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가슴에 대 못이 박힐 코로나 시대의 그날 이야기...
정말이지 필자를 참 사랑해 주셨던 할머니가 계셨다.
아이에게는 증조할머니가 되신다.
할머니께서는 결혼 후 아기가 없었던 기간에 아기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항상 표현을 하셨다.
그뿐만 아니라 정성 어리게 자주 기도를 하셨다.
하지만 아이가 생기는 것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일이고 누구보다 원하는 일이었지만 그 의중에 속 시원히 답을 드릴 수가 없었다.
그러던 도중 아이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고 할머니께 전했을 때 당연하겠지만 누구보다도 기뻐하시고 좋아하셨다.
그런데 세상이 이상하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외출과 만남 자체가 시간이 갈수록 제약이 많아졌다.
그 제약이 극에 달했을 즈음에 아기가 태어났다.
하지만 할머니도 아이도 서로 얼굴을 볼 수 없었다.
병원은 산모를 돌볼 수 있는 단 1명의 보호자 외에는 면회를 제한했다.
양가의 부모님도 갓 태어난 아기를 볼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예전 같으면 이 축복을 충분히 함께 할머니와도 나눌 수 있었을 텐데.
누구보다도 아기에게 사랑하는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건네셨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할머님도 아이를 보고 싶으신 마음을 참아 내셨다.
당신 스스로 아직 신생아인 아기를 위해 만남을 미루시기도 하셨다.
찾아뵈었을 때 아이의 얼굴을 사진과 동영상으로 보시던 그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아기는 아기대로 만남을 기다리던 도중에 갑자기 심장마비로 돌아가신 것이다.
그렇게 할머니의 기다림도 자연스레 끝이 났다.
어린아이를 가는 길이라도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에 잠깐이었지만 중무장을 시켜서 장례식장에
잠시 아이를 데려왔다.
그리고 아기의 작은할아버지나 고모 할머님 등 어른들이 계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장례식에 데려가는 것도 정말 용기가 필요했고 일부 지인들은 아이와의 동행을 극구 만류했지만 할머니의 기다림을 누구보다 잘 알았고 이때가 아니면 이 시기에 아이와 집안 어른들 모두가 만나는 것이 어려운 일이다 판단했다.
하지만 아이가 처음 만나는 모든 어른들인데도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그는 물론 아이를 잠깐이라도 보려 하면 되려 마스크를 고쳐 쓰고 아이를 만났다.
잠시 나마라도 인사를 나누고 교감을 시켜 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여기저기서 찾아오신 반가운 친지분 들 일부는 아이를 위해 대면을 피했다.
아기의 시선에서는 반절 이상 가려진 눈 맞춤뿐인 세상에서 제일 사람과 많이 만나는 시간이었을 게다.
글을 쓰면서도 몇 번을 멈추었다 다시 쓴다.
죄송하고 죄송하고 죄송한 마음뿐이라서 아직 필자의 눈엔 모니터가 뿌옅다.
시간은 흐른다.
꽃은 피고 진다.
언젠가 이 지겨운 시기도 지나갈 것이다.
코로나 시기 어렵게 아기를 기르고 있는 부모님들과 태어난 아기들의 건강과 안녕을 바란다
그리고 진심의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