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을 보며 생각하는 사과와 용서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영화와 책에도 공통적으로 나오는 명대사라고 하는 부분이에요. 저도 처음엔 김희애의 연기에 몰입되면 맞는 말이야 했어요. 하지만 상담전화를 받거나 개인적으로 듣게 되는 피해자 부모의 말은 달랐어요.
"사과할 줄 알았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사과하지 않았어요. 잘못했다고 생각하지 않나 봐요." 라며 분노해요. 그래서 시간이 지나면 오히려 화해도 용서도 어려워요.
반대로 "바로 찾아와서 미안하다고 하고 병원비도 내주니 같은 아이 키우는 부모로 이해하고 넘어갔어요."라고 하거든요.
또 이런 경우도 있었어요. "전 용서할 마음이 없는데 사과를 자꾸 해요.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됐어요." 피해자 어머님의 말씀이었어요.
"사과를 언제까지 해요? 전 계속했어요."라고 하는 가해자 부모님도 있었어요. 그럴 땐 제가 이야기해요. "사과는 하실 수 있어요. 하지만 용서는 그분이 하시는 거고, 사과를 받고 안 받고도 그분이 하시는 거예요. 내가 사과했으니 끝이라고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라고요.
어떤 사람과 상황이냐에 따라 다르기에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전 사건이 생기면 바로 사과하라고 해요. 시일이 지나면 사과에 대한 진정성이 받아들여지지 않아요. 이리저리 재면서 하는 사과는 사과가 아니에요.
이번 글에서 영화와 책의 줄거리는 소개하지 않았어요. 영화배우들, 배우의 역할 이런 것도 이야기하지 않으려 해요. 제가 쓰려는 것은 학교폭력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에요. 이번엔 그래서 '사과와 용서'에 맞춰봤어요.
명대사라고 많이 알려진 부분인데 한쪽만을 보면 안 되는 것도 있고 혹시라도 그것만을 보고 잘못 받아들일까 싶었어요. 어느 한 사람의 사례만을 가지고 모든 것을 판단하면 그것이야말로 '일반화의 오류'거든요. 사회적으로 민감한 내용을 소설로 만들면 작가의 상상력과 표현으로 본질을 다루지 못할 수 있더군요. 소설도 그래서 사전조사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어요. 사람들은 소설이지만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삶에 적용시켜 생각하면서 읽어요.
물론 소설을 다큐처럼 쓸 수는 없을 테고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도 없는 건 당연해요. 어쩌면 제가 학교폭력 당사자였고 지금도 상담을 하며 피가 해, 목격자까지 모두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예민하게 반응하는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민감한 내용일수록 감정적 접근은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라 정확한 근거에 기인한 소설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우아한 거짓말>은 키워드를 정해 몇 개의 글을 더 쓰려고 해요. 오늘은 첫 글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