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글> 세번째
‘구름…. 그래. 나는 지금 구름을 안고 있는 거야….’
웅얼웅얼 거리며 눈 뜨기를 미룬다. 방안의 쾌적하고도 서늘한 공기의 온도와 온열매트로 뜨끈한 이불 속 온도가 기가 막히게 조화로운 요즘의 아침. 노란색 체크무늬 이불을 꼭 끌어안고 밍기적 거리는 시간이 아주 달다. 눈을 떠 창밖 하늘이 얼마나 파란지 보다가 그 아래 나무도 봐준다. 그러다가 아주 짧게 현재를 자각하는 시간을 거친다. 오늘은 회사와 노동을 약속한 날이고, 나는 곧 생계노동을 위해 몸을 일으켜야 하며, 나에게 주어진 아침 시간은 몹시 짧다. 지금 밍기적 거릴수록 더 짧아지고 있다…. 라는 박한 사실의 자각. 그것을 받아들이고 몸을 일으켜 앉는다.
보드라운 이불을 꼭 쥐고 있던 손이 딱딱하고 네모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시간을 확인하자 정말 이불에서 나와야 했다. 일어나서 이불을 정리하고 엄지발가락으로 온열매트 전원을 꾹 눌러 끄고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 나왔다. 어젯밤과 그대로인 거실의 풍경을 하나하나 눈에 담으며 서서히 정신을 차린다. 누워서 책 읽느라 구겨진 갈색 빈백의 모양새, 그 위로 늘어진 곰돌이 담요, 식탁 위에 노트북과 물컵, 그 옆에 둥글게 네모 납작한 파란색 블루투스 스피커. 아침의 선곡엔 성의를 들이지 않는다.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동안 자주 들은 곡 위주의 추천 리스트 중에 아무거나 재생하고 한 곡 단위로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면서 출근 준비를 빠르게 마치고 가방을 챙겼다. 점심으로 먹을 냉동 삼각김밥 하나, 지갑, 담배 파우치, 차 키, 에어팟. 모두 확인하고 현관을 나와 테라스로 향했다. 이곳 테라스에는 초록 의자 두 개와 세트로 구매한 초록 테이블, 노란 트롤리가 있다. 테이블 위에는 친구 보가 선물해 준 장미 허브 로빈과 유리 재떨이가 있다. 유리 재떨이는 본래 향초 패키지였는데 뚜껑까지 세트로 있는 것이 재떨이로 쓰기에 딱이라 새로운 쓰임을 찾은 것이다. 로빈에게 속으로 아침 인사를 건네며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앉아서 하늘을 보며 담배를 꺼냈다. 이 시간을 사수하려고 조급하게 출근을 준비했다. 이 5분 남짓의 시간을 촘촘히 누릴 것이다.
*
날개집에 살기 시작한 지 두 달 만에 백수가 됐었다. 파주에서 얻은 첫 직장에서 두 달 만에 잘리고 오래 관계를 유지하고 싶던 사람과 멀어졌다. 정신 차릴 새 없이 계획에 없던 한 달을 맞이했다. 초보 백수 가장은 너무 크게 당황해서 되려 침착하게 스트레스를 삼키며 다음을 도모하느라 마모되어 가는 자신의 소중한 부분을 돌보기 싫었다. 그때 내 수중에는 소진 임박의 여윳돈과 대출이자, 계약된 날개집에서의 2년, 반려 슬픔과 고통만이 사실이고 다른 소중한 것들은 또 언제든 사라질 것이 분명해서 내가 가진 것이라고 여길 수 없었다. 반면 거실 미닫이 유리문만 열어도 펼쳐지는 탁 트인 하늘이라던가 코를 뚫고 들어오는 상쾌한 공기, 아랫집 검은 개 똘이가 짓는 소리, 나의 독립을 응원하고 축하하는 친구들과 편지들이 날 돌봤다. 그리고 이렇게 혼자 앉아 있는 시간도. 그 한 달을 지나는 동안 날개집 이곳저곳에 몸을 붙이고 부비며 숨을 쉬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렇게 한 달 만에 다시 *취뽀하고 생계노동을 시작할 수 있었다.
*
여기 앉아서 하늘을 본 시간이 만든 변화인 것인지, 생계노동 가야 해서 자꾸만 일어나는 마음의 역정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러려고 그런 건 아니고, 그럴 줄은 몰랐는데 신묘하게도 역정이 점점 소박해졌다. 요즘은 아예 희미해진 것도 같다. 치사한 세상은 노력해도 그냥 주는 법이 없다는 진리를 오롯이 체화한 상태에서, 가끔 이런 걸 누리기 위한 고된 생계노동에 동의가 되는 순간들을 만난다. 사실 더 기껍게 노동하며 지내고 싶어서 ‘날아온 집’ 연재를 시작하기도 했다. 연재를 시작한 건 적극적인 셀프 돌봄이기도 하다. 잘살아 보려고 용기 내어 한 선택이었다. 이렇게 다섯 달 정도 지내보니 놀랍게도 행복한 것도 같다. 사는 거 흥미롭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담배를 거의 다 피웠다. 여전히 하늘을 보고 있다. 아침과 밤에 매일 보는 풍경이지만 매번 새롭게 아름답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다 태운 꽁초를 유리 재떨이 안에 쏙 넣고 뚜껑을 닫는다. 오늘을 잘살아 보자는 기분이 되어 털고 일어난다. 이만 출근해야지.
*취뽀 : 취업 뽀개기. 취업에 성공했다는 의미의 속어.
☀︎ 안녕하세요, 날아입니다! 오늘도 레터를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이번 글은 아침 풍경을 쓰다가 자연스레 노동 이야기로 흘러가게 되었어요. 노동의 쓸모와 의미를 셀프 돌봄과 삶과 연결해 보며 지내는 하루하루입니다. 독자분들의 아침 풍경과 노동도 궁금해져요. 좋은 날 되세요. 저는 다음 주에 새로운 글로 찾아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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