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대면하는 우리의 태도 07
장례식이 끝난 후.
화장터에 가서 화장을 하고,
할머니를 파주에 북한 주민들을 위한 공원에 묻었다.
그리고 49제를 하게 된다. 매주 안양에 있는 절에 갔다.
독실한 불교 신자는 아니었는데, 계속 절을 하고, 계속 불경을 외우니까 편해졌다.
그러면서 할머니에 대한 생각도 할 수 있었다.
이 시절엔, 나는 재수를 하고 있었다. 그래서 온전히 할머니를 슬퍼할 수 없었다.
인생에서 가장 공부를 열심히 했던 시기였다.
잘 모르겠다.
할머니도, 엄마처럼 사라지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한건지.
아니면, 상황이 나를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건지.
어쨌든 그렇게 할머니는 사라져갔다.
할머니가 쓰던 방은, 아빠가 쓰기 시작했다.
아빠가 그곳에서 주무셨다.
아빠의 방은, 아빠의 서재가 되었다.
그렇게 할머니는 사라지는 듯 싶었다.
할머니가 사라진 후, 집 근처에 사시는 작은 고모가 자주 오셨다.
아빠는 작은 고모에게 생활비를 드리며, 집 생활을 부탁하셨다.
작은 고모는 할머니와 마찬가지로 음식 솜씨가 좋으셨다.
할머니의 요리는, 작은 고모의 요리로 바뀌었다.
이젠, 당분간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다.
이젠, 내 앞길만 잘 살면, 될 줄 알았다.
한편으론 그런 불안도 있었다.
아빠가 돌아가시면 어떡하지?
하지만 애써 외면했다.
그럴리가 없어.
아빠는 그럴리가 없어.
만약에 그런 일이 있다면,
아니야.
생각도 하기 싫었다.
내 삶은 아빠와 함께 존재했고
아빠가 없는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아빠와 밥을 함께 먹고
여행을 함께 다녔고
함께 문화생활을 즐겼다.
그러니까, 아빠가 없는 삶은 없었다.
이 삶이 계속 되어야 했다.
너무도 큰 소원이었을까.
그 희망은 무너져내린다.
2019년 2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