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딸내미
나는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나는 평화를 사랑한다.
내 딸도 무남독녀 외동딸이다. 내 딸은 평화를….. 사랑하나?
성향 탓인지 형제 없이 혼자 자라서인지 나는 갈등을 싫어한다.
형제가 없었기 때문에 누구와 싸워 본 적이 없다.
부모님께 일방적으로 꾸지람을 듣고 혼나는 봤어도 엄마 아빠와 언성을 높여 싸운 기억도 없다.
친가 외가를 통틀어 첫 째이기 때문에 친 형제가 아닌 그들에게도 ‘지시’만 할 뿐 싸워본 적이 없다.
그렇게 나는 갈등 없는 상황 속에서 유년을 보내고, 복잡한 이해관계가 얽힌 회사 생활에서도 대부분의 경우 모든 화살을 내 자신에게 돌리며 갈등을 피하거나 혼자 곪아가는 쪽을 택했다.
그리고는 꽤 오래 후회했다. 내가 남보다 나를 더 위해주지 않은 것에 대해, 내가 나를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
그래서 내 딸은 부디 손해 보지 않고, 할 말을 하면서 당차게 자라길 바라고 또 바랬다.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지는 법이다.
아이는 자아가 생기기 시작했고 꽤나 당차다. 싫으면 싫다 좋으면 좋다 의사표현이 꽤나 확실해졌다.
‘지금은 귀찮으니까 달라붙지 마’
‘나는 고기파니까 채소는 좀 치워’
‘배고파 죽겠다고. 밥 내놔’
아이는 말을 하지 못하지만 대충 저 정도의 뉘앙스로 해석될 만큼 꽤 까칠하게 의사표현을 한다.
그래, 가끔 좀 빈정 상하고 무섭긴(?) 해도 아이가 또렷이 의사표현을 해주니 시중들기도 수월해졌다. 도대체 뭘 원하는지 알 수 없던 0세를 지나 어느새 표정과 손짓으로 소통을 시도하다니. 감개무량하다.
하지만 그 손짓이, 가끔 문제다.
갈등을 피해왔던 나는 치고받고 싸워본 적이 없다. 대부분 여자 아이들이 그렇듯 말이다. 친구랑은 조용히 다투는 아이들도 대개 집 안에선 형제들과 주먹다짐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들어왔다. 외동딸인 나는 그런 경험이 없다.
그리고 계속 없을 줄 알았는데 최근 맞은 경험이 추가되었다. 그니까 딸이 날 때리기 시작했다.
“애기인데, 뭘.”
아니? 첫 경험 치고도 이건 좀 세다. 그리고 표정을 보아하니 풀파워로 진심 담아 때렸다. 오해가 아니라고 확신한다.
머리 쥐어뜯기, 뺨 때리기, 꼬집기 뭐 다양하다.
아이이고 심지어 내 딸이기 때문에 어른이자 엄마인 내가 백번 참고 이해해야 한다는 걸 안다.
하지만, 내 생애 첫 폭력은 날 너무 당황스럽게 했고 또 동요시켰다.
기분이 너무 나빴고 되받아치고 싶다는 욕구가 피어올랐다.
“야!!!”
하… 내 딸에게, 이제 막 1세가 된 내 딸에게 ‘야’라고 소리를 쳤다. 눈도 부라려 봤다. 그리고는 진심으로 화가 났다.
때릴 줄도 아는데 눈치라고 없을라고. 내 딸은 눈치도 엄청 빨라졌다.
나를 몇 초간 응시하고 상황을 살피더니 세상 서럽게 울기 시작한다.
‘???????????’
내가 싸움의 경험이 없어서일까. 진짜 너무 황당하기 짝이 없다.
맞은 건 난데, 진짜 눈물 핑 돌게 아팠는데 때린 애가 운다. 그것도 엄청 서럽게.
게다가 달래 달라고 아빠한테 쪼로로 가버린다.
으아아아앙아아아앙악!!!!!!!!
삼류 막장 드라마에 나오는 악역이 따로 없다. 근데 내 딸이다. 내가 낳았고, 내가 빌었다.
매우 토라지신 그분을 두고 열을 식힐 겸 편의점으로 도망갔다.
맥주가 필요한 날이 늘어나고 있다.
오늘도 아이가 고개를 팍- 들어서 입술에서 피가 났다. 너무 아프고 짜증이 나서 이성을 잃을 뻔했지만 이마에 손을 대고 눈물이 고인 눈으로 입술을 삐죽이며 쳐다보는 가해자를 보고 난 또 지고 말았다.
아니, 져야만 했다. 화를 돋우워봤자 그녀를 달래야 하는 것도 내 몫이니까.
이길 수 없는 상대 앞에서 너무 무력함을 느낀다.
이겨도 보람 없고 나를 위하는 일이 아닌 이상한 싸움에 휘말려버렸다.
평화는 결국 또 내가 지고 내가 참아야 찾아온다. 조금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