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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필 Aug 22. 2020

독일에서 생에 첫 축구 경기를 관람하다

뮌헨의 중심에서 토트넘을 외치다

독일에서 축구 관람하기




나는 축구를 좋아하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운동신경이 꽝이었던 나는 축구를 포함한 다른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구를 마지막으로 해본 게 아마 초등학교 4학년 일 때였나? 나는 페널티킥이 뭔지, 오프 사이드가 뭔지 축구경기의 룰 조차도 모른다. 연히 축구를 경기장에서 직접 본 적도 없을뿐더러 TV로도 잘 보지 않는다. 월드컵은 나에겐 그냥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축제 일 뿐이었다. 축구를 보며 욕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듯한 관중들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축구 이긴다고 뭐 달라지는 것도 없는데, 왜 저렇게 열광하지?". 난 축구보단 차라리 조용한 바둑이나 수영 같은 스포츠를 좋아하는 편이다. 맞다. 난 어려서부터 좀 남다른 아이였다.


뮌헨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 (Allianz Arena)


이런 나에게 독일 생활 중 축구 경기를 보게 될 일이 생겼다. 무려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 상대팀은 우리나라 손흥민 선수가 소속돼있는 토트넘이었다. 독일 축구를 보러 가자고  제안한 건 독일에 놀러 온 누나였다. 처음엔 내키지 않았다. 난 축구 룰을 몰라 가봤자 별로 재미가 없을 거 같았다. 그런데 누나가 독일에 왔으면 시원한 맥주와 함께 경기장에서 축구경기를 꼭 봐야 된다고 우겼다. 독일 여행의 꼭 해봐야 할 5순위 중에 하나라나? 그래 독일에 온 김에 이것저것 경험하면 좋지. 게다가 축구 티켓값은 누나가 산다고 했다. 물론 이게 내가 축구경기를 보러 가기로 결심한 큰 이유이기도 했다. 가난한 유학생에겐 돈은 항상 옳으니까.


아레나 멤버십 카드


축구 티켓을 구매하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뒤졌다. 토트넘과 바이에른 뮌헨의 경기, 특히 홈경기라 그런지 티켓값이 어마어마했다. 게다가 티켓을 구매하려면 먼저 경기가 개최될 뮌헨의 홈 경기장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에 따로 멤버십을 등록해야 했다. 멤버십 등록값만 70유로가 넘는다. 가격이 쌔긴 하지만 돈은 내가 내는 게 아니니깐. 이 가격에도 자리가 남은 게 별로 없는 걸 보면 독일인들의 축구 열기는 정말 엄청난 거 같다. 결국 연속된 3자리를 찾지 못해 누나는 따로 앉고 나랑 사촌동생만 같이 앉기로 했다.


뮌헨(München)으로


축구경기를 보러 뮌헨으로 향했다. 기차로 가면 더 편했겠지만 그때 당시 한국에서 오는 누나랑 프랑크푸르트에서 만나기로 했기 때문에 프랑크푸르트에서 FLIX 버스를 타고 뮌헨으로 향했다. 버스시간은 무려 6시간이었다. 뮌헨에 도착하고 보니 어느덧 밤이 됐다. 경기는 다음날 밤이었기 때문에 호텔에서 하룻밤 자고 다음날부터 뮌헨을 둘러보기로 했다.


마리엔 광장에 위치한 바이에른 팬 샾


다음날 아침 뮌헨 경기를 보기 위해 축구 응원용품들을 쇼핑하러 시내에 나갔다. 바이에른 뮌헨 샾은 뮌헨 중앙역, 마리엔 광장 곳곳에 즐비해있다. 특히 마리엔 광장에는 바이에른 뮌헨 굿즈만 아니라 다른 팀 용품도 팔기 때문에 마리엔 광장의 축구 굿즈 샾으로 향했다.


뮌헨의 중심에서 토트넘을 외치다


나는 바이에른 뮌헨보다 손흥민 선수가 소속된 토트넘을 응원하기로 했다.  뮌헨 토트넘 둘 다 팬은 아니지만 그래도 토트넘엔 손흥민 선수가 뛰고 있으니까. 이역만리 타국에서 애국을 실천해야지. 얀색에 토트넘 마크가 새겨진 옷을 입고 경기장에 가기로 했다. 무려 바이에른 뮌헨 홈 경기장으로. "너 뮌헨 사람한테 까이는 거 아니야?". 한국에 있는 친구에게 말했더니 친구가 장난스레 답장이 왔다. "허허 독일 사람들은 항상 차분하고 쉽게 흥분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하얀 유니폼을 입고 경기장인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로 향했다. 경기장으로 가는 지하철에는 빨간 바이에른 뮌헨 굿즈를 입은 독일인들로 북적북적했다. 이 중 하얀색 토트넘 유니폼을 입은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사람들이 힐끔힐끔 쳐다보는 게 느껴졌지만 역시 타고난 관종끼 때문인지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혼자 있었으면 수다 떠는 걸 좋아하는 독일인들 특성상 나에게 말을 걸었겠지만 같이 온 일행 덕분인지 조용히 눈인사만 하고 지나쳤다.



알리안츠 아레나(Allianz Arena)는 굉장히 컸다. 총 6만 6천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다고 한다. 뮌헨 경기에 맞춰 경기장 전체가 빨간빛으로 뒤덮였다. 경기장 앞에서 사진을 찍고 들어가려고 하는데 앞에 몸수색을 하는 경호원 한 명이 토트넘 팬이냐면서 말을 걸어왔다. 온통 빨간 유니폼으로 가득한 경기장에 당당하게 하얀 토트넘 옷을 입고 들어가는 내가 신기한 모양이다. 익살스럽게 토트넘 팬은 오늘 경기에 실망할 테니 몸수색 필요 없이 그냥 들어가라고 했다. 덕분에 귀찮은 검사 필요 없이 바로 입장했다. 땡큐 토트넘!


참고로 원래 독일인들은 동아시아 사람들은 사고를 치지 않는다는 인식 덕분에 귀찮은 몸수색이나 검사 같은걸 잘 하지 않는다.


바이에른 뮌헨(Bayern München)의 홈경기


경기장에서 마시는 맥주 한잔


경기 시작에 앞서 경기장 내에 있는 바이에른 뮌헨 샾에 들어갔다. 독일 내에서 가장 큰 뮌헨 굿즈 샾이다. 구경을 하다 반은 토트넘, 반은 바이에른 뮌헨이 그려진 축구 머플러를 발견했다. 토트넘과 바이에른 뮌헨 둘 다 팬이 아닌 딱 나를 위한 머플러 같았다. 둘 다 응원하고 싶거나 둘 중 아무도 응원하고 싶지 않은 이도 저도 아닌 사람들을 위한 머플러를 같았다. 머플러를 구입하고 축구 경기를 구경하며 마실 맥주를 구매했다. 여기는 맥주 구매도 알리안츠 아레나 멤버십 사람들한테만 판매한다. 알리안츠 아레나 멤버십에 금액을 충전해 구매하는 방식이다. 부랴부랴 이도 저도 아닌 반반 머플러와 맥주를 들고 경기장에 들어갔다.


토트넘  골대 뒤에 휘날리는 바이에른 뮌헨 깃발들


경기가 시작돼자 관중석에서 커다란 깃발과 함께 바이에른 뮌헨의 응원가가 흘러나왔다. 확실히 홈경기라 그런지 뮌헨 측의 열기가 엄청났다. 관중석을 아무리 둘러봐도 토트넘 팬이나 깃발은 보이지 않았다. 온통 빨간색뿐. 설마 토트넘 팬은 나밖에 없는 거 아니겠지? 한 가지 특이한 건 토트넘 골대 바로 뒤 관중석에 커다란 바이에른 뮌헨 깃발들을 든 관객들이 있다. 이거 토트넘이 기죽어서 골을 넣을 수 있으려나.


선수들의 모습이 생생하게 보인다


경기석에서 수들이 뛰는 모습, 말하는 소리, 공을 차는 소리까지 생생하게 들렸다. 집에서 보던 중계 경기와는 다르게 마치 내가 저들과 같이 뛰는 선수 같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비싼 돈을 주고 축구 경기를 보러 오나 보다. 저 멀리 토트넘 선수 대기석이 보인다. 저 멀리 손흥민 선수가 앉아있는 게 보였다. 나는 손흥민 선수를 볼 수 있지만 손흥민 선수는 많은 관중들 사이에 껴있는 날 볼 수 없겠지. 아마 손흥민 선수에게 이쪽은 그저 많은 관중들 중 하나로 보일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커다란 태극기라도 가져올걸.


축구에 진심인 독일 사람들


선수가 골을 넣으면 캉캉 노래가 흘러나온다


전반전 중반쯤 가자 바이에른 뮌헨 선수가 골을 넣었다. 골을 넣자마자 "캉캉" 노래가 흘러나오며 관중들이 가지고 있던 머플러를 모두 벗어 흔들고 있다. 이후 캉캉 노래가 끝나면 관중들이 골을 넣은 선수의 이름을 3번 외쳐준다. 이는 축구 경기뿐만 아니라 다른 TV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는 장면인데 독일에서는 누가 뭘 성공했을 때 그 사람의 이름을 3번 복창해준다. 왜 그런지는 나도 모르겠다. 반면 경기가 토트넘 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될 때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진다. 역시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답다. 토트넘 응원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관중들 앞에서 기죽지 않으려고 죽자 달려드는 토트넘과 홈경기에서 패배하지 않으려고 하는 바이에른 뮌헨. 홈경기의 묘미가 바로 이런 게 아닐까? 그 어느 축구 경기보다 열기가 뜨겁다.


3:1로 끝난 축구 경기


경기는 3:1로 바이에른 뮌헨의 승리로 끝났다.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독일인들이 서로 모여 욕을 하는 걸 들었다. 아마 바이에른 뮌헨의 홈경기에서 토트넘에게 1골을 먹힌 게 분했나 보다. 평소엔 그렇게 조용하고 차분한, 일명 엄근진이자 노잼이라 불리는 독일인인데. 그런 상스러운 말들을 하는 거 보니 이 사람들 정말 축구에 진심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인들은 평소 조용히 살며 삭혔던 것을 맥주축제와 축구에 푼다는 말이 맞는 거 같다. 나는 뭐 원래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아서 아직까지 축구에 그렇게 울분을 토할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이번에 생에 첫 축구 경기를 보고 나서 어느 정도 이해가 가기는 했다. 직접 보는 그 열기가 마치 내가 그 팀에 속해있는 거 같은 소속감을 느끼게 했다. 독일에서는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 보다 많은 경험을 하고 돌아가기로 했는데 이번에도 해낸 거 같다. 독일에서 생에 처음 보는 축구경기, 아마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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