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덕질은 본업
아이를 재우고 티비를 보며 여유를 즐기고 있던 밤 초등학교 동창 친구가 연락이 왔다.
정말 대뜸.
“살림남 보고 있는데, 아니 이민우 왜 저렇게 된 거야?”
앞도 뒤도 없는 그 물음에 잠시 멍-해졌다가 너무 어이가 없고 웃겨서 키득거리며 답장을 했다.
“저기요, 저는 지금 애 재우고 나왔는데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이 밤에….”
“아 ㅋㅋㅋㅋㅋ 미안.. 아니, 그 이민우가, 그래도 신환데… 왜 돈이 없지?”
친구는 여전히 패닉 상태다.
“갑자기 이 밤에 이민우 돈 없는 거 알게 됨. 우리의 쿨가이.”
방송에 나온 경제적으로 힘들어진 우리 시대의 우상 신화 이민우를 보고 대뜸 나에게 연락을 한 것이었다.
나는 그 당시에 ‘신화창조’ 팬클럽에 가입해서 대학생 때까지 신화를 좋아했고, 친구들이 ‘신화’ 하면 나를 떠올릴 정도로 열성적인 팬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닌 밤중에 대뜸 나에게 묻는 친구 때문에 황당해서 웃으면서 오랜만에 어릴 적 추억팔이를 했던 밤이었다.
이번뿐 아니라 이런 일은 종종 나에게 일어난다.
고등학교 때까지 함께 지냈던 사촌동생도 어느 날 갑자기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물었다.
“누나! 장윤정 몇 살이야?”
“?????”
라던지, 갑자기 인스타그램 dm으로 “아니, 나 스트레이키즈 필릭스한테 꽂혔는데, 티켓팅을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어?”라고 묻던 회사 선배도 있었고, “저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요!! ”라고 나처럼 덕질하는 즐거움에 빠졌다고 연락이 온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도 있었다.
그러니까 동창, 가족, 회사사람, 심지어는 온라인을 통해 알게 된 지인마저도 ’ 연예인‘ ’ 덕질‘ 과 관련된 일이 있으면 자연스레 나를 떠올린다는 거였다.
그냥 떠올리고 끝나는 게 아니라 듣는 내가 당황스러울 정도로 ’당연히 너는 알겠지?‘ 싶어 묻는 경우가 너무 많다.
“아니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라고 뭐 다 알아?”
라고 말은 하면서도 내심 자신이 궁금한 게 있을 때에, 좋아하는 것이 있을 때에 날 떠올려주고 찾아주는 게 기뻤다.
그럼 요즘은 어떤가? 아니 어때야 하는가?
내 최애는 누누이 말했든 우리 딸이 되었다. 모두를 제치고, 그 누구도 이길 수 없는 최애!
이제 당당하고 황당하다는 투로 “그걸 제가 어떻게 알죠?”를 할 수 없는 상황에 봉착했다.
그녀는 내 최애이지만, 나는 그녀의 팬이 아니라 엄마니까.
이제 주변인의 모든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딸은 내 최애가 될 수 있지만, 엄마는 팬으로만 남을 수가 없다는 걸 매일 알아가는 중이다.
부담 없이 행복하게 사랑을 퍼주다가도, 그가 초라해지거나 내 마음이 식으면 ’ 나도 이제 몰라, 요즘 관심이 좀 식어서 ‘라고 휙 돌아설 수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아이의 등 뒤에 도도독 올라온 두드러기는 왜 생긴 건지, 아이는 지금 왜 찡그리는지, 기침은 언제부터 시작했고, 열은 정확히 몇 도였는지.
아빠도, 어린이집 선생님도, 간호사도, 사진을 보던 인스타그램 친구들도 모두 다! 나에게 묻는 게 당연하다는 것을 되새기고, ‘그걸 제가 어떻게 알죠?’라는 말은 감히 꺼낼 수도 없는 사람이 됐다는 것을 감각한다.
“나 이제부터 최애 우리 딸이잖아.”라고 말하며 육아에 재미를 더해가다가도 ‘그래 육아는 마냥 덕질 같진 않지….’라고 현타를 느낀다. 언젠가 말했듯 편집본이 없는 24시간 라이브로 펼쳐지는 이 덕질은 가감 없을 뿐 아니라 막중한 책임도 뒤따르기 때문이다.
환절기가 다가오고 매주마다 다른 병명으로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아이를 살피면서 느낀다.
덕질 놀이를 하면서 육아의 고충을 덜어도 보지만 결국 난 엄마임을.
이제 그 누가 어떤 질문을 해도 척척 알아서 대답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돼야 한다는 것을!
그녀에 대해선 내가 지피티고, 지식인이어야 한다는 것을 말이다.
덕질이 더 이상 ‘취미’가 아닌 ‘본업’이 되어버렸다.
정신 차리고 내 주제를 알아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