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아온 글> 첫번째
‘나 존나 4년 안에 다시 서울 산다.’
아프고 돈 없던 애가 2022년 겨울, 미약하게 다짐했다. 비극적으로 본가에 전출되어 복대를 찬 채로 책상에 꾸역꾸역 앉아 4년간 벌어낼 돈과 남은 기간을 계산해 검은 매직으로 꾹꾹 눌러 적으며 생각했다.
‘아 시발, 이 돈을 어떻게 벌지.’
그렇다. 나는 역시 그때 꾹꾹 눌러 적은 금액을 모으지 못했다. 오늘은 24년 9월. 그 미약하고도 질긴 다짐을 한 지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서, 나는 서울이 아닌 파주 시골에 집을 얻어 지난주에 다섯 번째 월세를 냈다. 이제 한 살 된 작고 귀여운 자동차 나동이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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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지, 적고 나니 독립하기까지의 대 서사를 좍좍 써 내려가야 할 것 같아 글이 막혔다. 쓰는 나도 읽는 이도 지루할 것이 틀림없으니 그러고 싶지 않다. 물론 겪은 일, 써낼 일 가득하지만, 이 뉴스레터의 성격은 ‘가볍고 재밌게’라고 정했기 때문에 일단 지금 통과하고 있는 소소한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 시작하고 싶다. 아직 몸과 마음이 아팠던 시간의 감각이 은은하게 함께하는 중이다. 2024년, 올해 여름의 더위는 지독했는데, 추석이 지난 오늘 오후까지도 몹시 후덥지근했다. 그런데 퇴근할 때쯤부터 계속 비가 내리더니, 해가 저물자 으슬으슬 추워졌다. 날씨가 손바닥 뒤집듯 바뀌었다. 사는 일은 이렇게 자꾸 뭔가 뒤집히고, 타이밍을 예상하지 못하고, 그래서 계속 놀라고 쫄게 되는 일이었다. 안정과 안전이 실은 허황된 바람이자 믿음이라는 걸 자꾸 까먹고 매번 되새기게 되는 일. 그리하여 이 시발 세상아.. 넌 정말 왕 치사빤쓰 똥빤쓰다..를 외치거나 속으로 삼키게 되는 일. 길게 이어지는 불행에도 생각보다 자주 있는 행복에도 도무지 의연해지지 않는 일. 안락한 슬픔이나 생경한 온기를 겪는 일이었다. 그 삶의 디테일을 기록하는 것을 잘 사는 것으로 여기던 참이다.
아무 청탁도 받지 않았지만 멋대로 시작하는 셀프연재는 어떻게 꾸려가면 좋을까 생계노동의 피로 뒤에 숨어 여러날을 고민했다. 미루고 싶지 않을때까지, 시작 할 마음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 덜컥 시작하지 못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분명 구릴텐데 어떡하나. 아무도 안 물어본거 떠들다가 머쓱해지면 어쩌지. 그리고 무엇보다 성실하게 마감 지키는 것 내가 해낼 수 있을까. 그러니까, 불성실하고 생각도 짧고 아는게 많이 없는것만 드러나게 되는 것 아닐까. 와 같이 질문만 다르고 결은 같은 고민들이 떨쳐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하는 데에는 또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일단 지면이 아니기 때문에 나무에게 미안하지 않아도 된다. 그리고 구려도 귀여울것이라고 대충 믿기로 했다. 나는 허접해도 나와 함께해준 관계와 사람들은 결코 허접하지 않으니까. 나는 구려도 버텨낸 힘과 견뎌낸 시간은 대단했으니까. 그 존재들이 나의 등을 밀어주니까. 일단 가볍고 재밌게 쓰고, 그려보려고 한다.
메일리에서 연재를 시작했어요. 매주 월요일 밤 글과 그림을 보내드려요. <날아온 글>의 첫번째 글을 브런치에도 공유해요. 메일리를 구독하시면 하루 일찍 글을 만나보실 수 있어요. 메일리 링크를 남겨둘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