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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Jun 09. 2024

어떤 일은 자연스럽게 그냥 시작된다

쓰는 이유

1.

"자, 이건 우리 큰딸 거~"

어린 시절, 다섯 가족이 모인 밥상에서 김치 꽁다리는 언제나 내 몫이었다. 옛 속설에, 배추 꽁다리를 먹으면 말을 잘하게 된다는 이유에서였다. 내성적이고, 뭘 물어도 대답을 잘 안 하는 아이였기에 엄마는 고민이 많으셨나 보다. 반은 농담조로 '이거 먹으면 언변이 좋아진다'라고 하시며 씹어도 잘 씹히지 않는 딱딱한 꽁다리를 항상 건네주셨고, 나도 꼬박꼬박 받아먹곤 했다.

실제로 나는 참으로 말이 없는 아이였다. 뭔가 불만이 있으면 또래 아이들처럼 소리를 지르기보다는, 반대로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아무리 혼을 내도 잘못했다는 소리도 하지 않아 오히려 꾸중을 내는 엄마와 아빠가 답답해하기도 했다.


난 왜 그렇게 말을 안 했을까. 지금에 와 생각하면,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말이 섣불리 안 나왔다는 게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어릴 적 내 눈에 세상은 온통 의문 투성이었다. 오감으로 받아들이는 정보를 감당하는 게 바빴다.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자극에 머릿속에 떠오르는 질문이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여러 가설을 세우기도 하면서 곧잘 시간을 보내곤 했다. 요즘의 MBTI 유형으로 말하자면 내항형(I)에 직관형(N)이 강한 사람으로, 겉보기엔 가만히 있는 것 같아도 생각하는 데 쓰는 에너지가 많다. 누군가 질문을 던지면 딱 하나를 꼬집어서 말하기가 어려웠다.

세상에 호기심이 많지만, 소심한 성격도 있어서 그것을 미주알고주알 입 밖으로 내서 질문하지는 않았다. 그 모습이 어른들이 보기엔 반응이 느리고, 말이 없고, 속을 알 수 없는 아이처럼 비쳤을 것이다. 태어날 때부터 타고난 성향인지, 아니면 삼 남매 중 첫째라 부모님을 귀찮게 하지 않으려고 그랬는지는 분명하지 않다. 다만 어릴 때부터 혼자 대화하고 상상이나 공상하는 시간이 편했다.


2.

사람이 가진 에너지의 총량이 있다면, 나는 말로 뱉으며 쓰는 에너지를 쓰는 대신 내적으로 소모하는 유형이다. 집에서 있을 땐 몰랐는데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니 내성적인 성향이라 금방 적응이 어려웠다. 학교에 입학하니, 많은 사람들 앞에서 발표를 해야 할 때도 많았다. '이거 얘기해 볼 사람?'이라는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하고 드는 친구들을 신기한 듯 쳐다보았고, 선생님께 예쁨 받고 싶어 손을 들고 싶다가도 눈치 보며 가만히 자리에 앉아있곤 했다. 조용히 혼잣말로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고 있으면, 왜 크게 말을 안 하냐고 묻는 친구의 말에 또 얼굴이 붉어졌다.


그런 나에게 편했던 친구는, 다름 아닌 책이다. 초등학교 입학 전, 집에는 한글공부용으로 사둔 동화책 전집이 집에 있었다. 처음엔 그림만 넘겨 보다가 글자를 배우기 시작한 후에는 책에 익숙해져 갔다. 본격적으로 독서를 하게 된 건 중학교 때이지만, 동화책 덕분에 책이 싫거나 부담감은 없어서 엄마의 바람대로 말이 느리거나 아주 못하는 편이 아니었던 듯하다.

최초로 학교에서 칭찬받았던 기억은 글짓기 시간이었다. 초등학교 교실 한편에는 학생이 만든 작품들을 전시하는데 내가 쓴 글이 뽑혀 칠판 옆에 붙여졌다. 그 후로도 몇 번쯤 선생님이 내가 쓴 글을 좋게 봐주셨고, 어른이 되면 작가해도 되겠다~라는 말씀도 해주셨다. 이에 덧붙여서, 작가가 되려면 경험을 많이 하는 게 좋아,라는 조언도 해주셨다. 작가? 아직 직업의 세계는 너무도 멀어 보였던 초등학생은 아무 감정 없이 그 단어를 기억해 두었다. 좋지도 싫지도 않은 기분으로. 다만 나는 책을 좋아하니까 뭔가 어울리는 것 같기도 했다. 그래서 몇 번인가 어른들이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작가라고 대답한 적이 있는데 누군가 '작가는 돈을 못 버는데'라는 말을 하기도 했었다. 예전에 작가란 직업은 고생을 많이 하고 가난해 보이는 이미지가 있었다.  

학교 다닐 땐 매년 희망직업에 대해 써서 내야 했는데 그때마다 직업란은 바뀌었다. 작가도 있었고 교사나 통역사일 때도 있었다. 딱히 하나를 정할 수 없어 바뀌던 희망직업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현실적인 것들로 채워졌다. 그때만 해도 직업이란 내게 아주 먼 그 무엇처럼 느껴지는 막연한 것이었다. 어른이 된다는 것 자체가 그랬다.  

대학을 지원할 땐 책도 좋아하고 영어 과목을 좋아하니 영문학과에 지원했는데, 그렇다고 졸업 후 통역사나 영어 교사는 되지 않았고, 작가도 아니다. 다만 회사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으니 어느 정도 읽고 쓰는 일이라는 본질은 내가 좋아하는 일과 연결되어 있다.

어른이 된 나는 여느 직장인과 비슷하게 출퇴근을 하고, 일이 안 풀리면 머리를 쥐어뜯다가, 주말엔 늦잠을 자고, 가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으며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내 첫 번째 꿈이 뭐지?' 하고 돌아보는 계기가 있었다. 어느 책에서 사람은 일곱 살 시절의 꿈을 좇아간다는 문장을 보았을 때였다. 우리가 선입견 없이 직관적으로 가진 첫 번째 꿈을 시간이 흘러서 다시 쫓을 수 있다는 문장을 읽으면서 나의 첫 번째 꿈이 뭔지 떠올려보았다. 희미하게나마 초등학교 때 처음 직업에 대해 생각해 본 때가 떠올랐다.


3.

그렇게 또 시간이 흘렀고, 코로나가 한창이었을 무렵이다. 생전 처음 겪는 사회적 거리 두기로 온갖 약속과 외부일정이 끊어지니, 혼자가 편한 성향이었지만 나도 마음이 지치는 기분이었다. 당시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고립된 공간에서 1인이 할 수 있는 취미가 팬데믹과 같이 유행처럼 번졌다. 요리나 뜨개질, 컬러북, 와인에 입문하는 사람들이 늘었다. 갑자기 주말의 이틀이 온전히 남으니 나도 뭔가 해볼까 싶던 시기였다. 끝을 모르는 터널에 갇힌 것 같았던 시간 속에서 나는 글을 써야지,라고 생각했다. 그냥 그러고 싶었다. 그전에도 일기는 썼지만 다른 식의 글쓰기를 해보고 싶어서 온라인 글쓰기 모임에 가입해 첨삭도 받기도 했다. 확실히 과제가 주어지고 마감이 있으나 결과물이 나왔고, 써 둔 글을 가지고 브런치스토리에 작가 신청을 했다.


브런치 작가 승인이 난 후 목표는 일주일에 한 편씩 업로드하기로 잡았다. 주제도, 마감도, 글감도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매일 올려도 누가 뭐라 하지 않지만 퇴고를 하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핑계로, 혹은 일정이 많아서 피곤하다는 이유로 몇 주, 혹은 몇 달이 지나버리기도 했다. 그래도 되는 일이었으니까. 돈 버는 일도 아닌고, 당장 급한 것도 아니고, 어디 마감이 있지도 않으니 미루면 좀 어떠냐. 현대 사회에서 무용하다 싶은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되어있다.

내가 좋아서 시작한 글쓰기지만 무언가를 쓴다는 건 쉬운 작업이 아니다. 추상적이고 엉켜있는 생각을 꺼내 정렬하고 보기 좋게 다듬는 과정은 나 같은 취미러에게도 고된 일이고, 나름의 기준을 맞추려면 애를 좀 써야 한다. 다만 반듯하게 마침표를 찍어서 결과물을 만들었을 때, 내면에서 나오는 성취감이랄까 뿌듯함이랄까. 혹은 속에 담아 놓은 말들을 비워내서 보이지 않는 무게를 덜어내는 시원함일까.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기 힘든 내적 만족감에 계속 무언가를 쓰려고 시도했다. 그래서 언제나 노트북 앞에 앉기까지가 가장 어렵다.


4.

평일은 빠르게, 주말은 더 빠르게 지난다. 그날마다 해야 할 일정들을 하나씩 그으면 벌써 잘 시간이다. 하루에 많은 일은 했지만 잠자리에 누우면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나간 느낌은 왜 인지. 그날도 무사히 출퇴근을 했고 밥도 잘 챙겨 먹었고 별일 없이 보낸 날이었다. 그런데 왠지 잠이 오지 않는다. 눈도 살짝 감기는 듯 하지만 그렇다고 편히 자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 상태로 괜히 티브이만 켰다가 껐다를 반복한다. 방에 불 꺼놓고 억지로 누워있으니 또 생각거리가 펼쳐지고 잠은 멀어만 간다. 이대로 가다간 밤을 새울 것 같고, 그렇다고 힘들게 누워있자니 답답해서 벌떡 자리에 앉았다. '써야겠다.' 지금 머리에 떠오르는 것들에 대해서. 별거 아닌 내용이지만 며칠 동안 머릿속을 맴도는 것을 노트북을 켜고 한 줄씩 쓰면서 긴 밤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글은 내게 중요한 일이다. 말 없고 생각은 많고 그래서 조금은 예민한 아이에게 충분한 여유를 주고 하고 싶은 말을 해 주는 시간이니까. 천천히 말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고요 속에서, 쓰는 일 자체가 답답한 마음을 숨 쉬게 해주는 호흡과 같았다. 하루종일 온몸으로 경험한 것들을 소화하고,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단어로 정리하면서 영혼을 가볍게 하는 의식과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꾸준히 써야 하는구나. 그 무엇을 위해서가 아니라 생각 많고, 예민하고, 소심한 나를 위해서. 그래서 조금이라도 내가 자유로워질 수 있겠구나.

우리는 진정으로 무엇이 쓸모 있는지 판단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도 글쓰기는 때로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취미 정도로 생각했지만 글쎄, 눈에 보이지 않는 더 큰 무언가를 내게 준다는 걸 잠이 오지 않는 새벽에 분명히 느꼈다. 타닥타닥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동안 마음이 평온했다. 먹고사는 일만큼 영혼을 위한 일도 중요하다. 마음이 허전하거나 아무 이유 없이 잠이 오지 않는 밤이면 가만히 일어나 글을 써야지. 그거면 충분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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