓이면 맨발로 걸어보려고요. 꽁꽁 언 발은 코타츠 안에서 녹이고요. 새콤달콤한 귤을 까먹으면서 책을 읽을 거예요. 읽다가 이야기가 떠오르면 글을 쓸 수도 있겠어요. 아, 제가 그 이야기 했던가요. 날개집은 사우나세권이라서 걸어서 오 분 거리에 근사한 사우나가 있거든요. 홍삼탕도 있어요. 겨울이 오면 그곳에 자주 갈 것 같아요. 날개집에 놀러 오는 날 함께 가요. 우리 텀블러에 시원한 음료를 담아 챙겨가요. 한 모금 머금고 열탕에 몸을 담글 때 피어나는 은밀한 기쁨을 공유하고 싶어요. 저는 탕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사는 일이랑 닮았다고 생각해요. 탕에 들어가기 전 마음을 가다듬는 순간, 첫 발을 넣는 순간, 그 안에 풀썩 앉고서 속수무책으로 온도와 동화되는 순간, 언젠가 그곳에서 나와야 하는 것, 언제든 앞의 것들을 다시 할 수 있는 것도요. 무엇보다 목욕을 마치고 처음 바깥바람을 맞는 순간 새로 태어난 것 같아요. 그게 희한하게 위안이 돼요.
사람과 섞여 살아야 한다는 말이 부담스러웠던 몇 년이 있었어요. 지금은 사람 없이 못 살 것 같아요. 그 몇 년 사이에 ‘함께 존재’하게 되어서예요. 애인들이라고 불러도 스스럼없는 이들, 떠올리면 무척 애틋해서 오늘도 잘 지냈길 바라는 이들, 같이 글 쓰고 싶은 이들의 존재가 소중해져서 그런 마음이 되었어요. 아, 저는 이제 예전처럼은 외롭지 않아요. 신기해요. 요즘은 문득 마치 어떤 이야기의 해피엔딩에 머무르고 있다는 기분이 들 때가 있어요. 가령 날개집 창을 서성이면 흙 향이 진하게 올라오거든요. 그 향이 참 구수하고 포근해요. 고요한 밤엔 이어폰을 끼고 옥상에 올라가서 별을 보며 춤을 춰요. 팔과 다리를 휘저으며 몸으로 가볍게 리듬을 타다가 빙그르르 돌기도 하는 막춤인데요, 춤을 추다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고인 적도 있어요. 왈칵 기뻐서 당황스러웠어요.
사는 게 이럴 수도 있는 거구나 싶어요. 제 존재가 선명한 날들에 살고 있어요.
저는 잘 지내고 있어요. 또 편지할게요. 사랑해요.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여러 얼굴들을 떠올리며 쓴 서간문을 가져왔어요. 수신인을 밝혀요. 살아가는 소중한 사람들을 ‘살이’라고 이름 붙여보았어요. 독자분들에게 편지가 잘 도착했길 바라요. 잘살아 보자는 마음으로 꾹꾹 사랑을 담았습니다. 다음 주에 새로운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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