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 선생님과 키즈노트
사랑이란 것은 재채기와 같아서 숨길 수 없는 것이라고 했다.
사랑을 할 때엔 그 마음이 차고도 넘쳐서 이 마음을 어디에든 표현하고 알리지 않고서는 못 견디는 것이기도 하다.
위와 같은 이유로 난 단 한 번도 내 덕질을 숨겨본 적이 없다. 소위 말하는 일코(일반인 코스프레)를 시도해 본 적도 없다. 재채기를 감출 수 없는 것처럼. 넘치는 그 마음을 숨길 도리가 없었다.
분출하지 않고선 견딜 수가 없었다.
사랑이란 것은 나를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기도 하는 것이어서 ‘느끼하고 닭살 돋는 멘트’가 절로 나오는 감정 과잉, 감정 포화 상태가 되어버린다.
“쟤, 왜 저래?”
“안 물어봤고, 안 궁금합니다.”
의 싸늘한 반응에도 꿋꿋이 핑크빛 꽃밭에서 살 수 있고 하루 종일 남자친구 자랑, 내 최애 자랑을 할 수 있는 것이 사랑의 힘이다.
그런 나의 느끼함과 열정이 과했는지 내 친구들은 나를 이해하지 못하고 듣기 싫은 잔소리를 하는 경우가 많았다.
“걔가 널 봐줄 거 같아?”
“아니 창피하지도 않냐… 서른 넘어서도 무슨 덕질이야..”
“남자친구를 사귀어…그런 거 할 시간에”
맹세코, ‘걔’로 이유 없이 하대 당하고 있는 내 최애가 날 봐주길 바란 적도, 남자 친구 대용으로 좋아한 적도 없다.
창피한 적도 물론 없으며 덕질은 나이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이성을 사랑하는 감정’이라기보다 무조건적으로 응원하는 마음, 그러니까 감히 ‘모성’에 가깝다.
하도 ‘실친(실제 친구)’들이 잔소리만 하고 날 이해하지 못하자 나는 돌파구를 찾았고 그렇게 접한 ‘트위터’는 별천지였다. 더 정확히는 ‘정신적 요양소’와 같았다.
이곳에선 아무도 나를 뭐라 하지 않았고, 친구들 보기에 눈꼴 시고 느끼한 나의 애정이 숨 쉬듯 자연스러운 공간이었다.
자유를 찾은 나는 익명의 공간에서 느끼함을 대방출하며 날아다녔고 그 결과 ‘덕메(덕질 메이트)’도 사귀게 되었다. 진짜 친구보다 더 가깝고 내 마음을 속속들이 알아주는 그들과의 대화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조금 달라졌다. 내 최애는 이제 ‘내 딸’이 된 상황.
트위터에 가도 내 딸을 함께 좋아하는 이는 찾을 수 없다. (당연하다)
그렇지만 난 여태까지의 덕질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애정을 느끼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의 폭발이 일어나고 이 사랑스러운 생명체에 대해 찬양하고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물론, 거듭 말했듯 재채기 같은 이 사랑을 숨길 수 없기 때문에 토하듯이 뱉어내곤 하지만 역시나 조금은 신경 쓰인다.
“네 새끼 너나 예쁘지.”라는 말은 아이가 밉다는 뜻이 아니란 걸 잘 안다.
예쁘고 귀여운 그 아이도, 폭격 수준의 사진 세례와 네버엔딩 자랑 속에선 안 예뻐 보일 수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오랜 싱글 생활 속에서 그 함의를 이해해 버린 나이기 때문에, 이제 내가 애엄마가 되고 나서는 아무래도 좀 신경이게 된다.
이번 최애는 진짜 내 아이이기 때문에, 그 누구에게도 부정적인 이미지로 와닿지 않았으면 하는 맘에 백 번을 자랑하고 싶은 것을 꾹꾹 참아 스무 번만(?) 올리는 식이다.
아이의 작은 몸짓, 어제엔 없던 변화 이 모든 것들이 나에겐 너무 경이로워서 여기저기 떠들지 않고선 이 감정이 주체가 안되는데 이 맘을 자꾸 솎아내고, 묻어두느라 답답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그런 나에게 새로운 덕메가 생긴 것이다.
그건 바로 어린이집 담임 선생님!!!
엄마가 되고 처음 접하는 문화인데, 요즘 어린이집에서는 ‘키즈 노트’라는 어플로 학부모와 소통을 한다.
‘내 진짜 새끼(?) 덕질용 트위터’ 같은 곳인 셈이다. 선생님이 매일 키즈노트에 활동 사진과 함께 아이에 대한 편지를 남겨주신다.
첫날부터 감동의 연속. 새싹반 담임 선생님의 글이 ‘한강’ 작가님의 글보다 울림이 크다면 그건 지나친 과장일까? 음… 이 역시 사랑에 빠진 사람의 느끼함이란 걸 알지만 내겐 보탬 없이 진심인 마음이다.
눈앞에 생생히 펼쳐지는 듯한 묘사와 애정이 듬뿍 담긴 소녀 감성의 편지가 도착하는 점심시간이면 너무 설레고 벅차오른다.
내 아이의 성장을 관찰해 주고, 예뻐해 주고 전해주는 그 마음이 얼마나 감사한지…
운명의 덕메를 만난 듯한 느낌이 든다.
케이팝 아티스트 덕질에 비하면, 매우 소소한 규모(단 두 명)이지만 정보의 질과 프라이빗함은 어디에 비빌 수 없는 수준이다. (배변 기록, 식단 기록, 낮잠 샷까지..)
나에게나 예쁠 우리 아이를 나만큼 오래 돌봐주시고 신경 써 주시는 선생님 덕분에 최애 덕질할 맛이 난다.
눈치 안 보고 실컷 소통할 수 있는 사람이 생겨 얼마나 기쁜 지 모른다.
그렇게 나는 새로 등장한 덕메와 은밀한 소통을 하는 재미로 ‘우리 딸 덕질’에 몰입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