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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듬 Aug 18. 2023

미니멀리스트로 여름 나기

탁상용 선풍기로 더위를 견뎌내다

곧 올해의 여름이 끝난다. 처서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무더위는 물러가고 선선한 바람이 불게 될 것이다. 이번 여름은 선풍기를 끄고는 잠시라도 못 견딜 만큼 더웠기에 선풍기 덕에 무사히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에어컨도 무더위에 좋은 선택이지만, 오염되어 더욱 뜨거워질 대기를 생각해 보면 그 선택이 내게 마냥 유익할 것 같지는 않았다. 오래된 에어컨의 전기세가 걱정이기도 하고, 비염 환자에게 에어컨은 즉시 코를 막히게 해주는 효과가 있어 장시간 틀어두지 못한다는 이유도 있다. 그래서 너무 습하거나 뜨거울 때에만 에어컨을 최소한으로 틀고 대부분의 날들은 선풍기를 사용했다.


세상에는 좋은 선풍기도 참 많다. 회전형, 무선형, 리모컨형, 블루투스형, 접이식, 날개 없는 선풍기까지. 그렇게 편리한 기능으로 무장하고는 자신이 내 생활에 꼭 필요한 존재라는 듯 과장하며 현혹한다. 그러나 회전형을 가진 후엔 무선형이 가지고 싶어질 것이고 그다음엔 리모컨이 필요해질 것이다. 그런 식으로 욕망은 무한히 증식하게 되며 심해지면 삶을 좀먹기까지 한다.


기술의 발전은 양날의 검 같다. 기술 자체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진보하지만, 발전된 기술을 사용하는 사람은 퇴보하기도 한다. 활동량이 더 적어지거나, 편리함에 되려 지배당하는 것처럼 말이다. 최신 기술은 언제나 놀랍고 경이롭기까지 하지만 삶에 긍정적인 영향만을 선사하지는 않는다. 물질적 풍요가 넘쳐흐르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에겐 자신이 필요로 하는 물건이 무엇인지 선별해 내는 능력이 필요하다.



내가 쓰는 선풍기는 가족 중 한 명이 어디선가 받아온 탁상용 선풍기다. 아무도 사용하지 않아 구석에 박혀있던 걸 발견한 후로부터 계속 사용하고 있다. 대학교 로고가 떡하니 새겨져 있어 스티커를 붙여 가렸더니 방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 마음에 든다. usb 선으로 연결할 수 있어 노트북 옆에서도, 침대 맡에서도 쓸 수 있다. 작지만 옹골찬 친구다.


이 선풍기는 수동으로만 각도 조정이 가능한데, 회전이 안되니 오히려 더 시원하게 바람을 즐길 수 있다. 선풍기가 끄고 싶어 지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본체 뒤에 있는 버튼을 눌러야 하지만, 그 과정이 묘하게 웃기고 즐겁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렇게나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선풍기를 꺼야 하다니. 시대를 역행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손 하나만 까딱하면 훨씬 시원하고 자동 회전과 시간 예약도 가능한 선풍기를 주문할 수 있다. 그럼 내 몸을 좀 더 편하게 만들어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 생각을 안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커다란 선풍기가 내 방에 들어와서 한자리를 차지하게 되고, 또 그 선풍기를 관리해줘야 하고, 질리거나 망가지면 처분해야 하는 일련의 과정을 생각하자면 벌써부터 골치가 아프다.


나는 나를 자유롭고 편하게 만들기 위해 일종의 억압을 하고 있다. 물건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물건을 들일 때까지 심사숙고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다시는 물건에 잡아먹히는 삶을 살고 싶지 않다.



이 작은 선풍기는 꽤나 시끄럽고 번거롭지만 고맙고 귀여운 존재다. 이렇게 내가 가진 완벽하지 않은 물건 하나를 아끼게 된 지금이 그럴듯한 물건을 잔뜩 가졌던 과거보다 더 풍족하다. 무언가를 끝없이 욕망하며 반복되는 굴레는 현재의 나를 가지지 못한 상태, 부족한 상태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런 형태의 욕망은 죽을 때까지 결코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가진 것을 아끼고 사랑하며 절제된 태도가 안겨주는 풍요를 오래도록 누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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