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후 엄마의 정신 승리
(사진은 엄마의 현 최애 제로베이스원의 장하오)
나는 덕후 엄마다.
덕질을 숨 쉬듯 해온 내가 ‘덕후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기꺼이 받아들인 이유는 덕질이 가진 특수성이 나를 보호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난장을 치고 미운짓을 하고 내 에너지를 탈탈 털어가도, 내 새끼는 내 눈에 제일 이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많은 식당에서 난데없이 큰소리로 소리를 치고, 먹여주던 숟가락을 빼앗아 밥풀로 온 얼굴에 칠갑을 하는 아이를 ‘아이고 이뻐라’라고만 봐줄 이도 우리 식구들 뿐이다. (라고 생각된다.)
노키즈존부터 시작해서 사회 곳곳에 당연한 듯 자리 잡은 아이들에 대한 혐오와, 부모들에 대한 뾰족한 시선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외출을 할 때면 더 움츠러들고 눈치가 보이는 게 사실이다.
비행기에서 승무원으로 일하는 동안 어린아이 때문에 눈치 보는 부모와 자신의 휴식을 방해받아 날카로워진 주변 승객을 중재하고 대신 사과(?)하거나 아이를 진정시켜야 했던 나로서는 더 예민하게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에 반응한다.
아이의 예쁜 모습, 오늘의 소중한 추억을 개인 sns에 올릴 때에 자꾸만 멈칫하게 된다.
내 눈에만 이쁜 이 아이의 모습을 너무 자주 올려서 보는 사람들이 피로하진 않을까. 내가 너무 내 입으로 이쁘다 귀엽다 떠들어대니 이뻐 보일 일도 고깝게 보이진 않을까. 눈앞에 드러나지 않은 반응을 미리 상상해서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면서 소중한 순간의 기록을 그냥 넘기기도 했고, ‘에라 모르겠다’의 심경으로 올리면서도 애써 덤덤한 투로 나의 넘치는 경이로움과 풍부한 감정을 갈무리했다.
그렇게 지내기를 14개월이 지나가는 지금.
하 영 적성에 안 맞는다.
나라는 사람은 본래 조그마한 기쁜 일에도 크게 기뻐할 줄 알고, 내가 좋은 것은 널리 알리며 모두가 함께하길 바라는 행복 전도사인데 말이다.
삶에서 가장 행복하고 신기한 일로 매일이 가득한 요즘, 남 눈치 보느라 넘치는 행복을 축소하고 과하게 느끼한 이 감정을 괜스레 담백하게 정제하려니 ‘진짜’가 아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나로만 살 때에는 그래 남 눈치 보는 거 내 성격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치지만, 나중에 아이가 커서 보게 될지도 모를 기록에까지 내 감정을 이렇게 검열한다는 게 좀 우습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가 뭐, 아이돌이야…?
나는…. 오히려, 아이돌 좋아하는 덕후잖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또 왜 좋은지 뭐가 좋은지 밤새 떠들 수 있는 저력이 있는 덕후.
그렇게 생각하고 ‘덕후의 정체성’으로 하루를 보니 모든 게 달라 보였다.
세상이 예쁨 필터로만 보이는 덕질 주간.
평범한 하루에도 노래를 듣다 공연히 가슴이 뛰고, 작은 일에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 행운을 누릴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덕질.
이게 얼마나 뛰어난 능력인데 이 능력을 애써 감추고 아이돌 자아인 것처럼 (나에게 관심도 없을) 세상 사람들의 눈치를 보며 나 자신을 검열했던가.
좋아하는 가수가 뮤지컬 배우로 데뷔하던 때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다.
뮤지컬을 좋아하는 뮤덕들에게는 어쩌면 내 배우는(아니 내 새끼는) 민폐였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해마지 않는 내가 보아도 다른 배우들에 비해 연기력도, 성량도 많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팬은 깔끔하게 인정하고 응원할 수 있는 존재다.
맘이 조금 찝찝하긴 했지만 같이 보러 간 친구랑 “내 새끼가 젤 못했는데, 솔직히 젤 잘생겼어. 맞지..?”
라고 이야기하면서 신나게 떠들며 그날 하루를 행복하게 보냈다. 정말이지 행복한 하루였다. 1의 불안도 걱정도 없는.
하물며 내 배로 낳은 내 진짜 새끼(?)인데!! 못 해도 나만은 응원해 주고 못나도 내 눈엔 이뻐 보이는 게 당연하지! 그런 당연하고 단단한 사랑을 남이 욕하더라도 그게 무슨 대수랴. 훗날 그 기록을 볼 아이에게 거짓 없이 느끼하게!! 과잉된 감정 그대로 남겨둬야 맞지 않나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사실 무심하게 올린 인스타그램 속 영상에 담지 못한 예쁜 모습이 훨씬 많은데.. 며칠 지나면 잊힐 안타까운 순간을 그저 남눈치를 본다고, 혹은 내가 쓰기에 오글거린다고 그 ’ 순간‘ ’현재‘의 감정을 퇴색시켜 버린다면 너무 아까울 것 같다.
오히려 더 생생하고 정확히 전달되도록 글쓰기 실력을 늘리는 것이 옳은 방향이 아닐까.
그래서 오늘도 글을 써본다. 최대한 감정을 오려내지 않고 있는 그대로. 넘치면 넘치는 대로.
흉봐도 어쩔 수 없다.
나는 내 딸이 뭘 해도 너무 이뻐 보이고 사랑스러운 우리 딸 덕후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