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문필 Jan 09. 2021

리기산 정상에서 라면을 먹다

스위스 루체른(Luzern), 리기 산(Mt.Rigi)

대자연의 품으로, 루체른(Luzern)



루체른 호수 앞에서

취리히를 떠나 누나와의 마지막 여행지, 루체른으로 향했다. 도시가 아닌 진짜 알프스 풍경을 찾아서. 오늘은 알프스의 하나인 리기산에 산악열차를 타고 오를 예정이다. 알프스를 오르는 곳은 수없이 많다. 오스트리아에서 알프스를 즐기는 사람도 있고, 전문적인 유럽 산악인은 이탈리아 북부에서 즐긴다고 한다. 여행객들은 대표적으로 유럽의 지붕이라는 인터라켄을 간다. 하지만 나는 사람들이 많이 가는 곳은 별로 가고 싶지 않기에 비교적 덜 알려진 리기산으로 정했다. 루체른에서 크나큰 루체른호를 건너 비츠나우에서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여정이다. 취리히에서 루체른까지는 1시간 반 정도 걸린다.  


루체른(Luzern)

루체른은 루체른호에 있는 호수 도시다. 호숫가로 쭉 늘어선 유럽식 건물들이 굉장히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호수라고 해서 작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 스위스의 호수, 특히 루체른호는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유람선도 다닐 정도인데 내가 갈 비츠나우까지 배를 타고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그리고 그 비츠나우도 루체른 호의 절반밖에 안 되는 거리다.



스위스 하면은 아주 전통적인 근위병, 군대, 용병이 떠오르는데 예전에 "스위스 군대에도 해군이 있다"는 말을 듣고 되게 황당했던 기억이 있다. "아니 바닷가 하나 없고 산으로 둘러싸인 내륙국이 무슨 해군?". 직접 와서 보니 알겠다. 스위스의 해군은 바닷가가 아닌 루체른 호처럼 스위스 곳곳에 퍼진 바닷가 크기의 호수를 지킨다는 것을. 스위스의 호수는 대자연의 국가에 걸맞게 어마어마한 크기를 자랑한다.


스위스 치즈 퐁듀

   

알리오 올리오와 스위스 치즈 퐁듀

본격적으로 리기산으로 출발하기 전 루체른호 앞에서 점심을 먹기로 한다. 오늘 메뉴는 스위스 치즈 퐁듀! 이 치즈 퐁듀 또한 인당 3만 원에 육박하는 가격이지만 이 맛은 세계 어딜 가든 맛볼 수 없다. 치즈 퐁듀를 시키면 치즈 퐁듀와 함께 찍어먹을 것들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빵과 감자가 나온다. 재밌는 건 감자도 옛날 전통방식으로 스위스 보따리에 쪄서 나오는데 윗 사진에 나온 빨간색 보따리를 풀면 푹 쪄진 알감자들이 들어있다. 이걸 치즈에 콕 찍어서 먹으면 된다.


루체른 구시가지에서 먹는 점심

치즈 퐁듀도 맛있지만 루체른 호를 구경하며 먹는 재미도 쏠쏠하다. 한겨울이지만 야외에서 먹는 것이 못 버틸 정도로 춥지는 않다. 유럽은 한겨울에도 야외에서 먹을 수 있게 두꺼운 담요와 엄청 큰 히터를 틀어주기 때문! 게다가 가끔씩 불어오는 호수 바람이 따뜻하게 녹인 치즈 퐁듀를 더 맛있게 느껴지게 했다.


루체른 호를 건너


비츠나우로 가는 여객선 안

점심을 먹고 이제 비츠나우로 가기로 했다. 비츠나우는 무조건 루체른에서 배를 타고 가야 하는데 약 2시간 정도 걸린다. 배에 올라타자 후미에 커다란 스위스 깃발이 휘날리고 있었다. 한국에서 조차도 배를 타본 적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멀미가 걱정됐지만, 출발을 알리는 커다란 소리와 함께 내 걱정도 눈 녹듯이 사라졌다.


만년설이 덮인 산들


여객선이 컸기에 생각보다 배가 흔들리지 않아 멀미는 하지 않았다. 창밖을 보며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2시간의 시간도 별로 지겹게 느껴지지 않았다. 특히 호수 너머로 만년설이 덮인 산들이 아주 장관이다. 배 안에는 근사한 레스토랑도 마련돼있었는데 있다가 다시 루체른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용해 봐야겠다.  



비츠나우로


리기(Rigi)산 행 산악열차



리기산 정상 행 산악열차

비츠나우에서 내려 리기산 정상으로 가는 산악열차에 올라탔다. 산악열차는 30분마다 한 대씩 있는데 산을 올라가는 만큼 그 경사가 어마어마하다. 홍콩의 야경을 보러 가는 그 언덕보다 더 심하다. 산을 올라갈수록 눈이 없는 평원에서 점점 눈이 쌓여있는 설원 같은 풍경으로 변하는데 마치 게임에서 포털을 타면 맵이 완전히 바뀌는듯한 느낌이다.


아까 건넜던 루체른호


올라갈수록 바뀌는 고도와 함께 날씨도 맑음에서 비, 그리고 눈으로 급격하게 바뀐다. 비츠나우에서 리기산 정상까지는 40분 정도 걸린다. 중간중간 스키장을 경유하며 아주 천천히 올라가는데 이것 또한 밖의 풍경을 구경하느라 4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른 체 올라간다.


리기산으로 올라가는 길의 풍경


알프스에서 신라면과 태극기를!


리기산 정상

드디어 리기산 정상에 올라왔다! 정상은 그야말로 폭설이었다. 제설차가 멈추지 않고 정상 부근만 치우고 있었는데 신기하게도 정상에만 폭설일 뿐 리기산 밑으로 보이는 풍경은 맑음 그 자체다. 저 밑은 저렇게 평화로운데, 여기 위는 그야말로 아비규환이다. 두꺼운 옷에 롱 패딩까지 껴입어도 정상의 매서운 바람에 몸이 시리다 못해 아파온다. 폭설에 사진 찍을 틈도 없이 일단 리기산 휴게소 안으로 들어갔다.


리기산 정상 휴게소

리기산 정상에 휴게소가 마련돼있다. 샌드위치, 햄버거, 주스 등 먹을거리뿐만 아니라 기념품들도 판매한다. 꼭 물건을 사지 않아도 그냥 들어가 리기산 정상의 추위를 피할 수 있게 의자들이 마련돼있다. 이 휴게소가 없었다면 그야말로 동태가 됐지 않았을까. 하지만 이 휴게소가 정말 고마운 건 바로 뜨거운 물을 공짜로 제공한다는 거! 유럽인들이야 이 뜨거운 물을 추운 날 마시는 용도로 쓰겠지만 우리 한국인들은 뜨거운 물 하면 떠오르는 게 있다. 그것은 바로 라면!


리기산 정상에서 신라면과 태극기를!

산에 오면 뭘 해야 한다? 바로 라면과 태극기 들고 사진 찍기! 외국에 있는 산이라도 예외는 없다. 독일에서부터 가져온 신라면에 휴게소에서 제공하는 뜨거운 물을 붓고 태극기를 꺼내 들어 휴게소 밖 벤치로 나섰다. 이 맵고 따뜻한 라면과 함께라면 어떤 추위도 두렵지 않다. 저 얼어 죽을 날씨에 야외에서 라면을 먹는 사람은 아마 우리밖에 없었을 거다.


리기산 정상에서


독일어권 3국 여행 끝


리기산에서 비츠나우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며

정상에서 사진을 마지막으로 찍고 다시 내려가기로 했다. 그리고 아까 왔듯이 다시 배를 타고 루체른으로 그리고 기차를 타고 취리히로... 리기산까지 기차, 배, 산악열차를 탄 긴 여정이었지만 진짜 알프스의 자연을 느낄 수 있었기에 힘들다고 생각되진 않았다. "나도 알프스 산 한번 올라갔다 왔어!", "나 알프스에서 태극기 휘날리며 라면 먹은 사람이야!"라고 친구들과 대화할 때 말할 거리도 생기고, 이번 여행은 임팩트가 너무 컸기에 아마 늙어서도 오래도록 기억되지 않을까 싶다.


마지막 루체른의 아경

 누나와 사촌동생과의 여행이 이제 끝났다. 이제 취리히로 돌아가 마지막 밤을 보내고 나는 다시 자르브뤼켄으로, 누나와 사촌동생은 핀란드를 거쳐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쩌다 보니 독일,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스위스 독일어권 3 국가만 여행하게 됐는데 재밌게 잘 구경하고 간다는 말에 마음이 놓였다. 나도 혼자라면 절대 안 볼 독일 축구도 보고, 같이 맛집도 많이 다녔으니 만족스러운 여행이었다. 그럼 한국에서 설날에 다 같이 다시 보기를 기원하며 이번 여행을 마치기로 한다. 많이 아쉬우니 마지막으로 스위스 칵테일과 함께!



이전 18화 헬베티아 도시 엿보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