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둘 만 살던 시절.
정리가 유독 서툴고 미숙했던 나는 도서관에서 집을 예쁘게 가꾸는 것에 대한 책들을 잔뜩 빌려보며 대리만족을 했다.
내 취향으로 가득한 나의 집을 꾸미는 상상을 하며 예쁜 집 사진을 공들여 구경하고 머릿속으로 내가 좋아하는 것들로 가득 채운 집을 그려봤다.
그리곤 우선 서재방이라도 나의 로망을 실현시켜 보았다.
널찍한 책상, 은은한 조명이 있고 등 뒤로는 내가 좋아하는 책들이 가득 꽂힌 책장.
구석에는 조용히 기대어 책을 볼만한 1인용 소파까지.
집 전체를 완벽한 로망으로 실현하기엔 형편이 부족했고 또 ‘완벽한 취향’이랄 게 서재 이외의 공간에는 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방 하나만 겨우 로망이 실현된 우리 집에 새 식구가 찾아온 뒤로 우리 집은 로망과는 점점 멀어진 집이 되었다.
거실에 떡하니 자리 잡은 기저귀 갈이대, 신생아용 침대, 모빌과 장난감. 책에서 보던 예쁜 집과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아이가 온 지 9개월. 귀차니즘으로 아직까지 로망 서재는 살아있지만 서재의 기능을 간신히 유지하고 있을 뿐 감성 있고 고요한 분위기는 잃고 말았다.
먼저 1인용 소파는 친정으로 보내졌다. 그 자리엔 아이 옷을 넣을 서랍장이 옮겨왔다.
책상에 앉은 내 뒤에서 늘 날 바라봐주던 멋진 책장 앞엔 책장을 다 가려버리는 기저귀 갈이대가 거실에서 이사 왔다. 이젠 사용하지 않는데도 아이 짐이 계속 쌓여 수납함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로망이 실현된 적은 없지만 나름 미니멀함으로 깔끔함을 유지하던 거실은 키즈카페가 되어버렸다.
아기가 타고 노는 스프링카, 정말 문짝 만한 ‘국민 문짝 장난감’ , 그 외에도 넘쳐나는 장난감들로 온 집의 주인이 바뀌었음을 나타낸다.
옷방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장난감이 다 늘어져있으니 정신이 없어서 며칠마다 안 쓰는 장난감은 넣어두고 바꿔가며 사용하기 때문에 ‘장난감 주차장’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단 9개월 만에 이렇게 온 집이 초토화되어버렸다.
줄인다고 줄이고 그새 쓸모없어진 것들을 ‘당근마켓’에 내놓아도 그다음 날엔 더 큰 짐들이 ‘당근 마켓’을 통해 다시 우리 집으로 입주한다. 내보내는 것보다 더 많이.
아이 물건으로는 도저히 승부가 나지 않는다.
이젠, 이 집에서 우리 부부의 물건을 비워내야 할 수밖에 없다.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라는 곤도 마리에씨의 유명한 말을 따라 가장 먼저 정리 대상이 된 것들은 더 이상 읽지 않는 책들. 공간 차지를 가장 많이 하기도 하고 이제는 만들어야 할 아이방 때문에 책장을 없애야 할 때가 왔다.
처음에는 망설여지고 하나도 못 고르겠던 것들이, 하루가 다르게 쌓이는 택배와 혼란한 집안꼴(?) 속에서 반이 넘게 비워졌다.
이 엉망진창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간절한 맘이 나를 움직이게 했다.
문제는, 설레지 않은 것을 다 버리고도 공간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젠 ‘설레도 버려라’ 차례다.
바로 내가 사랑하는 구 최애들 굿즈.
그래, 지금 ‘내 배로 낳은 최애’님이 점점 자라 방이 필요하시다는데 ‘구 최애’ 생일파티 때 받아온 엽서랑 사진이 무슨 쓸모냐. 7월 생인 구최애 생일 카페를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다니며 (생카 투어 ) 받아온 컵홀더들도 과감히 버려버려야 했다.
다시 펼쳐보니 설레기 그지없지만, 그때의 설렘과 사랑이 다시 떠오르지만 아무렴 ‘내 배로 낳은 최애’님을 이겨낼 순 없다.
과거에 나는 절대 몰랐지. 이게 ‘짐’이 될 줄은. 이게 ‘쓰레기’가 되고, 그 ‘돈’이 아까울 줄은.
“설마 그걸 돈 주고 산 건 아니지?”라고 묻는 남편 때문에 자동으로 이것들의 가격이 떠오르면서 분유 한 통을 기준으로 몇 개인지 환산되기 시작했다.
내가 알았겠냐고 분유가 한 통에 이렇게 비싼 지.
그때의 ‘(낳은 적 없는) 내 새끼’가 이렇게나 찬밥이 될지.
눈물을 머금고 설렘이 소생하려는 소중한 보물들을 한 데 펴놓고 사진을 찍었다.
‘기념하기 위해서냐고?’ ‘사진으로라도 설렘을 간직하기 위해서냐고?’
아니다.
‘당근마켓’에 올리기 위해서다.
난 몇 십만 원어치가 될 법한 내 ‘소중한 것’을 ‘분유 한 통’ 값에 내놓고 이 값에라도 사주길 간절히 바라는 ‘진짜 엄마’가 되어버렸다.
동네에 어린 친구들의 주머니 사정에 맞는 금액 측정이었길 바라며… 부디 나의 구최애가 그냥 쓰레기통에 들어가지 않고 누군가에게 저렴한 가격으로나마 가닿기를 바라면서.
내 배로 최애를 낳기 전과 후는 이렇게나 다르다.
그래, 이제 정신 차리고 쓸데없는 곳에 (하, 아직 그것이 쓸데없는지에 대해서는 공감할 수 없는 마음이다. 설레면 효용을 다했다고 생각한다.) 쓰지 말고 내 진짜 새끼(?) 맘마 사는 데 쓰자고 수십 번 다짐한 하루였다.
설레도 버릴 때가 온다. 소비는 신중 또 신중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