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힘든 일주일이었다. 회사에서는 야근의 연속이었고 힘들게 집에 돌아와 저녁은 대충 인스턴트로 때우며 주말을 맞이했다. 알람을 끄고 눈을 떠보니 피곤하고 졸려서 쉬고 싶은 마음이 반이고, 날씨가 좋아 밖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이 반이었다. 이번 주에는 어떤 선택을 하면 좋을까. 일단 오전에는 집에서 쉬면서 체력을 보충한 후 밥을 든든히 먹고 책과 노트북을 챙겨 들고 밖으로 나왔다. 동네 골목길을 걷는 동안 마스크를 벗으며 한껏 가을 공기를 들이마신다.
스트레스가 쌓일 때 나름의 해소법이 있다. 나의 경우, 가장 빠른 처방은 음식이다. 집중력이 떨어지면 기분이 좋아지는 음식을 찾아 먹는다. 든든한 식사를 한 후 달달한 초콜릿과 마카롱과 같은 디저트로 마무리하거나, 과일을 잔뜩 사서 냉장고를 채워 넣기도 한다. 육체적 배부름으로 정신적 허기를 채운다.
또 하나의 방법은 쇼핑이다. 즐겨찾기 해 둔 쇼핑몰에서 한참을 둘러보며 마음에 드는 것들을 골라 장바구니를 가득 채운다. 일차로 눈에 들어온 물건들이 쌓아두면, 그중에서 토너먼트 방식으로 이차 선별에 들어간다. 외투, 스웨터, 원피스 등 같은 카테고리 내에서 일 순위의 옷들을 골라내는 과정이다. 실제로 입었을 때 어떻게 모양이 잡히고, 옷 재질과 기존에 옷들과 코디네이팅이 가능한 지 등 머릿속에 시뮬레이션을 하면서 구매 순위를 정한 다음에야 장바구니에 담아둔 물건을 과감하게 결제 버튼을 누른다. 빠르면 다음 날 배송이 완료된 택배박스를 뜯어보고 거울 앞에서 시착을 하는 일련의 과정이 쇼핑 놀이이다.
작은 사치는 주는 만족감은 즉각적인 효과가 있다. 중저가 제품으로 '작은 사치'를 즐기면서 자신을 대접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한 달에 한번 정도 트렌디에 공간에서 잘 차려진 음식을 먹고, 계절마다 새 옷으로 옷장을 업데이트하면서 일상에 작은 변화를 누릴 수 있다.
다만 소비 활동에는 예산이라는 한계가 있다. 매일매일 돈 들이지 않고도 재밌게 할 수 있는 활동도 필요하다. MBTI로 따지면 내향형(I)으로 혼자 보내는 시간이 어색하지 않은 성향이라 어릴 때부터 언어를 가지고 하는 활동이 재밌었다. 주말이면 빌려 둔 소설책을 몰아보고, 외국어로 된 원서를 보며 사전을 찾아보는 게 퍼즐 맞추기 같았다. 무엇보다 책과 관련한 취미는 한 번 시작하면 시간도 오래 걸리고 큰돈이 들지 않아서 가성비가 높다는 게 장점이다.
독서와 마찬가지로 글을 쓰는 일도 그렇다. 한 번 집중하기 시작하면 시간도 금방 가고, 요즘은 노트북과 휴대폰이 있어 별도의 준비도 필요하지 않다. 조용한 방 안에서 경쾌하게 자판을 두드리거나, 가끔 손에 잘 맞는 펜으로 종이에 사각거리며 글을 쓰는 소리도 힐링이 된다. 주로 근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서 보는 편이라 다 읽고 반납하기 전에 마음에 드는 문장을 꼬박꼬박 필사해두려 한다. 막 책장을 덮고난 후의 감상을 생생하게 기록해두고, 나중에 내가 골라놓은 문장들만 다시 읽어볼 수도 있다. 아무리 감동적인 책을 읽어도 기록하지 않으면 잊히기에 짧게라도 독서노트로 남겨두는 편이다.
가볍게 쓰는 일기는 대나무 숲 효과가 있다. 아무도 없는 숲 한가운데서 비밀을 털어놓듯이 내밀한 감정과 욕망을 꺼낼 수 있는 공간이자, 마음이 답답해서 어떻게 해소해야 할지 모를 때 혼자 감정을 다스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도 하다. 며칠간 머릿속을 채운 문제가 몇 문장으로 요약되고, 막상 문장으로 쓰고 읽어보면 조금이나마 그 상황에서 떨어져서 볼 수도 있다. 단 두, 세줄로 상황을 정리하고 보면 속앓이 하던 문제가 작아 보이기도 한다. 때로는 스스로 내 문제를 직시하는 것만으로도 굉장한 심리적 치유가 되었다.
글을 쓰는 일은 창작이다. 미술이나 음악, 무용은 기본 테크닉을 배우는 준비과정이 필요하지만 글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도 바로 시작할 수 있었다. 당장 온라인에 블로그를 개설하면 다른 사람과 소통할 수 있는 데뷔 무대도 생긴다. 고대 벽화에 그림을 그렸던 것처럼 이야기를 짓는 일은 원초적인 즐거움에 가까운 놀이가 아닌가 한다. 신문, 잡지, 책과 같이 고전적인 텍스트는 시들었지만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트위터와 같이 새로운 미디어에서 읽고 쓰는 활동은 여전히 활발하게 이루어진다.
창작은 재미다. 글 안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서 화가 날 때, 빈 페이지만은 내가 감독이 되어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다. 시작과 끝을 연출하며 내가 하고 싶은 메시지를 담아내고, 어설프더라도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일이 다른 데에서 얻은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
가능한 자주 글을 써라. 그게 출판될 생각으로 가 아니라, 악기 연주를 배운다는 생각으로.
-JB 프레슬리
코로나 시기에 집중했던 취미가 글쓰기였다. 외부 활동이 제안되어도 얼마든 가능했고, 쓰면 쓸수록 더욱 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 글 쓰기 모임에서 에세이 과제를 할 때는 하루에 하나씩 소재를 찾기 위해 주변을 관찰하고, 더 많은 책을 읽었다. 매일 같은 스케줄이 반복되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이야기가 발견되었다. 출퇴근 길의 풍경, 짧은 대화에서 나온 누군가의 조언, 필사 노트에 기록해 둔 한 문장... 그냥 지나쳐버릴 수 있는 장면들이 사진처럼 한 편의 글 안에 담긴다.
일주일에 하루는 악기 연주를 배우듯 글을 써 본다. 내가 정한 소재들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쓰는 동안 마음이 편해지곤 한다. 회사에서 쓰는 글에는 목적이 분명하지만, 개인으로 쓰는 글에는 제약이 없다.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 관계에서 주어진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어떤 이야기든 쓸 수 있는 자유로움이 취미 글쓰기의 가장 큰 매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