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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정 Oct 19. 2024

주인공은 이야기를 써 내려가는 사람

무용 트레이닝 노트

 취미로 한국무용을 시작해 공연도 해보고, 올해 3월에는 처음으로 대회에도 나가 보았다. 관객석은 대부분 비어있었지만 심사를 받는다는 생각 때문인지 온몸이 긴장해서 어떻게 무대를 끝마치고 내려왔는지 모른다. 3분이라는 짧은 시간이 지난 후, 음악소리가 줄어들어 인사를 하고 내려온 기억이 전부이다.


첫 대회를 시작으로 한 달의 간격을 두고 몇 번의 대회에 참여하고 있다.

내 순서가 끝난 후에는 관객석에 앉아 다른 참가자의 공연을 보곤 하는데, 문득 무엇을 기준으로 심사를 하는지 궁금증이 일었다. 보통 전통 한국무용은 창작과는 달리 작품 수가 한정되어 있다. 무형문화재, 혹은 명작무로 지정된 작품으로 대회에 출전하기 때문에 음악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비슷한 음악과 안무 포인트를 가진 참가자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이전까지 무용은 내가 직접 추거나 공연작품을 감상하면서 '즐기는' 분야였는데, 이렇게 대회에 출전하다 보니 '잘하는' 것이 중요해졌다. 근데 잘 추는 춤이란 뭐지? 누구나 순서를 잘 외우고, 수십 번을 연습하는데, 어디서 차이가 나는 걸까 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심사에서 보는 건 자연스러움이야. 음악과 잘 어우러져 자연스러운 동작과 표정으로 무대를 잘 쓸 줄 알아야 해.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다면 춤에서 메시지가 드러나는 것이지."


한 시립 무용단의 예술감독이신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잘' 하는 것에 대한 힌트를 얻었다. 무대에서 무엇을 표현하려 하느냐. 이것이 기본기 다음으로 준비해야 할 무용수의 역할이었다.


춤에도 메시지가 있다는 말이 오래 뇌리에 남았다. 생각해 보면, 모든 음악에는 드라마가 있다. 도입부가 있고, 음악의 색깔을 보여주는 멜로디가 이어지고, 다음은 클라이맥스를 찍었다가, 박자가 느려지며 끝을 암시한다. 이러한 기승전결을 생각하고 춤을 추는 사람과 그냥 박자에만 맞추는 사람은 눈빛이나 표정부터 다를 것 같다.  


다른 분야지만 <흑백요리사>에서 심사를 맡은 안성재 셰프도 항상 요리에 대해 질문들 던진다. 이미 어느 정도 실력이 검증된 사람들이 모였기에, 이제는 어떤 의도를 가지로 요리를 만들고자 했는지가 드러나야 한다고. 그래서 먼저 묻고 난 후 음식을 맛보고 심사에 들어갔다. 어느 분야든 일단 기본기를 갖춘 다음엔 결국 각자의 '주제'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춤을 통해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내 삶의 무대에서 나는 무엇을 보여주는 사람인가. 2,3분의 음악에도 기승전결을 표현하는 것처럼 내 삶에서 나는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걸까. 예를 들어 평일엔 열심히 회사에 나가고, 주말이면 열심히 춤추며 사는 나름의 이유들이 있다. 그것을 나 스스로도 정리를 하고 싶어서 쓰다 보니 이렇게 열 편이 넘는 글을 기록하고 있다.


그리고 '메시지'에는 다양한 방향이 있을 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내 경우에도, 꾸며내지 않은 진실한 메시지를 볼 때 공감이 되고, 대화를 나눠보고 싶어 진다. 그러니 앞으로는 내 이야기를 하는 데에도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겠다는 마음도 든다.


이렇게 '어떤 춤을 추고 싶은가' 하는 질문은 종종 '어떻게 살고 싶은가'하는 질문을 마주하게 한다. 무용 트레이닝 노트를 기록하는 동안 삶의 트레니닝 노트를 쓰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몸과 마음을 바로잡고, 원하는 모습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반복을 통해 단련하는 것의 의미를 몸에 새기게 되는 시간이다.


대회 있는 날의 준비, 다림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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