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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던 네가 아냐

엄마 아빠가 달라졌어요

by 날랩

‘내가 알던 네(?)가 아냐’

그러니까 이런 거다.

나랑 37년을 함께 살던 우리 엄마아빠의 모습은 이러지 않았단 말이다.

적어도 내 기억 속에 그들의 모습은 이렇게 해맑거나 하이텐션이지 않았단 말이다.

그런데 그들의 귀한 외동딸이 서른일곱에 아이를 낳은 2024년 5월 24일 이후로, 그들은 어쩐지 좀 낯설어졌다.


사실 엄마는 꽤나 하이텐션인 편이고 리액션이 과한 편이다.

감정 표현에 인색함이 없고 늘 진심을 가득 담는다.

그래서 그런 모습이 정점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엄마의 한계는 끝이 없었다.

손녀의 몸짓 하나 행동 하나하나에 그전보다 더 크게 열광하고 소리 질렀고 경탄했다.


나에 대한 엄마의 사랑을 의심해 본 적도 없고 그녀의 표현은 늘 넘치는 것이었는데, 이건 카테고리 자체가 다르다.

내가 엄마 앞에서 ‘처음 보는 행동을 한 적이 언제가 마지막이었을까’ ‘엄마 앞에서 애교를 피운 적은?’

쑥스러움을 견뎌내고 손 편지 밑에 관성적으로 쓰던 ‘사랑해요’도 ‘계좌이체’가 최고가 된 후로는 안 쓴 지 오래다.

그러니 이 모든 반응이 내가 보기에 참 낯설고도 초면인 것이다.


그렇다면 아빠는?

아빠는 뭐 거의 새아빠가 오신 수준이다.

나에 대한 아빠의 사랑 역시 의심해 본 적 없고 엄청난 딸바보란 사실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빠에게는 더 무뚝뚝해진 지 오래고, 아빠의 다정함은 짐작하는 것이지 드러나는 것이 아니었다.

아빠의 순도 100% 웃음소리, 혀 짧은 소리는 정말이지 초면이다.


“우리 서현이 잘 놀았쪄요?” “하비가 도와줄까요?”


이제 한 일 년 보았으니 익숙해질 만도 하지만 음… 아직 낯설다.


“아빠… 아빠!!! , 아 아빠!!!”


뭘 좀 부탁하려 하거나 엄마의 말을 전해야 할 때 아무리 불러도 대답이 없어서 내 성질을 돋우던 굼뜬 아빠는 어디론가 가시고 새아빠가 오셨다.

할아버지를 제일 좋아하는 손녀 앞에서 우리 아빠는 삼십팔 년을 본 중에 가장 날쌔고 빠르다.


잠시 뒤로 물러서 내가 사랑하는 셋의 모습을 보다 보면 모두 2024년 5월 24일에 세상에 함께 내려온 것 같은 착각이 든다. 낯선 우리 엄마아빠의 행복만 가득한 모습.


물론 나랑 있었을 때 불행했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너무 다른 결의 행복을 겪고 있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가만히 셋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고, 그 안에 있는 새로운 부모님의 모습에 매번 놀란다.


낯선 목소리, 초면인 몸짓, 오랜만인 표정…. 그리고 이 모든 걸 내가 만들어냈다는 것이 제법 뿌듯하다.

삼십몇 년 전 젊은 우리 엄마아빠는 지금의 이 목소리와, 표정으로 나를 돌봤을까.

이렇게 순수한 기쁨과 깊은 여운에 감사하며 하루하루를 보냈을까?


엄마는 가끔 ‘그때도 네가 참 예뻤지만 키우는 게 힘들고 바빠 이 예쁜 모습을 고마운 지 모르고 지나간 것 같다’고 아쉬워할 때가 있다.

다시는 아쉽지 않으려는 듯 힘든 와중에도 아이를 더 안아주고 눈에 담는 그 모습을 본다.


딸이 내게 주는 행복만큼, 딸 덕에 부모님이 행복해하는 모습이 주는 기쁨도 크다.

모든 걸 다 가진 기분.

그래서 딸에게 고맙고, 또 고맙다.


‘대리 효도’라는 말은 그래서 쓰는 건가. 아무리 ‘용돈이 최고’라지만 무심한 계좌이체와는 차원이 다른 효도다.


무뚝뚝하게 ‘딸’이라는 존재자체로 비벼보려던 나는, 제법 제대로 된 효도 중이다.

우리 딸 엄마를 효녀로 만들어줘서 고마워. 그리고 넌 지금 최고의 효녀라는 것도 꼭 기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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